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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를 품다] 내 차로 가는 세계여행1-⑮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태연한 獨 사우나 ‘충격’...“이것이 문화다”
  • 조용필
  • 승인 2018.02.1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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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시동을 걸다

2015년 4월 19일, 아침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둘째 아들 걱정이 앞서지만 떠나는 발길을 재촉합니다. 비가 내리는 새벽길을 달려 동해항으로 오는 동안 메세지와 전화가 운전이 어려울 만치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못나게 살아온 건 아니구나 괜히 마음이 뿌듯합니다. 여비가 떨어지면 꼭 연락하라고 하신 분 수두룩합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넉넉해져 안심이 되었습니다.

빗속을 달려 약속한 10시에 겨우 강원도 동해항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페리사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일사천리로 통관업무를 진행합니다. 보세 구역으로 차를 옮겨 세관 검사를 받습니다. 이틀 동안 실은 물품을 혼자서 다 내려 X-RAY검사를 받고 다시 싣느라 오랜만에 땀에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선내 화물칸으로 차를 옮긴 다음 네 바퀴를 야무지게 결박합니다. 세관원의 안내를 받아 다시 보세 구역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오후 2시. 퇴색한 유행가 가사처럼 뱃고동 길게 울리며 출항합니다. 항구에 비는 내리는데, 선창가에 서서 눈물 흘리는 이도, 손 흔드는 이도 없습니다. 아무도. 모든 사물은 제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에 열심히 매진할 때 가장 빛난다고 알고 살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이 세상에 운명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내가 고생을 한 것도 운명이었고, 열심히 노력하여 그 고생을 벗어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없던 중학생이 세계 여행을 꿈꾼 것도 운명이고, 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의 날씨는 험하고 바람까지 드셉니다. 갑판에서의 별 구경은 어림도 없습니다. 떠난다고 연락도, 작별인사도 못한 곳이 많은데 아쉽게도 이 선박은 와이파이가 불통입니다. 거친 풍랑으로 흔들림이 심한 탓에 선내 욕실에서 이리 저리 뒹굴면서 힘들게 목욕을 마치니 쏟아지듯 잠이 몰려옵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여행을 가겠습니다. 어렵겠지만 멋진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목숨 걸 만한 가치 있는 훌륭한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제 운명이라고. 그리고 명심하겠습니다. 이 여행의 최종목적지는 ‘집’이라는 사실을!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발견한 귀여운 친구들. 사진=저자 제공

독일, 유럽의 중심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독일은 예부터 지방분권제의 전통으로 각 지방의 고유문화를 균형 있게 유지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지휘 아래, 유럽의 중심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작은 농촌 마을로 들어서 잠시 차를 세웠습니다. 어느 농가에 녹슨 철제 드럼통과 양동이, 못쓰게 된 농기구 등을 이용해 만든 여러 동물들의 조형물이 너무나 훌륭한 모습으로 정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또 다른 집은 알록달록 색칠한 흙 인형들로 꾸며져 있고, 또 어떤 정원에는 나무 조각상이 기분 좋을 만큼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정원에 만발한 화초와 더불어 예술성과 정신적인 여유를 느낄 수 있었고, 지저분한 곳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잘 정돈된 마을의 모습에서 부러움이 한껏 일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부터 독일의 탄탄한 저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종교의 도시, 뷔르츠부르크

계속 달려 곧장 뷔르츠부르크(Wurzburg)로 왔습니다. 문헌상으로는 8세기경부터 이곳에 도시가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기원전 10세기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켈트족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 이 도시에는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와 성당, 광장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상과 조각상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 작품들 역시 구석구석 널려 있습니다.

인구는 13만 명 정도에 불과하고, 면적 또한 인근 도시보다 넓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주교가 성주 역할을 겸하면서 다스릴 정도로 종교적 영향력이 큰 도시였습니다. 때문에 시내 곳곳에 문화재로 지정된 걸출한 건축물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물로는 레지덴츠 궁과 마리엔카펠 교회입니다.

레지덴츠 궁(위)과 마리엔카펠 교회. 사진=저자 제공

1719년 착공해 40년만인 1759년에 완공된 이 궁을 찾은 나폴레옹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교의 거주지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후 복구됐으며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6월 모차르트 음악회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구 시청사 입구에 설치된 작은 조형물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무척 섬세한데 예술 작품 같지는 않아 자세히 살펴보니 시각 장애인을 위한 미니어처입니다.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것을 만지며 촉감으로 건축물의 전체 구조를 이해하는 용도였습니다. 다녀보니 독일의 거의 모든 유적지와 관광 명소에 크기는 작지만 의미는 거대한 이 시설물이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건물 미니어처. 사진=저자 제공

마리엔베르크 성, 아니 요새

포도가 싱그럽게 자라고 있는 가파른 비탈을 걸어 마리엔베르크 요새에 올랐습니다. 이곳은 원래 군주가 머무르던 성이었으나 군주가 지역의 주교를 겸하게 되면서 시내의 뷔르츠부르크 성에 거주하게 되자 ‘성’에서 ‘요새’ 급으로 지위가 격하된 곳입니다.

때문에 어느 시절에는 성과 앙숙 관계가 돼 끊임없이 다투기도 했다고 합니다. 요새가 돼 병영과 창고로 쓰였다고 하지만 종교와 관련한 깊은 신앙심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종교색채의 부조와 조각들이 많습니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시내의 모습은 날씨가 맑아 하늘만 푸르다면 정말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을 정도입니다.

마리엔베르크 성(위)과 성에서 내려다보는 시내 모습. 사진=저자 제공

500년 유럽의 희생자 하이델베르크 성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에서는 드물게 2차 세계 대전의 피해를 별로 입지 않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비극과 낭만이 함께 뒤섞여 있는 곳이기도 한데, 가장 어두운 상처는 바로 이곳이 나치의 본거지였다는 사실입니다.

하이델베르크에 왔으니 하이델베르크 성에 오릅니다. 급경사를 오르내리는 ‘푸니쿨라’ 이름의 비탈차 왕복권을 구입해 올라갑니다. 성의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모습도 참 멋집니다. 눈에 거슬리는 고층건물이 없고 푸른 숲과 강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습니다. 강 건너 강변 숲속 도로가 바로 그 유명한 철학자의 길입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헤겔, 괴테, 하이데커 등 쟁쟁한 철학자들은 이 길을 걸으며 사색하며 철학을 음미했다고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성(위)과 철학자의 길. 사진=저자 제공

충격적인 독일의 사우나 문화

여행을 떠나 100여 일 만에 온천에서 사우나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사우나를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여느 테마 온천처럼 샤워장도 있고 수영도 할 수 있는 따스한 온천 풀장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사우나입니다. 신선한 문화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우나 안이나 울타리 안의 작은 풀장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너무나 태연한 그들 앞에서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좋은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낯선 문화를 경험하는 것. 또 그 문화와 풍습을 이해하고, 내 것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고, 내 것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조용필  news@iminj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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