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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연일 대형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 덕에 잊고 지나치는 상황이 있다. 바로 경기문제다. 피부로 느끼는 바닥 경기가 매우 좋지 않다. 지난 12월부터 2월말까지 3개월간 매출이 없다고 호소하는 점포나 업체가 너무 많다. 취업이 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중장년층도 매우 많다. 뭔가 돈이 되는 일을 만들어보려, 동향을 파악해보려 열심히 움직여보고 사람도 만나보지만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어렵고 힘들다는 점만 확인하고 돌아서게 된다.

매출을 포기하고 영업시간을 줄인 만화카페

답답한 심정에 스트레스를 해소해 보고자 늦은 시간 동네 어귀 만화카페를 찾았다. 이곳은 밤 1시까지 영업하는 곳이라 아주 가끔 퇴근 길에 들르곤 했던 곳이다. 마침 사장님이 계셔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고 앉으려했다. “죄송합니다. 마감해야 해서 대여만 가능합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부담으로 아르바이트 근무를 조정하며 심야영업을 포기한 것이다. 2017년 6,470원에서 2018년 7,530원으로 시간당 인상금액은 1,060원에 불과할 뿐이다. 기껏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한두 명이 교대로 근무하는 동네 만화카페로 기준하면 하루에 추가로 부담하는 인건비는 1만원 이하로 월간 30만원 정도다. 그런데 만화카페가 이 정도의 추가 인건비를 도저히 감당 못할 정도로 열악한 것일까?

여기서 이 만화카페가 매일 2시간 동안 벌어들일 매출을 포기했다는 점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만화카페 사장님이 추구한 것은 투입 대비 산출의 ‘가성비’다. 자신이 어찌해볼 수 없는 고정비용에 맞춰 콘트롤 가능한 비용을 줄이고자 한 것이다. 비용의 폭을 고려해 혼자서 최대한 노력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매장영업시간을 단축한 것이다.

일자리, 나누고 늘리는 게 맞다고 말하지만

이런 현상을 놓고 ‘소득주도 성장론’에 거센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필자는 노동시장이 심하게 양극화되어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당 임금에 민감한 계층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임금을 지급하는 소상공인과 그 사업장에서 임금생활을 해야 하는 임노동자들간의 문제, 즉 부가가치가 낮은 노동을 하고 있는 이들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의 노동시장의 문제는 대한민국에서는 풀기 매우 어려운 숙제다. 고액의 급여혜택을 받는 대기업 노동자, 중위 이상의 소득을 보여주는 공기업, 공무원, 대기업 계열사 등의 층이 두껍기 때문이다. 개개인은 일자리 나누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입장에 동의하더라도 노동조합와 같은 이익집단으로 모이면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을 경우, 함부로 급여를 줄일 수 없다. 결국 노동시장 내에서도 가지지 못한 자를 쥐어 짜 여기서 발생한 효율의 혜택을 좀 더 가진 자가 챙겨가는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자본에 의해 노동이 대체되고 있다

이것을 대한민국만의 문제라고 자책할 수만은 없다. 이미 이 같은 현상은 4차산업혁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4차산업혁명 속에서는 자본이 노동을 대체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본이 노동을 대체해 나가는가? 이는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또한 이미 인지할 때 즈음이면 자본에 의해 노동이 대체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TV를 틀었을 때 뉴스에서 보게 되는 신기한 장치나 시스템과는 또 다른 것이다. 2가지 사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5년 전 어느 퀵서비스 업체에 솔루션을 제공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퀵서비스 기사가 중국 동포들이었다는 점에 깜짝 놀랐다. 업체 담당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이 3D업종을 기피하기 때문에 기사를 구하기 어려워 중국 동포들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고객상담센터 담당자가 출발지와 목적지, 배송물품과 배송비용을 정확히 입력하면, 이 정보가 SNS나 앱서비스를 통해 기사에게 전달된다. 기사는 이 정보를 스마트기기를 통해 전달받고 내비게이션을 통해 목적지까지 운행한다. 목적지에 도착해 전화한 후 “퀵입니다. 밖으로 나오세요” 정도만 말하면 되는 것이다.

최첨단 시스템이 노동을 소외시킨다고 착각하지 마라

4년 전 모 백화점 뒤 먹자골목의 어느 분식점을 들렀다가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메뉴를 선택하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주문내역이 주방으로 전달되고, 전광판에 주문번호가 나오면 조리가 끝난 음식을 받아오면 되는 방식이었다.

당시 깜짝 놀란 것은 주방에도 홀에도 한국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전산화가 이루어지면 부호나 기호 형식으로 전달 가능하다. 이는 문화와 언어의 영역을 초월한다. 교육받은 대로 반조리된 재료를 꺼내 레시피에 맞춰 조리하면 요리가 완성되고 버튼을 누르면 대기번호가 뜨며 요리를 주문한 고객이 음식을 찾아가면 끝난다.

이런 방식은 최근 패스트푸드 체인점, 푸드코트 등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주문이 정확하게 들어간다는 점, 대기시간이 짧아진다는 점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반면,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일자리를 빼앗아버린 것이다.

지리를 몰라도 내비게이션이 기사를 목적지까지 인도한다. 한국말을 잘 못해도 커뮤니케이션은 상담센터를 통해 분업화된다. 금전수수가 애매하면 고객센터에서 신용카드 결제를 지원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스마트기기, 내비게이션, 앱서비스, 콜시스템, 결제시스템이 통합되며 노동의 품질은 향상시키면서도 노동의 금전적 가치는 낮춰가는 것이다.

필자가 키오스크라 설명한 장치도 마찬가지다. 이미 대형 모니터는 보편화되었고, 스마트기기의 보급으로 터치스크린도 익숙하다. 키오스크를 구동하고 주방에 주문내역을 전송하고, 신용카드 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미 음식점마다 보급된 포스시스템을 조금 개량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이를 구동시키는 장치도 소형 컴퓨터 하나면 충분하다.

이미 이렇게 크지 않은 자본투자를 통해 노동자에게 주어야 할 임금을 줄이고 투자자의 이익을 늘려나가고 있었다.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야금야금 노동의 영역을 갉아먹어 온 것이다. 그러니 “눈 높이를 낮춰 취업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더 이상 덕담이 아니다. 부가가치가 높은 노동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노동자간의 경쟁이 아닌 기계와의 경쟁, 자본과의 경쟁에서 노동의 터전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어나가는 연재를 통해 4차산업혁명에 따른 노동과 일자리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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