姦(간)자 때문에 간사한 존재로 폄하되는 여자

조옥구
한자한글교육문화콘텐츠협동조합 이사장
전 동덕여대 교수

중국의 한 변호사가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야기할 수 있다며 奸, 姦, 妄 등의 한자에서 女자를 빼자는 주장을 제기한 적이 있다.

이들 한자를 보면 奸자는 ‘범할 간’, 姦자는 ‘간사할 간’, 妄자는 ‘허망할 망’ 등으로 쓰이는데 이들 의미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일견 그럴듯한 주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두드러지는 여성들의 현실참여에 비례해서 여성들의 권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보니 이런 점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나타나는듯 하다

생각해보면 모든 남자들은 어머니의 자식이므로 모든 남자들은 여성의 자식이고 여성이야말로 사람의 중심임에 틀림없음에도 전통사회에서 여성들은 가부장적 위세에 억눌려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변해 사회학자들은 모계사회로의 회귀를 언급하기도 한다. 모계사회로의 회귀란 인류 역사의 초기에 여성이 중심인 세상이 있었고, 이제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야생에서는 모계를 중심으로 가정과 혈연이 유지되는 것이 보통이고, 인류문명의 초기에 예외 없이 모계중심의 사회를 경험했다는 것이 엥겔스, 모간 이래로 인류학의 일반적인 견해다.

우리의 경우는 우리 말을 통해서도 모계사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가 자기 부인을 ‘아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안에 있는 해’, ‘집안에 있는 해’의 뜻으로 자기 부인을 ‘해 같은 여자’로 불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 또한 해가 낳았다는 의미에서 그 자녀들을 ‘아해’ 즉 ‘어린 해’라고 불렀다는 면에서 ‘아내’, ‘아이’ 등의 호칭이 모계중심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모계 부계를 막론하고 여성을 하늘의 해에 비유해서 불렀다는 것은 문명사적인 사건이며 여성에 대한 극존칭의 표현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을 문명의 초기 우리 겨레의 여성에 대한 보편적 인식으로 볼 수 있다면 앞서 거론된 한자들의 부정적인 의미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女자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아니 女자가 셋이 모이면 어떻게 간사하다(姦)가 되는 것일까? 간사한 것과 여자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가부장제적 남성 우월주의가 만들어낸 글자라고 설명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여성의 권위가 신장되어 남녀가 공히 동등한 사회의 일원으로 공평한 대우를 구가하는 오늘의 시각으로는 참으로 곤란한 글자가 되어 버렸다.
정말 믿을 수도 않 믿을 수도 없는 글자이지만 姦자는 女자에 대한 기존의 상식만으로는 어딘가 꺼림칙한 면이 없지 않다.

姦자는 어떻게 ‘간사하다’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일까? 女자의 옛 글자에 그 비밀이 담겨있다.

위의 네 글자는 모두 女의 옛 글자들이다.

①②를 보면 언뜻 사람의 모습 가운데 口가 보이고 ③은 中의 모양이며 ④는 中의 모양을 조금 비틀어서 그린 것으로 女자의 초기 모습이 보인다. 어떤 면에서 이 글자들은 여자와 中의 둘을 서로 섞어놓은 모양이며 이들 중에서도 더 비중이 큰 것은 中이라는 것은 ③과 ④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사실 女자의 기원은 여자가 아니라 中이다. 女자가 여자를 나타내므로 여자의 모습을 가지고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사실은 여자의 모습이 아니라 문자가 만들어질 당시 ‘중심’이라는 여성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中자의 변형으로 女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女자는 표면적으로는 ‘여자’를 나타내지만 또 하나 ‘중심’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姦자로부터 ‘여자가 셋이 모이면 간사하다’는 식으로 설명한 것은 ‘女’자를 만든 주체들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오해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女자가 ‘여성’의 의미 외에 사회문화적인 ‘중심’의 의미가 또 있음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자가 만들어지던 당시 여성은 혈연과 가정의 중심이었다. 혈연이 모계를 중심으로 이어져 우리의 성(姓)이 어머니 즉 모계를 따랐던 시대였다. 지금은 가부장제 사회여서 혈연은 아버지의 씨를 따르지만 당시는 가정과 혈연의 중심이 어머니였던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여자는 ‘여자’보다도 ‘중심’이라는 의미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女의 옛 글자가 中자와 모양이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자’라는 형상을 이용하여 ‘중심’이라는 개념을 나타내는 것이 女자의 본질이다.

따라서 姦자는 ‘여자 셋의 의미’가 아니라 ‘중심이 여럿’이라는 뜻이다. ‘중심이 여럿’이라는 말은 ‘주관이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다’라는 뜻으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이런 사람을 ‘간사하다’라고 부르는 것이다.

奸(범할 간)도 중심을 넘었다는 의미이며 妄(허망할 망)도 중심을 잃어 허망하다, 安도 여자가 집 안에 있어야 편안한 것이 아니라 ‘중심이 내부에 있으면 안정되다’라는 의미다. 女자의 中이란 개념을 찾고 나면 姦자 때문에 변덕스런 대상으로 오해를 받은 여성들은 본의 아닌 누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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