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잃은 건설, 분식회계 조선, 위기의 자동차...포스코대우·두산인프라는 흑자전환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 이후 옛 대우그룹 계열사들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왼쪽)은 1967년 대우실업으로 시작해 30년만에 재계서열 3위의 대우그룹을 일궈냈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넘지 못했고 결국 1999년 4월 그룹은 해체됐다. 사진=뉴시스

[민주신문=서종열기자] "수출금융만 열어주면 돌멩이라도 수출하겠다."

외환위기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1998년 11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김 회장을 외면했고, 대우그룹은 이듬해인 1999년 8월 워크아웃을 결정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계경영'을 외치며 지구촌을 뛰어다녔던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우그룹을 대표하던 자동차(한국GM)와 건설(대우건설), 조선(대우조선해양)이 최근 재계의 근심거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자동차기업인 GM에 인수됐던 대우자동차는 최근 모기업인 GM이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하면서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반면 대우그룹 계열사 중 새 주인을 찾아 성장의 날개를 단 곳도 있다. 최근 대유그룹에 인수된 동부대우전자는 12년 만에 사명을 '대우전자'로 되돌리면서 '탱크주의'로 대변되던 가전명가 부활을 선언했다. 포스코그룹에 인수된 포스코대우 역시 견고한 실적을 유지하며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두산그룹을 재무위기로 몰아넣었던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 역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1967년 3월 섬유봉제품 수출업체(대우실업)으로 출발해 '세계경영'이란 기치 아래 30여년 만에 재계서열 3위에 올랐지만, 글로벌외환위기(IMF)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옛 대우그룹. 그룹 해체 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 옛 대우그룹 계열사들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승용, 상용, 버스로 뜯겨진 대우차, 사업철수 위기 맞은 한국GM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사업은 바로 자동차였다. 김 회장은 1983년 새한자동차를 대우자동차로 출범시켰다. 당시만 해도 새한자동차는 GM과 협력관계였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듬해 대우자동차부품을 설립하며 독자적인 자동차기업으로의 성장에 준비했고, 이후 1992년 대우차-GM의 제휴관계를 청산하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특히 '세계경영'을 통해 글로벌 판매망을 갖춘 대우자동차판매법인을 설립해 글로벌기업들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옛 공산권 국가들과 개발도상국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성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시작된 후에도 대우는 확장전략을 유지했다. 1998년 3월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것. 이에 따라 대우자동차는 승용과 상용, 버스, 트럭, 사륜구동에 이르는 풀 라인업을 완성했다. 이때 대우그룹은 삼성그룹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가 화무십일홍의 마지막 날이었다. 외환위기의 파고는 대우가 헤쳐 나가기에는 너무나 높았다. 결국 대우그룹은 1998년 1차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후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를 맞교환하는 빅딜을 발표했으며, 이듬해인 1999년 4월에는 대우조선과 상용차부문, 힐튼호텔을 매각하는 2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자동차그룹의 부활을 꿈꾸며 진행했던 GM과의 협상에 실패하면서 결국 대우그룹은 1999년 8월 워크아웃을 선언했고, 2000년 4월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되며 그룹은 공중분해 됐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우그룹의 주력계열사였던 대우자동차는 각 부문별로 분해됐다. 1997년 인수한 쌍용차는 2000년 대우그룹 계열에서 제외된 후, 2005년 중국 상하이자동차그룹에 매각됐다. 하지만 판매부진이 계속되면서 2009년 상하이자동차는 결국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철수했다. 다시 법정관리 상태가 된 쌍용차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2010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에 인수되면 현재 SUV명가로 부활했다. 

쌍용차를 제외한 대우자동차는 2000년 11월 부도를 맞았다. 이에 앞서 포드와 GM, 현대차 등과 매각협상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국 결렬되면서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이후 과거 사업파트너였던 GM이 대우차의 승용부문만을 인수하며 2002년 10월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이하 GM대우)로 새 출발했다. GM대우는 2011년 1월 GM의 산하 브랜드 중 하나인 '쉐보레'로 흡수통합됐으며, 2011년 한국GM으로 이름을 바꿨다. 

공장폐쇄 결정이 내려진 한국GM 군산공장 입구. 사진=뉴시스

그러나 한국GM은 지난 2월 모기업인 GM이 군산공장 폐쇄조치에 나서면서 또다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계속해서 제기되던 GM 철수설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와 산업은행(한국GM의 2대주주)이 협상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위기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편 GM이 인수하지 않았던 대우차의 버스 부문은 2003년 영안모자가 사들이며 사명을 자일대우버스로 바꿨다. 또한 상용차 부문은 2004년 인도 타타그룹이 사들이며 타타대우상용차로 변신했으며, 판매조직망이었던 대우자동차판매(현 자일대우자동차판매)는 2010년 버스부문을 사들였던 영안모자가 추가로 인수했다. 대우자동차판매 건설부문은 2010년 중국 풍화그룹에 매각됐으며, 대우산업개발로 사명을 바뀌었다. 

