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거물들의 갑질 성추행 피해자 잇달아 폭로…2차 피해도 우려

오태석 연출가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문화예술계가 연쇄적으로 폭로되고 있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운동과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 하겠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잇따르는 성추행·성폭력 폭로에 “터질 것이 왔다”는 통탄의 분위기다. 그동안 거물로 불리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은폐되었던 성추행이 ‘미투’운동의 확산에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연극계의 거물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에 이어 또 다른 문화계 인사가 성추행 의혹에 휩싸이며 문화예술계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한 연극연출가 황이선 씨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02년 학교에서 ‘연극계 대가’이자 ‘극단을 운영하는 교수님’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황씨는 “연습이 많아질수록 밥자리 술자리가 잦아졌다. 약속이나 한 듯이 (부학회장이던) 내가 옆에 앉아야 했다”며 손부터 시작해 허벅지, 팔뚝 살 등을 만졌다고 주장했다. 또한 해당 교수가 2003년 2학기에는 학교에서 남산으로 가던 차 안에서 무릎담요 속에서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폭로했다. 

황씨는 해당 교수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름만 들으면 누군지 아는 연극계 대가’, ‘극단을 운영하는 교수님’ 등의 표현으로 해당 인물이 연출가 오태석 임을 암시했다.

또한 극단 목화 출신의 배우 A씨도 오씨에게 여러 차례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A씨는 “손님이 찾아올 때마다 또 공연이 끝날 때마다 행운 가득한 대학로의 그 갈비집 상 위에서는 핑크빛 삼겹살이 불판 위에 춤을 추고 상 아래에서는 나와 당신의 허벅지 사타구니를 움켜잡고, 꼬집고, 주무르던 축축한 선생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죠. 소리를 지를 수도, 뿌리칠 수도 없었어요. 그럴 수 없었어요”라고 적었다. 

A씨 또한 역시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으나 해당 인물을 ‘ㅇㅌㅅ’이라고 지칭했고 글에서 오태석 연출의 대표작인 ‘백마강 달밤에’를 언급했다. 

해당 인물 오태석 연출은 극단을 통해 “20일 오후 2시 기자들과 만나 내 입을 통해 직접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말했으나 돌연 입장 발표를 취소했다. 

또한 오태석 연출이 속한 극단은 극단 자체에서 아직까지 입장을 낼 계획은 없다는 입장 표명을 했다. 오 씨는 연극계에서 이윤택 전 감독 보다 더욱 비중있는 거물로 통한다. 성추행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에는 연극계가 받을 충격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연극계는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인물들의 퇴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윤택 전 감독은 각종 연극 단체에서 이름이 배제된 상태로 연이어 연극계에서 퇴출당하고 있다. 한국연극협회도 이 전 감독을 제명 조치했다고 20일 밝혔다. 더불어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지방 연극 단체 관계자 역시 모두 제명했다. 

더불어 대중문화계도 미투 운동이 확산디고 있는 분위기다. 20일 배우 조민기는 성추행 논란으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사실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조교수였던 배우 조 씨는 성추행 연루 의혹으로 징계위에 회부되자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청주대는 지난해 11월 성추행 관련 투서가 학교 당국에 제출되면서 학생들을 상대로 자체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여학생들 사이에서 관련 진술이 나왔고 청주대학 양성평등위원회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조씨를 징계위에 회부했다.

그러나 조민기는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소속사는 성추행 의혹에 전면부인하고 나섰다. “명백한 루머”라면서 성추행 논란으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고 전면부인 했다.

또한 연극계는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오프라인 모임을 만드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 10시 대학로 극단 고래의 연습실에서는 관련 모임이 열리고 있고 해당 모임에 참여 중인 연출가인 설유진 극단 907 대표는 “연극계에는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을 겪은 피해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믿을 수 있는 폭로를 위한 위로를 위한 창구가 없다”면서 모임이 만들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더불어 이번 사태에 피해자와 함께 목소리를 내는 유명인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데 배우 김지우는 자신의 SNS에 “17세 때부터 방송일을 시작하면서 오디션에 갈 때마다 혹은 현장에서 회식자리에서 당연하듯이 내뱉던 남자, 여자 할 것 없는 ‘어른’들의 언어 성폭력들을 들으면서도 무뎌져 온 나 자신을 36살이 된 지금에야 깨닫게 됐다”며 위드유 운동을 지지했다. 

또한 언론매체에 과열된 취재로 인해 사실과는 다른 보도로 2차 피해를 입는 당사자도 생기고 있다. 배우 김지현이 이윤택 전 감독에 대한 성추문을 폭로했는데 일부 언론에서 동명 이인의 그룹 ‘룰라’ 출신의 배우 김지현의 사진을 사용한 것이다. 

덕분에 하루 아침에 피해자로 오해 받은 김지현은 “자고 일어났더니 난리가 났네요. 여러분 저 아니에요”라면서 “지금 기사에 보도되고 있는 이윤택 관련 김지현 배우는 제가 아닌 다른 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저는 연희단 거리패에 소속된 적이 없고, 공연배달 서비스 간다의 소속 배우”라고 정확한 소속을 밝혔다. 

이와 함께 일부 내용에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루머도 섞여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 피해자의 이름이 노출돼 신상에 위협을 받는 등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가명 등을 사용했음에도 구체적인 신상을 노출시키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편 문화예술계 전반에 퍼진 성추행 논란에 정부도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일 “문화예술, 영화계, 출판, 대중문화산업 및 체육 분야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계 명망 있는 인사들이 성추행에 이어 성폭행 논란에 휩싸인 만큼 2017년에 진행한 문학·미술 분야와 영화계를 대상으로 한 시범 실태조사의 결과 등을 바탕으로 주요 분야별 신고·상담 지원센터를 운영한다.  

또한 분야별 특성을 반영한 성희롱·성추행 예방·대응 지침(매뉴얼)을 개발해 보급하고, 예방 교육도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한편 한국극작가협회는 이 전 감독을 회원에서 제명한다고 지난 17일 입장을 냈다. 이와 함께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성명을 내는 등 각종 연극 단체에서도 이 전 감독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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