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로 찾아가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 찾기

조옥구
한자한글교육문화콘텐츠협동조합 이사장
전 동덕여대 교수

한중일(韓中日) 세 나라는 대체로 하나의 문화권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생활문화도 비슷한데 명절 차례(茶禮)는 그 중에서도 상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 년에 두 차례 설날과 추석날에는 집집마다 정갈한 옷 단정하게 차려입고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는데 매년 의례적인 일임에도 매번 낯설기만 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 더 낯선 모습 하나가 일본의 차례(茶禮)에 남아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차례상은 비교적 간단한 음식과 함께 '오이'와 ‘가지’로 짐승의 모양을 만들어 같이 올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오이는 말을 상징하고 가지는 소를 상징하며, 말은 조상이 세상으로 올 때 빨리 오라는 의미이고 소는 하늘로 돌아갈 때 타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오이는 어떻게 말을 상징하며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에겐 낮선 모습이어서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자의 도움을 빌리면 일본의 차례에 오이와 가지가 등장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오이를 나타내는 한자는 瓜(오이 과)자입니다. 瓜자는 爪(손톱 조), 爫(손톱 조)와 마찬가지로 ‘손 모양’의 글자인데, 오이를 瓜(손모양)로 표현하는 것은 오이가 ‘넝쿨손’에 의지해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이며, 손톱을 爪, 爫로 나타내는 것은 ‘손의 끝’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손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자를 만든 주인공들에게 있어서 손은 하늘이 운행하는 통로였습니다.

노자(老子)께서 설파한 도(道)라는 말도 실상은 우리 인체를 통해 하늘이 소통하는 순환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하늘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손으로, 손에서 손톱으로 이어진 통로를 타고 하늘이 몸을 거쳐 순환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손’은 하늘이 내려오는 통로가 되는 것이며 세상 만사 언제나 하늘이 먼저이므로 손을 통한 순환은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의 방향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손(手)을 수로 부르는 것도 물(水), 머리(首), 나무(樹)를 수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 '위(하늘)에서 아래로 내려온다’는 의미를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손 모양(瓜)으로 표시된 오이가 자연스럽게 ‘내려오다’라는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지는 어떻게 소를 상징하며 소는 어떻게 하늘의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가지는 모양보다 색을 주목해야하는 식물입니다. 가지는 자색(紫)의 열매를 맺는 식물인데 이 紫가 바로 하늘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紫의 윗 부분 止(발 지)와 匕(비수 비)는 각각 해와 북두칠성을 의미하는데, 해의 붉은 색과 북두칠성의 푸른색을 배합하면(糸) 나오는 색이 자색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자색(紫色)을 신성한 색, 하늘의 색, 하늘의 속성을 나타내는 색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는 대표적인 하늘의 상징입니다. 소는 두 뿔이 특징인 짐승으로, 머리의 두 뿔을 하늘에 뿌리를 내린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소는 牛(소 우)로 쓰는데, 牛자는 소의 모양이 아니라 ‘十+∪’형의 글자로 ∪는 위 하늘을 향한 소의 두 뿔을 상징합니다. 우리말에서도 뿔은 뿌리와 같고 불과 같으며 불의 뿌리는 해(=하늘)이므로 소의 두 뿔로 하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소 우’의 우라는 말도 ‘우-위’ 즉 머리 위 하늘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늘 제사에 소를 희생으로 사용한 것이나 物(만물 물), 件(사건 건), 特(수컷 특), 牡(수컷 모), 牟(소 우는 소리 모), 解(풀 해) 등의 한자에서 牛자를 하늘의 이치, 사리(事理) 등의 의미로 풀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牛와 비교해서 보아야할 글자가 午자입니다. 이 두 글자는 원래 짝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牛자가 뿔을 이용해서 만들었다면 午자는 뿔이 없다는 의미의 글자입니다. 牛(소 우)자가 뿔이 있는 소의 의미라면 午(말 오)자는 뿔이 없는 말의 의미입니다. 午자는 원래 소의 짝인 말을 나타내는 글자입니다.  牛(소 우)와 午(말 오)의 음가인 오와 우가 서로 짝이라는 점도 주목할만합니다.

한자가 만들어지는 원리에서 보면 牛와 午자는 서로 짝으로 만들어졌으므로 牛가 소와 하늘을 상징하면 午는 자연스럽게 상대적인 말과 땅을 상징하게 되는 것입니다. 仵자를 짝 오라고 부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말은 ‘소의 짝’이라는 의미입니다.

한편, 말(馬)을 마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서도 말이 ‘~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라는 우리말의 쓰임을 보면 마중, 맞다, 맞짱 등 짝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馬)를 생각하다보니 고향 마을에 어릴 때 미끄럼 타던 말무덤이 떠오릅니다. 당시에는 ‘말무덤’이라니 말을 묻은 무덤일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제 생각해보니 ‘큰 무덤’이라는 뜻에서 ‘말무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와대 뒷산에도 말바위가 있습니다. ‘말바위’라고 하니 말의 형상을 떠올리시겠지만 말의 형상과는 무관합니다. 말바위는 곧 큰바위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牛로 표시되는 牛와 午로 표시되는 말은 서로 짝이 되어 소(牛)가 하늘을 나타내므로 말(牛)은 그의 짝인 땅을 나타내게 되고 내려온다는 뜻의 오이(瓜)는 땅을 나타내고 가지는 색의 관계로 하늘을 나타내게 되어 '오이와 말’, ‘가지와 소’가 서로 음양의 상대적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한자의 속성을 이용해서 일본 차례상의 의미를 풀이할 수 있다는 것은 한자가 담고 있는 근원성을 말해준다고 하겠습니다. 동양문화 아니 세계 문화의 동질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류가 주목해야할 중요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가 한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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