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스전] 미얀마 바다에서의 도전과 성공(16) - ‘대우의 신화’에 감격

<‘황금가스전’을 시작하며>

황금의 나라 미얀마에서 미얀마어로 ‘황금’이라는 뜻을 가진 ‘쉐(Shwe)’가스전은 국내 석유개발업계가 지난 수십 년간 해외에서 발견한 유전·가스전 중 최대 규모다. 또한 쉐 가스전은 프로젝트 선정에서부터 개발·생산까지의 모든 과정을 한국 자체의 기술력과 인력으로 주도해 온 프로젝트다.

미얀마 전역의 자료를 검토하여 광구를 선정하는 작업에서부터 탐사작업과 시추작업은 물론이고 파트너 영입, 가스전 발견 후의 평가작업, 그 이후에 진행된 가스판매를 위한 협상과 계약, 가스전 개발계획과 시공사 선정, 개발작업 감독, 생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외국 회사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실시하였다는 점에서 국내 석유개발업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가스를 발견한 미얀마 서부 해상 지역은 1970년대 미국과 프랑스, 일본 회사들이 탐사를 하여 유전이나 가스전 발견에 실패하고 철수한 후 20년 이상 어느 외국 회사도 관심을 두지 않던 버려진 지역이었다. 외국의 유수한 회사들이 탐사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지역의 자료를 분석한 끝에 가스 발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탐사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근거로 인공지진파 탐사와 시추를 실시하여 세계적 규모의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하게 되었다.

탐사작업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 난관에도 부닥쳤다. 사업에 공동으로 참여하던 인도 파트너들이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철수한 상황에서도 단독위험부담으로 측면시추를 강행하여 가스전 발견에 성공하였던 일도 그 중의 하나다. 탐사가 진행되는 동안의 일련의 긴장된 순간들 뿐만아니라, 그 이후 진행된 가스판매를 둘러 싼 치열한 협상과정,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간 가스전 개발을 위한 준비작업과 개발공사 중 일어난 여러 가지 어려움 등 실로 긴박한 과정을 거쳐왔다.

이러한 소중한 경험들을 독자들과 나누어, 석유자원에 대한 중요성과 개발의 필요성에 공감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얀마 가스전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석유개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석유개발에 관한 지식도 간간히 소개하였다. 그 동안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온 모든 동료들과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여러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자료와 사진을 제공하고 원고를 검토해 주고 그래픽을 도와주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원고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특별하고 마움을 주신 분들은 실명과 당시의 직급을 언급하였는데,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미얀마 바다에서 황금가스전을 찾다

그날 밤늦게 사무실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온 필자는 아내에게 “며칠 내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다”고 전화를 했다. 아내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지층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라며 “얼마 후면 다시 시추를 시작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어요?”라고 물었다.

“인도 회사들이 시추를 계속하는데 반대해 작업을 종료하게 되었소.”, “대우가 운영권자라면서 혼자하면 안돼요?”, “외국 파트너들이 철수한 상태에서 우리가 단독으로 시추를 강행해 가스 발견에 실패하게 되면 나 개인은 물론이고 회사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 될거요.”, “당신답지 않군요. 희망을 가지고 시도해서 꼭 성공해 보겠다고 하더니 왜 포기하려고 해요? 다시 고려해 볼 여지가 없는 거예요?”

필자는 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돌아온 후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방향과 반대되는 길을 걸어 왔다. 연구소와 국영 기업을 거쳐, 당시만 하더라도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가기를 꺼리던 민간 기업으로 옮길 때도 아내는 묵묵히 필자를 존중해줬다. 안정된 직장에 안주하기보다 새롭고 보람 있는 일에 도전하길 원하는 필자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내였기에 중요한 순간에 과감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주저앉으려 하는 필자가 무척이나 안타까웠던 것이리라. 전화를 끊은 후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동안 아쉬워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계속 귓전에 맴돌았다. 그러면서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다시 한 번 도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어떻게든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치솟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탐사팀의 젊은 직원으로부터 “이사님, 지금까지 힘들게 왔는데 가장 유망한 목표 지층을 확인도 하지 못하고 단독위험부담이라는 이유로 포기해야만 합니까? 성공불융자를 받기 때문에 회사의 재정 부담도 그렇게 크지 않으니 경영진을 설득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의 안타까운 격려와 젊은 직원의 당돌한 호소는 오기를 작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한 번 부딪쳐 봐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구쳐 올랐다.

IMF 외환위기, 대우사태, 사업 참여를 위한 경영진 설득, 미얀마 정부와 오랫동안의 협상, 시추 중에 발생한 여러 어려움들…그 많은 난관을 뚫고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포기한다는 말인가. 엎어지지 않으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시추를 해서 가스 발견에 실패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가장 유망한 목표 지층을 뚫어보지도 못하고 사업을 접을 수는 없었다. 엎어지지 않으려고, 책임을 피하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면, 필자는 물론이고 회사 입장에서도 두고두고 아쉬운 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었다.

