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몽구·대림 이해욱·네이버 이해진 등 도미노현상...사정당국 엄정한 잣대 '영향'

최근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는 오너 경영인들이 늘고 있다. 왼쪽 윗줄부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 사진=민주신문DB

[민주신문=서종열 기자] 대기업 오너 일가들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대표이사' 직에서 잇달아 물러나고 있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재벌가 오너 경영인들이 최근 등기이사 또는 대표이사 직을 사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찰과 경찰, 공정위 등 사정당국이 횡령·배임 등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과거 그룹 내 여러 계열사의 대표 및 등기이사 직을 겸했던 재벌가 오너들은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소재를 지지 않기 위해 잇달아 대표 및 등기이사 직에서 물러나고 있다는 것이 재계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책임경영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너 일가가 대표 및 등기이사 직을 겸하는 경우 해당 계열사의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으면서 공격적인 경영이 가능했지만, 최근의 상황만 놓고 보면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소재를 회피하기 위해 적극적인 경영에 나서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법적 책임지는 등기이사서 물러나는 오너들

재벌가 오너 경영인들이 최근 잇달아 등기이사 및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경영결과에 따른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등기이사(혹은 대표이사)는 회사의 주요 경영사안을 결정하는 이사회 참석 자격이 주여지는데, 이사회 의결 사안에 대해서는 법적인 책임도 지게 돼 있다.

결국 등기이사는 경영활동을 좌지우지하는 이사회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도 받지만, 이에 대한 법률적 '책임'도 같이 갖게 되는 자리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그간 기업들은 오너 일가가 등기이사에 등재되면 "책임경영을 강화한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최근의 재계 상황을 보면 책임경영이 후퇴하는 모양새다. 재벌가 오너 경영인들이 잇달아 등기이사(혹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곳은 재계서열 2위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29일 열리는 현대건설 주주총회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자동차 부문 경영에 주력하기 위해 현대건설 등기이사 사임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지배구조 개선 압박에 재벌가에 대한 중형 선고 등이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지난해 운전기사에게 폭언 및 폭행을 해 '갑질 논란'을 일으켰던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도 지난 22일 이사회에서 대표직을 내려놨다. 이 회장은 이 사건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여기에 대림산업 전현직 임직원들 11명이 하도급업체로부터 수억원대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입건 또는 구속됐다. 

일감몰아주기 의혹으로 인해 공정위의 잇따른 조사를 받은 김흥국 하림그룹 회장 역시 지난 2월27일 하림식품 등기이사 직에서 내려왔다. 하림그룹은 지난해 7월부터 일감몰아주기, 담합, 거래상 지위남용 등의 혐의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

특히 공정위는 김 회장이 아들 김준영씨에게 비상장계열사 올품의 지분을 물려주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가 보고 이 부분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품은 하림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다. 

지난해 말 직고용 문제로 곤혹을 치렀던 SPC그룹 역시 경영에 참여했던 오너 일가가 등기이사 직에서 물러났다. 허영인 회장의 장남인 허진수 부사장과 차남 허의수 부사장이 나란히 SPC삼립의 등기이사직을 사퇴한 것. SPC삼립은 25곳에 달하는 SPC그룹 계열사 중 유일하게 상장된 회사다.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도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공정위가 네이버를 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 데 따른 부담으로 보인다. 이해진 창업자는 네이버 지분 4.3%를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당시 이 창업자가 네이버 지분 보유와 함께 대주주 중 유일한 사내이사란 점을 근거로 기업총수(동일인)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 창업자가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재차 동일인에 지정될지 공정위의 판단이 주목된다. 

이밖에도 800억원대 횡령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이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으며,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과 아들 김지안 대표 역시 등기이사를 내려놨다. 

일찌감치 등기이사 직에서 물러난 뒤 기업경영에 미등기이사로 기업을 경영하는 재벌가 CEO들도 있다. 담철곤-이화경 오리온그룹 회장 일가를 비롯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경영권만 행사하고 법적 책임은 나몰라라(?)

책임경영을 외치며 계열사 등기이사직에 취임했던 재벌가 오너 경영인들이 이처럼 잇달아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는 이유는 왜 일까.

재계관계자들은 이전과는 달라진 사정당국의 엄격해진 잣대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다. 기업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정도로 선고받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징역형과 같은 중형이 선고되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 23일 횡령 혐의로 구속수감된 롯데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대표적이다. 법원은 롯데쇼핑과 롯데건설 등기이사로 재직하던 신 이사장이 유통업체를 세운 후 세명의 딸을 등기임원으로 올려놓고 급여로 수십억원을 지급하도록 한 행위를 특정범죄가중처벌에의한법률상 '횡령'이라고 결정했다. 

재계에서는 신 이사장의 재판결과를 의미 깊게 받아들이고 있다. 상당수 재벌가 오너 경영인들이 자신의 회사에 가족들을 위한 (명목상의)자리를 마련해주고 업무와 관련없이 고액의 연봉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임원은 이와 관련 "신 이사장의 재판으로 인해 이제는 등기이사들이 고액의 연봉을 받는 대신 자신의 업무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별다른 능력 없이 이사로 재직하며 고액의 연봉을 받아오던 오너 일가들에게는 큰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오너 일가의 등기이사직 사퇴가 경영권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은 보신경영의 폐해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적 책임을 지는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재벌가 오너들의 경영권이 사라졌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경우 6년째 미등기이사로 재직 중이지만, 그룹의 중요한 현안을 결정하는 등 막강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엄격해진 사정당국의 활약을 통해 방만한 경영을 일삼던 일부 재벌가 오너 경영인의 태도가 바뀌길 기대한다"면서도 "대부분의 오너 경영인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만큼 책임경영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정부가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