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연재 조용필의 내차로가는 세계여행
[유라시아를 품다] 내 차로 가는 세계여행1-(17)‘세계 3대 황당 관광’ 코펜하겐 인어공주…구경 안 하고 가는 관광객 이해
  • 조용필
  • 승인 2018.03.12 11:12
  • 댓글 0

<프롤로그> 시동을 걸다

2015년 4월 19일, 아침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둘째 아들 걱정이 앞서지만 떠나는 발길을 재촉합니다. 비가 내리는 새벽길을 달려 동해항으로 오는 동안 메시지와 전화가 운전이 어려울 만치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못나게 살아온 건 아니구나 괜히 마음이 뿌듯합니다. 여비가 떨어지면 꼭 연락하라고 하신 분 수두룩합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넉넉해져 안심이 되었습니다.

빗속을 달려 약속한 10시에 겨우 강원도 동해항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페리사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일사천리로 통관업무를 진행합니다. 보세 구역으로 차를 옮겨 세관 검사를 받습니다. 이틀 동안 실은 물품을 혼자서 다 내려 X-RAY검사를 받고 다시 싣느라 오랜만에 땀에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선내 화물칸으로 차를 옮긴 다음 네 바퀴를 야무지게 결박합니다. 세관원의 안내를 받아 다시 보세 구역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오후 2시. 퇴색한 유행가 가사처럼 뱃고동 길게 울리며 출항합니다. 항구에 비는 내리는데, 선창가에 서서 눈물 흘리는 이도, 손 흔드는 이도 없습니다. 아무도. 모든 사물은 제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에 열심히 매진할 때 가장 빛난다고 알고 살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이 세상에 운명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내가 고생을 한 것도 운명이었고, 열심히 노력하여 그 고생을 벗어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없던 중학생이 세계 여행을 꿈꾼 것도 운명이고, 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의 날씨는 험하고 바람까지 드셉니다. 갑판에서의 별 구경은 어림도 없습니다. 떠난다고 연락도, 작별인사도 못한 곳이 많은데 아쉽게도 이 선박은 와이파이가 불통입니다. 거친 풍랑으로 흔들림이 심한 탓에 선내 욕실에서 이리 저리 뒹굴면서 힘들게 목욕을 마치니 쏟아지듯 잠이 몰려옵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여행을 가겠습니다. 어렵겠지만 멋진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목숨 걸만한 가치 있는 훌륭한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제 운명이라고. 그리고 명심하겠습니다. 이 여행의 최종목적지는 ‘집’이라는 사실을!

덴마크 코펜하겐 시청사 첨탑의 천문 시계. 사진=저자 제공

북해에서의 지지 않는 하룻밤

덴마크와 접하고 있는 북해에 다 달았습니다. 뉘보르(Nyborg)에서 셀란 섬을 잇는 다리가 보이는 캠핑장에서 하루를 머물렀습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석양이 지기 시작합니다. 여름 밤 8시쯤이면 어두워지는 것에 익숙한 필자에게는 고역입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와도 밖이 환하니 늦은 점심을 먹은 듯 하고, 잠들기 전에 간식을 찾기 일쑤이니 아랫배만 자꾸 나오고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와 3만km 넘게 달려오니 차량 하체의 고무 부품들이 경화되고 마모돼 잡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넘어갈 채비를 하면서 독일의 랜드로버 대리점에서 몇 가지 하체 부품들을 교환했습니다. 자동차는 소모품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제때 정비를 해주면 20년 정도는 탈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비를 자주 못해 줘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이 차는 “주인을 잘못 만나 아주 생고생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기보다는 “주인을 잘 만난 덕분에 즐겁게 세상구경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크리스안보르 궁전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의 조각상. 사진=저자 제공

왕이 사는 도시, 코펜하겐

코펜하겐(Copenhagen) 시내에 들어왔습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은 시가지 중심부에 곡선 도로가 많고 노폭이 좁아 일방통행 구역이 많습니다. 특히 코펜하겐은 굽은 도로는 별로 없는데 일방통행이 많은 듯합니다. 주차장을 찾아 헤매다 시청 광장까지 왔습니다. 차 지붕 위의 짐 덕분에 지하 주차장에는 공간이 있어도 진입을 할 수 없으니 이럴 때 답답합니다.

주변을 돌다 발견한 시청사 첨탑의 천문 시계가 재밌습니다. 27년에 걸쳐 만들었으며, 100년 동안 1000분의 1초의 오차만 생긴다고 합니다.

덴마크는 유럽의 왕가들 중 가장 오랫동안 왕조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나라입니다. 다음 왕위를 이어받을 프레데리크 세자가 실제로 이곳 코펜하겐의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크리스티안보르 궁전 건물 안에 들어갔습니다. 상상한 것보다 훨씬 검소하고 간결한, 왕족들의 식탁이 그대로 비치돼 있었습니다. 촛불을 밝히고, 화병의 꽃내음을 맡으며, 실내악 연주를 들으며 식사를 한다면 아무리 맛없는 음식이라도 맛깔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데르센 동화에 등장하는 인어공주 조각상. 사진=저자 제공

안데르센 동화 속 풍경

덴마크 관광 엽서와 안내 책자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장소, 니하운 운하를 찾아갔습니다. 1671년부터 2년 동안 바다와 연결하기 위해 군인들이 생고생하면서 파낸 300여m 길이의 운하입니다. 이곳에서 안데르센이 거주하면서 많은 동화를 써 내며 명성을 높였고, 유명인이 된 후 노년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파스텔 톤의 형형색색 옛 건물들이 그의 동화처럼 예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계 3대 황당 관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이 그것입니다. 그중 하나인 인어공주 조각상이 이곳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소리까지 팔아서 인간이 됐는데 왕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렸습니다.

망연자실해서 자살해 버리는 인어공주 이야기를 보고 어린 마음에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공감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직접 와서 보는 사람들은 모두 실망하고 돌아가지만 어쨌든 코펜하겐에 와서 이걸 보지 않고 그냥 가는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덴마크는 도시 전체, 나라 전체가 디자인이다. 한 집 건너 인테리어 관련 가게다. 사진=저자 제공

전해 듣거나, 책이나 방송에서 겨우 보다가 실제로 여기 와서 직접 눈으로 보니 도시 전체, 나라 전체가 디자인입니다. 서울은 언제부터인가 한 집 건너 식당 아니면 커피숍, 술집, 편의점으로 변해 버린 듯한데, 이곳은 한 집 건너 인테리어와 관련된 가게입니다. 과연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나라답습니다.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건너가는 외레순 대교와 통행료 안내판. 사진=저자 제공

덴마크에서 스웨덴까지, 52유로

길옆으로 기차가 나란히 달리고, 차가 내리막길을 달리는가 싶더니 금방 터널 안으로 들어갑니다. 한참을 더 내려가서야 해저 터널 안을 달리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하던 차에 다시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스웨덴으로 건너가는 다리입니다. 한 번 건너는 데 통행료가 52유로, 우리 돈 6만 원쯤입니다. 생애 최고로 비싼 통행료를 지불하고서야 생애 처음으로 스웨덴으로 들어갑니다.

<다음 호에 계속>

조용필  news@iminju.net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