‘모험을 하지 않고 안전한 방향으로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가능성이 있다면 나중에 닥칠 어떠한 책임이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전해 봐야 한다’라는 생각이 필자를 압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안정된 직장이었던 공기업을 박차고 나와 주변의 지인들이 모두 만류하던 민간 기업, 그것도 대우를 선택했던 것은 위험 부담을 지더라도 목표를 이뤄 보기 위해서였다. 밤이 점점 깊어 갈수록 단독위험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목표지층에 대한 시추를 추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져갔다.

마침내 결심을 하고 나자 마음이 급해졌다. 한밤중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쿠바로 전화를 걸었다. “본부장님, 제가 보낸 이메일 받으셨습니까? 시추를 종료하게 됐다고 이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래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단독위험부담으로 시추를 진행했으면 합니다.”

본부장은 “그렇지 않아도 협의하려고 했는데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라며 출장 중임에도 쿠바 현지에서 계속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당초에 가장 유망하다고 예상하였던 지층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뚫어 보지도 못하고 포기하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입니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먼저 본부장을 설득해야만 사업 추진이 가능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다음 본부장은 “좋습니다. 경영진은 내가 설득해 볼 테니 한번 해 봅시다”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러왔다. 본부장은 기꺼이 내 결심에 동의를 하고 본사에 연락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역시 대우였다, 대우였기에 가능했다

그날 아침 본부장은 당시 CEO였던 이태용 사장에게 보고했다. 사안이 시급했던 만큼 본사에서는 CEO가 주주로서 이사회 멤버인 자산관리공사와 산업은행 관계자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설득해 이사회 승인을 받아냈다.

승인 절차가 오래 걸려 시추작업을 중단하고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쓸 데 없는 기우였다. 기술진을 믿고 힘을 실ㄱ어준 경영진의 파격적인 지원이 있었던 것이다. 대우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내부 승인 절차가 까다롭고 업무 추진에 있어서 내부 또는 외부 감사를 걱정해야 하는 회사였다면 이렇게 단시간 내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승인을 받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였다. 비록 대우그룹은 해체됐지만 위기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대우의 도전정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회사의 최종 승인에 의해 단독위험부담으로 시추를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한 후, 컨소시엄 파트너들에게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문의했다. 인도 회사 ONGC와 GAIL은 당연히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통보해 왔다. 하지만 한국가스공사가 단독위험부담으로 하는 측면시추에 기꺼이 동참하겠다고 했다.

결국 각각 지분 60%와 10%를 가진 한국의 기업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가 측면시추에 소요되는 추가 투자비 전체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쉐 유망구조의 G5 지층에 대한 시추를 진행하게 됐다.

성탄절에 전해온 감격적인 소식

측면시추가 진행되던 며칠 동안은 필자의 일생에서 가장 긴장된 날이었다. 일찍이 그렇게 초조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뭔가를 기다려 본적은 없었다. 중학교부터 입시를 치른 세대라 수차례의 입학시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던 경험이 있지만, 시추 결과를 기다리던 그때만큼 간절한 심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단독위험부담이라는 무리수를 두고 시도하는 시추에서 가스 발견에 실패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까. 워크아웃 아래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는데, 필자 앞날도 걱정이지만 우리나라 석유개발의 개척자 역할을 하겠다며 필자를 믿고 대우로 들어와 그동안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우리 직원들의 앞날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여러 가지 걱정으로 잠을 설치며 보냈던 며칠이었다.

측면시추가 시작되고 1주일이 경과해 이제는 G5 목표 지층에 들어갈 때가 돼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2003년 12월 25일 성탄절 아침이었다. 시추선 현장에 나가 있던 직원의 흥분된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40미터 이상 되는 엄청나게 두꺼운 가스층을 관통했습니다. 가스 함량도 매우 높습니다.”, “사암이 나왔습니까?” 얼마 전 수직으로 시추해 상부 3개 지층을 뚫었을 때 이수와 함께 올라온 자료상에 가스의 기록이 있어서 기대를 했으나, 사암이 존재하지 않아 가스 발견에 실패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가스의 존재 못지않게 이수를 따라 사암의 암편(巖片)이 올라왔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아주 양호한 사암 암편들이 같이 올라 왔습니다.” 굴착 중에 올라오는 1차 자료인 이수나 암편으로 원유나 가스의 발견 여부를 속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40미터 이상의 가스층에다가 가스 함량도 높고 사암의 존재까지 확인됐기 때문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가스 발견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필자 양수영

부산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Texas A&M 대학교에서 지구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선임연구원과 한국석유공사 기술실 지구물리팀장을 거쳐 1996년 대우인터내셔널로 옮겼고, 에너지개발팀장, 미얀마E&P사무소장, 에너지자원실장, 자원개발본부장(부사장)으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