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결속을 향한 분위기 속에서 건축계도 전 세계적 보편성과 합리성에 대한 동력을 점차 가속화해 나간다. 패전국 독일은 국제무대로의 재편입을 꿈꾸며 여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발터 그로피우스와 루드비히 힐버자이머가 연달아 “국제건축”을 천명한 사실(Internationale Architektur, 1925; Internationale Neue Baukunst, 1927)이나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주도했던 1927년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주택전시회가 국제적 교류의 장이 된 것도 그러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듬해 스위스에서 창설된 근대건축 국제회의(CIAM)와 1932년 뉴욕의 현대미술관이 ‘발명’한 “국제주의양식(The International Style)”도 동일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통일된 듯 보이는 자극적 이벤트의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근대주의 건축운동이 균질한 흐름이 아니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독일의 비평가 아돌프 베네는 근대주의의 ‘공작’이 한참이던 1920년대의 베를린에서 일찌감치 기능주의와 이성주의를 명쾌히 구분했었다(Der moderne Zweckbau, 1923/1926). 그에 따르면 “기능주의자”는 하나의 특정 목적에 부합하는 건물을 설계하는 반면, “이성주의자”는 많은 사례에 적용할만한 보편 해법을 구한다.

표준화 시스템의 그로피우스나 그리드 공간의 미스를 이성주의자로 간주할만한데, 휴고 헤링은 베네가 내세우는 전형적인 기능주의자다. 근대건축을 뭉뚱그려 “기능주의”로 치환하는 현재의 일반적 관념과는 크게 대조적이지 않나.

휴고 헤링(Hugo Häring, 1882~1958)은 독일의 선도적 근대주의자 그룹인 “링(Der Ring)”의 대변자로서, 아주 일관되고 뚜렷하게 기능주의 이론을 전개한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가 한동안 역사의 조명을 받지 못했던 까닭은 표준화와 대량생산의 효율을 중시했던 근대 이념과 불일치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 건축계의 정치적 지형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않았던 데 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베를린 필하모니를 비롯한 다수의 탁월한 건물을 실현한 한스 샤로운(1893~1972)에게 이어져 그 현실성을 입증했고, 스스로도 여러 중요한 건축물을 선보였다. “신건물(Neues Bauen)” 혹은 “유기적 건물(Organisches Bauen)”이라는 용어로(그는 ‘Architektur’와 대비된 ‘Bauen’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자기 건축을 지칭한 헤링의 이론은 1925년 독일공작연맹의 저널 『형태(Die Form)』(1925)에 출판된 「형태에 이르는 길(Wege zur Form)」에 잘 표출됐다.

이를 요약하면, 우리는 처음부터 추상화된 기하학적 형태를 외적으로 부여해서는 안 되며 사물의 본질을 발견하고 그것이 스스로의 형태를 펼쳐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형태는 자연의 원리에 따른 생명력을 갖게 되고, 제대로 기능하는 결과(Leistungsform)를 낳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의 디자인이 보여주는 불규칙성과 곡선의 비기하학적 결합은 그러한 까닭에서 연유했다.

북부 독일 뤼벡 근교의 가르카우 농장 외양간. 사진=김현섭 교수

이 글의 출판에 즈음해 완공된 북부 독일 뤼벡 근교의 가르카우 농장(Gut Garkau, 1922~25)은 헤링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외양간은 “기능은 형태를 따른다”는 근대건축의 교의에 딱 들어맞는 건물로 간주되고 있다. 평면을 볼 때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소(bull) 한 마리와 40여 마리의 암소(cow)를 위한 납작한 야구방망이 형상의 우리 배열이다.

즉, 중심축 출입구 쪽의 정점은 수소가 차지하며 여기서 멀어질수록 공간이 조금씩 넓어져 반대편 끝은 반원형을 이룬다. 이는 자연의 상태에서 소들이 먹이를 먹을 때 그것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인다는 사실과 다수를 위한 공간의 효율적 배치, 외양간 안팎으로의 드나듦, 그리고 수소에 대한 ‘가부장적’ 권위 부여 등의 인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에 더해 어린 암소(heifer)나 어린 수소(bullock), 송아지(calf) 등을 위한 부속 공간의 둥글고 삐딱한 형태 및 배치 역시 이 가축의 행태에 대한 깊은 고찰에서 나왔다.

이처럼 기능과 행태를 따르려는 노력은 입체적으로도 확장되는데, 외양간 천장과 지붕의 슬래브가 안쪽으로 구배를 갖는 면이 그렇다. 지붕 슬래브의 구배는 빗물을 모아 하나의 파이프로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이고, 건초다락의 구배 역시 건초를 아래층 외양간으로 쏟아내 용이하게 분배하기에 적합하다.

또한, 2층의 바닥 구배와 동일한 외양간 천장의 경사는 소가 내뿜는 더운 입김의 상승을 바깥쪽으로 유도함으로써 1층 고측창 위를 빙 둘러 마련된 통기구로 빠져나가게 한다. 이는 교차호흡으로 인한 가축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혹자는 이 같이 하나의 형태에 여러 기능이 동시에 충족되는 헤링의 방법론을 “합치적 디자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런 합치의 접근법은 헤링의 ‘유기적’이고 ‘기능적’인 디자인에 내재한 논리다.

하지만 그의 이론과 디자인에 대한 공격이 그리 만만치 않다. 현재적 관점에서라면 형태가 기능을 따르기보다 오히려 기능이 형태를 따른다는 말이 더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논의를 당대로 되돌리면 결국 전술했던 기능주의와 이성주의의 대립으로 귀착되는데, 헤링에 대한 미스의 언설이 흥미롭다. “휴고, 방을 충분히 큼직하게 만들게나. 그러면 거기서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네.” 미스에게 있어서 모든 내용과 움직임에 특수한 헤링의 공간은 지나친 과장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점차 더 중성화되고 그리드에 맞춰져가는 미스의 공간은 헤링이 볼 때 “생명의 과정”을 누락한 구속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가능할 법한 미스의 “보편 공간”이 실은 어느 한 기능에도 부합되지 않는 그저 그런 건물을 만들기 십상이다. 허나 뒤돌아보니, 미스의 세련된 오피스 건물과 헤링의 투박한 외양간을 비교한다면, 역사의 흐름은 ‘잠정적으로’ 미스에게 미소를 선사한 듯하다. 그럼에도 미스의 공간이 실책한 틈새를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여기에 헤링의 아이디어가 꽃피울 여지가 있지 않을까? 형태에 이르는 길, 누구를 따를 것인가? 물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이 글은 필자가 쓴 《건축수업: 서양 근대건축사》(도서출판 집, 2016)의 가르카우 농장 챕터를 요약한 것입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이 책을 참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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