(주)대우에서 출발한 대우인터와 대우건설의 다른 행보

자동차와 함께 대우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불렸던 (주)대우는 3개 회사로 쪼개졌다. 이에 앞서 1999년 워크아웃 과정에서 대우로지스틱스가 먼저 갈라졌으며, 대우그룹의 모태가 됐던 무역부문은 대우인터내셔널로, 건설 부문은 대우건설로, 그리고 청산을 위한 존속법인 (주)대우가 남겨졌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포스코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사명 역시 포스코대우로 변경했다. 포스코대우는 백화점 사업도 겸업했는데, 2014년 롯데백화점이 이 사업을 사가면서 롯데백화점 마산점으로 재출발했다. 

무역이 주력업종이던 포스코대우는 2000년대 중반부터 자원개발업에 나서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포스코대우는 지난해 4013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며 견고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포스코대우의 매출액은 23조6664조억원에 영업이익은 4937억원을 예상했다. 전년대비 각각 7%, 8.5%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 것. 재계는 "대우 계열사 중에서 새 주인을 만나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경우"라고 포스코대우를 평가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매각됐다가 2010년 다시 산업은행의 품으로 돌아온 대우건설(왼쪽)은 지난해 말 호반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매각을 진행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반면 포스코에 인수된 대우이넡내셔널은 사명을 포스코대우로 변경한 뒤 꾸준하게 실적을 내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사진=민주신문DB

반면 대우건설은 (주)대우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부침을 겪고 있다. 워크아웃 졸업 이후 새 주인 찾기에도 성공했지만, 매각에 재매각 과정을 거치며 둥지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옛 대우그룹 계열사 중 워크아웃을 가장 먼저 졸업했던 대우건설은 2005년부터 시공능력평가 1위를 3년 연속 차지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당시 대주주였던 자산관리공사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매각에 나섰고, 2006년 12월 6조6000억원을 써낸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새 주인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대우건설은 불운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대우건설의 새 주인이 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2008년 대한통운까지 인수하면서 그룹의 재무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결국 모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시작된 글로벌금융위기 과정에서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2010년 6월 인수당시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대우건설을 산업은행에 재매각 했다. 이후 지난해 말 대우건설은 다시 주인찾기에 나섰지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의 우발채무로 인해 인수를 포기하면서 아직까지 제대로된 둥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도 대우그룹은 대우건설 외에 경남기업을 계열사로 두고 있었다. 경남기업은 성완종 회장의 대아건설에 인수된 후 2004년 모기업인 대아건설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의 대형건설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2015년 건설업계 불황으로 인해 사업이 어려워졌고, 오너인 성 회장이 자원외교비리수사에 연루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2015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현재는 우오현 회장이 이끄는 삼라마이다스(SM)그룹의 계열사다. 

중공업서 분사한 4개사, 분식회계 늪에 빠진 대우조선해양

대우그룹의 주력 사업 분야 중 하나였던 대우중공업은 2000년 워크아웃 과정에서 대우종합기계, 대우조선공업, 철도차량 부문(현 로템), 항공사업부문(현 KAI)으로 분할됐다. 

대우중공업의 주력 분야였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맡았던 대우종합기계는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됐다. 현재 사명은 두산인프라코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09년 방산부문을 분사시켜 두산DST로 분할했으며, 2011년에는 산업차량 부분을 독립시켜 두산산업차량으로 출범시켰다. 2016년 3월에는 공작기계 부문도 떼어 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매각했다.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한 두산그룹이 이처럼 사업부문을 떼 내어 매각한 이유는 대우종합기계 인수 이후 두산그룹이 재무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만 놓고 보면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660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로 전환했다. 올해에는 7171억원의 영업이익이 기대된다. 

워크아웃 졸업이후 놀라운 실적을 내며 성장했던 대우조선해양(왼쪽)은 2016년 3조원대의 분식회계가 드러나면서 현재는 존폐가 위협받고 있다. 반면 두산그룹에 재무위기를 가져왔던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는 흑자로 전환하며 그룹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변신했다. 사진=민주신문DB

반면 대우중공업의 한 축이었던 대우조선해양은 워크아웃 이후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다가 2010년 글로벌외환위기 이후 업황 악화로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특히 2015년 3조원대의 분식회계 스캔들이 터지면서 대우조선의 앞날은 그야말로 어두운 상황이다. 

