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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를 품다] 내 차로 가는 세계여행1-(18)임종 앞둔 조각가의 오슬로 ‘모놀리트’...남녀의 생동감 넘치는 몸부림
  • 조용필
  • 승인 2018.03.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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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저자 제공

<프롤로그> 시동을 걸다

2015년 4월 19일, 아침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둘째 아들 걱정이 앞서지만 떠나는 발길을 재촉합니다. 비가 내리는 새벽길을 달려 동해항으로 오는 동안 메시지와 전화가 운전이 어려울 만치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못나게 살아온 건 아니구나 괜히 마음이 뿌듯합니다. 여비가 떨어지면 꼭 연락하라고 하신 분 수두룩합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넉넉해져 안심이 되었습니다.

빗속을 달려 약속한 10시에 겨우 강원도 동해항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페리사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일사천리로 통관업무를 진행합니다. 보세 구역으로 차를 옮겨 세관 검사를 받습니다. 이틀 동안 실은 물품을 혼자서 다 내려 X-RAY검사를 받고 다시 싣느라 오랜만에 땀에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선내 화물칸으로 차를 옮긴 다음 네 바퀴를 야무지게 결박합니다. 세관원의 안내를 받아 다시 보세 구역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오후 2시. 퇴색한 유행가 가사처럼 뱃고동 길게 울리며 출항합니다. 항구에 비는 내리는데, 선창가에 서서 눈물 흘리는 이도, 손 흔드는 이도 없습니다. 아무도. 모든 사물은 제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에 열심히 매진할 때 가장 빛난다고 알고 살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이 세상에 운명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내가 고생을 한 것도 운명이었고, 열심히 노력하여 그 고생을 벗어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없던 중학생이 세계 여행을 꿈꾼 것도 운명이고, 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의 날씨는 험하고 바람까지 드셉니다. 갑판에서의 별 구경은 어림도 없습니다. 떠난다고 연락도, 작별인사도 못한 곳이 많은데 아쉽게도 이 선박은 와이파이가 불통입니다. 거친 풍랑으로 흔들림이 심한 탓에 선내 욕실에서 이리 저리 뒹굴면서 힘들게 목욕을 마치니 쏟아지듯 잠이 몰려옵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여행을 가겠습니다. 어렵겠지만 멋진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목숨 걸 만한 가치 있는 훌륭한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제 운명이라고. 그리고 명심하겠습니다. 이 여행의 최종목적지는 ‘집’이라는 사실을!

스웨덴의 해안선 길이는 4000km나 된다. 사진=저자 제공

스웨덴, 발칙 맹랑한 그러나 순수한 삐삐의 나라

겨우 천만 명도 안 되는 인구가 우리의 4.5배나 되는 넓은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냥 넓기만 한 땅이 아닙니다. 지상은 대부분 비옥하고 지하는 각종 자원으로 풍부한 땅입니다.

꿈속처럼 몽롱한 멜로디의 ‘페르난도(Fernando).’ 연꽃잎에 빗물이 튀듯 밝고 맑은 ‘치키타타(Chiquitita).’ 가을바람에 흐늘대는 커튼 같은 ‘안단테(Andente).’ 이쯤이면 아셨을 겁니다. ABBA! 바로 이 나라 출신의 밴드였습니다. 지나치게 과중한 세금 때문에 국적을 옮겼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발칙 맹랑하던, 그러나 순수했던 그 말괄량이 삐삐도 이 나라의 창작물입니다.

노르웨이 베르겐 시가지. 사진=저자 제공

노르웨이 유럽 속 최고의 자연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처럼 노르웨이는 국토 절반 이상이 북극권에 속해 있습니다. 때문에 4월부터 7월까지는 백야로 종일 밝다고 합니다.

노르웨이는 9세기부터 바이킹의 나라였습니다. 좋게 말해서 바이킹이지 바다에서 노략질을 일삼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국토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 지대인데다 해풍이 따스한 해안 지역이 그나마 살기 좋았으나, 겨울엔 종일 어둡고 추워서 바다를 타고 늘 다른 곳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래서인지 노르웨이 자연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그대로입니다.

중앙아시아의 파미르를 여행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여행객을 만났습니다. 우리랑 달리 대다수가 여행 전문가급인 그들에게 가본 여행지 중에서 어디가 좋았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 사람과 도시는 ‘이란’을, 자연은 ‘노르웨이’를 으뜸으로 꼽았습니다.

과연 노르웨이의 자연은 굉장합니다. 달리다가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우고 구도를 잘 잡은 다음 셔터만 누르면 OK입니다.

노르웨이는 자연을 중시하는 나라답게 트램길도 잔디로 뒤덮여 있다. 사진=저자 제공

소탈한 거리, 오슬로

오슬로(Oslo)에서 잡은 숙소에서 시내 중심까지는 약 3km입니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시가지를 걸어 다닙니다. 이렇게 직접 걸어가면서 보고 느끼는 도심 여행이 훨씬 편안하고 정겹습니다. 이런 데서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은 몇 년도에 누가 지었고 역사가 어떻고’ 이런 것 보다 가장자리에 똑같은 색의 꽃 화분으로 자전거 도로를 구상한 사람은 누구인지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그런 소박한 궁금증을 가지고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정식 국가명칭은 ‘노르웨이 왕국(The Kingdom of Norway)’입니다. 하랄 5세 국왕이 다스리는 입헌군주국입니다. 국왕의 공식 관저이기도 한 왕궁 입구에는 보초가 부동자세로 서 있습니다. 왕궁의 보초는 언제 봐도 멋있습니다.

하랄 5세 국왕의 관저는 여타 유럽 국가의 궁에 비하면 소탈하다 못해 초라하다고 할 정도로 검소한 외양입니다. 실제 국왕이 거주하고, 집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정문과 담장을 헐고 개방해 일반인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국왕의 공식 관저이기도 한 노르웨이 궁전. 사진=저자 제공

인간의 삶을 담은 프로그네르 공원

이튿날 이른 아침 여장을 챙겨 길을 나섰습니다. 오랫동안 가슴에 새겨둔 곳을 드디어 가본다는 기대감에 밤을 설쳤습니다. 단숨에 프로그네르 공원으로 갔습니다.

구스타브 비겔란은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조각가입니다. 죽기 전에 자신이 일생 동안 만든 작품들을 오슬로 시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시 당국은 기꺼이 그와 그의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공원을 만들 것을 결정하고 모든 것을 그에게 일임했습니다. ‘프로그네르 공원’으로도 불리는 이 공원은 그런 멋진 화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공원 곳곳에는 청동과 화강암, 주철 등을 재료로 만든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늙은 조각가가 임종을 앞두고 만든 작품답게 대부분이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과 희로애락을 주제로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필자와 같은 문외한도 쉽게 작품의 의미를 수긍하고 크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네르 공원 중앙의 ‘모놀리트’ 탑. 사진=저자 제공

가장 놀라운 작품은 공원 중앙의 탑 ‘모놀리트’입니다. 약 17미터 높이의 화강암으로 된 작품입니다. 멀리서 보면 그저 큰 기둥처럼 보이지만 121명의 남녀 군상들이 뒤엉켜 고통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들이 실제 사람의 모습인 양 생동감 넘치게 조각돼 있습니다. 고통을 견디며 정상으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군상들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들이 교차됩니다.

오슬로에 오면 꼭 보겠다고, 아니 이 조각상을 보기 위해 오슬로만큼은 꼭 가겠다고 진작부터 다짐을 했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대해 온 이상으로 큰 감동으로 받았습니다. 이런 감명과 행복감을 주는 예술가들에게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조용필  news@iminj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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