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미투' 확산에 직장문화 급변...남녀 접촉 최대한 기피 펜스룰까지 등장신체접촉은 물론 가벼운 농담도 자제, 사회적 역효과 야기할 수도
  • 이승규 기자
  • 승인 2018.03.12 16:55
  • 댓글 0
세계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신문=이승규 기자] 최근 사회각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운동’이 사회전반에 겹겹이 쌓여있던 성폭력과 성추행을 낱낱이 고발하며 사회질서를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미쳐왔던 직장내 조직문화가 이번 미투운동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혹시나 모를 성폭력을 방지하고 성추행을 막고자 회식 자리를 최대한 줄이고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은 물론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가벼운 농담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쓸 데 없이 말 섞지 말고 회사에선 일만 하자”라는 공감대가 저변확대되고 있다. 특히 술을 곁들인 회식자리에서는 음주로 인해 이성을 상실하기가 쉬워 조금이라도 성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매우 조심하는 분위기다.

덕분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성폭력 방지는 물론이고 회식 자리가 부쩍 줄어 소홀히 하던 가정생활에 더욱 많은 신경을 쓸 수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 식품회사에 다니는 홍모(36) 과장은 “우리 회사는 얼마 전부터 회식은 오후 8시 이전까지 1차로 끝내는 것이 원칙이다. ‘시선강간’도 성희롱으로 인정해 제재를 할 정도로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예민한 편”이라고 최근의 변해가는 회사내 조직문화에 대해서 말했다.

‘시선강간’이란 눈으로 만지듯 타인의 신체를 위아래로 훑어보거나 한 부위를 빤히 쳐다보는 등의 행동으로 그동안 직장내 조직문화에 만연해 있었으나 최근 많은 직장에서는 성희롱으로 보고 강력한 제재를 하고 실정이다.

홍씨도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긴장이 풀리고 안일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고가 날 수 있으니 기준이 빡빡한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예뻐보여서 외모에 대한 칭찬을 했더라도 상대방이 들어서 기분이 나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사내 성폭력 방지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는 있겠지만 의식의 전환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다른 시각에서는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간극을 넓히고 여성을 ‘사고가 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오랜 시간 동안 힘들게 이룩해 놓은 성 평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40대 군 간부 A씨는 “미투 운동 이후 여직원들과는 회식을 1차까지만 하고 남자들끼리만 따로 2차를 가고 있다”고 밝혔다. 취하기 전에 여성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고 남성들끼리만 친목을 다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여성 직원들을 배제하는 행위 이른바 ‘펜스룰’이다.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발언에서 시작된 말로 최근 한국의 직장내 조직문화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 키워드다.

A씨는 “최근의 상황이 남자들을 잠재적 성희롱 가해자로 몰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OO씨 덕분에 분위기가 화사해 졌다는 칭찬이 왜 성희롱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여기에서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는 “그러니까 여성은 채용하면 안 된다”, “남자끼리 일 하면 문제가 없다” 등의 극단적 주장까지 제기하고있다. 하지만 이렇듯 성폭력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명목 하에 여성을 배제하는 극단적인 선택은 오히려 미투 운동을 잘못 이해하고 역행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SNS를 통해 “당황한 일부 관리직 혹은 남성 직원들이 예방책이랍시고 채용이나 업무 등에 여성을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불법적 행위들을 한다고 한다. 이는 그들이 여성 가까이에 있으면 성폭력을 해 왔고 할 수 있는 잠재적 성범죄자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성폭력은 본래부터 성차별적 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교류를 물리적으로 막기보다는 개개인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오히려 성폭력 방지에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대 이나영 사회학과 교수는 “회식을 줄인다는 것은 ‘술이 문제’라는 인식 때문인데 최근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받는 한 유명인도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추행을 한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만 접근하면 헛다리만 짚는 것과 같다”고 분석했다. 

그 동안 아무인식 없이 행해지던 행위가 성폭력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부터가 사회전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성희롱·성폭력과 관련한 법 제도는 꽤 잘 갖춰져 있지만 작동을 안 하는 것이 문제”라며 “일상에서 사용하는 성차별적 언행들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특수한 자의 악행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깔려있는 남성 중심의 문화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3.8 세계여성의 날인 8일 서울 명동 거리에서 미투운동 동참을 뜻하는 검정색, 보라색 의상을 입은 한국YWCA 연합회원들이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장미, 미투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피켓을 들고 있다.

이승규 기자  press3361@hanmail.net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승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