철도차량 부문과 항공산업 부문은 워크아웃 이후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당시 DJ정부는 빅딜 차원에서 대우중공업의 철도차량 부문은 분사시켜 현대그룹의 현대정공, 한진그룹의 한진중공업과 함께 현물출자 방식으로 한국철도차량을 출범시켰다. 한국철도차량은 현대그룹 계열로 지하철 및 열차를 만들고  있는 현대로템이다. 

항공사업부문 역시 1999년 삼성항공산업과 현대우주항공을 통합시켜 새롭게 한국항공우주산업이(KAI)란 회사로 재탄생했다. KAI는 한국형 전투기 사업 등을 전담하며 국내 방위산업계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12년 만에 부활한 대우전자와 통신계열사들

대우전자도 그룹해체 이후 10년 이상의 방황을 거쳐야 했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2013년 동부그룹에 인수됐지만, 3년 뒤 동부그룹이 해체됐다.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온 대우전자는 결국 지난 2월 대유그룹을 새 주인을 맞으면서 '대우전자'라는 사명을 부활시켰다. 

대우전자의 모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전자기업 중 하나인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다. 이 사업부를 1983년 대우그룹이 인수하면서 대우전자의 역사가 시작됐다. 특히 1990년대 초 '탱크주의'를 내세우며 가전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삼성전자, LG전자와 함께 국내 3대 가전업체로 손꼽히기도 했다.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은 뒤 2013년에서야 동부그룹에 인수됐던 대우전자. 하지만 2016년 동부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결국 채권단의 손에 의해 매물로 나왔고 지난 2월 대유그룹을 새주인으로 맞은 뒤 12년만에 '대우전자'란 이름을 되찾았다. 사진=민주신문DB

그러나 외환위기를 넘지 못하고 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전자 역시 시련을 겪어야 했다. 1998년 대우그룹은 1차 구조조정에 앞서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를 맞교환하는 빅딜을 추진했지만, 결렬됐다. 결국 대우전자는 우량자산을 자회사였던 대우모터공업에 넘기고 청산절차를 밟았다. 대우모터공업은 사명을 곧바로 대우일렉트로닉스로 변경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밀리면서 국내 가전시장에서의 입지가 좁아졌다. 

결국 대우일렉트로닉스는 1998년 디지털피아노사업부를 벨로체란 이름으로 매각했고, 2002년에는 가스보일러 사업부를 대우가스보일러, 디스플레이 부분은 대우루컴즈로 분사시켰다. 이후에도 신설된 영상기기 사업부를 대우디스플레이란 이름으로 분사시켰고, 소형모터사업부는 하남전기, 청소기는 에이스전자, 에어컨은 귀뚜라미홈시스 등에 분리해 매각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가전부분은 2013년 동부그룹이 사들였다. 동부는 인수 이후 3개월 만에 사명을 '동부대우전자'로 변경하며 소형가전 시장에서 공격적인 경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2015년 동부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대우전자의 불운은 계속됐다. 재무적 투자자들은 결국 지난 2월 딤채와 위니아에어컨으로 잘 알려진 대유그룹에 동부대우전자를 매각했고, 대유그룹은 곧바로 '대우전자'란 이름을 부활시켰다. 

대우그룹 소속이었던 통신계열사들은 현재 대우라는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우통신은 컴퓨터 사업을 대우루컴즈에 양도한 후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대우정밀, 대우파워트레인, 대우프리스틱 등으로 분사됐다. 이중 대우정밀은 S&T그룹에 인수된 후 S&T모티브로 사명으로 변경했으며, 대우파워트레인은 한국GM에 매각됐고, 대우프라스틱은 삼라마이다스그룹 계열 남성알미늄이 인수했다. 

대우그룹 계열사 중 일찌감치 주인을 만난 다이너스카드는 현대차그룹이 인수해 현대카드(왼쪽)로 사명을 변경했다. 지난해에는 대우증권을 사들인 미래에셋그룹이 두 회사를 합병시켜 '미래에셋대우'를 출범시키며 초대형 IB로의 행보를 시작했다. 사진=민주신문DB

새 주인 만난 뒤 성장하는 금융 계열사들 

대우그룹의 마지막 축으로 불렸던 금융계열사들은 대부분 새 주인을 만난 뒤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먼저 증권사관학교로 불렸던 대우증권은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전에 채권단들이 먼저 인수했다. 이후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나서면서 한동안 KDB대우증권으로 활동했다. 2015년 박현주 회장이 대우증권을 사들였고, 현재는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을 통합시켜 미래에셋대우로 변경됐다. 

카드사업을 담당했던 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2001년 현대자동차에 매각됐다. 지금의 현대카드가 바로 그곳이다. 현대카드는 이후 현대자동차그룹의 자동차 할부금융 사업을 영위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캐피탈사업을 맡았던 대우캐피탈은 아주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사명 역시 아주캐피탈로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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