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여조건 ‘압류면제법’ 요구, 국회 지방선거 여론살피다 통과 좌절

‘직지심체요절’은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78년 앞선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15세기 중반 독일인 구텐베르크가 만든 서양 최초의 금속 활자보다 78여 년 빠른 14세기에 이미 우리나라는 금속 활자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인쇄했다. 이는 충청북도 청주에 있는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찍어 낸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당시에 50~100부 정도가 인쇄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현재 프랑스에서 보관중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 직지심체요절의 국내 전시가 국회의 눈치보기식 ‘입법 미비’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현재 직지심체요절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정부는 전시대여조건으로 ‘압류면제법’을 요구했으나 국회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화재 환수에 민감한 여론 눈치만 살피다 입법통과가 좌절됐다. 130년 만의 직지심체요절 귀향이 매우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지난 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추진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안(한시적 압류면제법)’ 발의를 포기한다고 정부에 통보했다. 박 의원은 작년 12월과 지난달 두 번에 걸쳐 공청회를 열고 개정안 발의를 위한 서명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다. 

이번 개정안의 가장 중요한 점은 직지심체요절의 한시적 압류면제 조항이다.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국내에서 전시하는 동안에는 우리 정부가 압류나 몰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문화재를 전시 후 소장하고 있는 외국 정부에 ‘안정적 반환’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현재 타국의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일본·프랑스도 외국과의 문화 교류를 위해 유사한 법규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들이 법안 준비 과정에서 해외 문화재 압류 금지에 굉장히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역에서 발언권이 있는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시민단체를 통해 반대 여론 조성에 나섰다. 실제로 법안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도 지역구에서 역풍을 우려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여기에는 재야사학자들이나 시민단체들이 관과한 사실이 있다. 직지심체요절은 1886년 한국에 부임한 프랑스 외교관 콜랭 드 플랑시가 구입해 자국으로 가져간 것이다. 즉 직지심체요절은 불법 약탈 문화재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2018년 12월 ‘대(大)고려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에 정부는 일본·미국·프랑스·영국 등 유럽 각국에 있는 고려불화를 들여와 전시할 방안인데 그 중 18세기 말엽 프랑스로 건너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국내에 전시 된 적이 없는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의 전시에 총력을 쏟았다.

지난 3월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직지심체요절 대여에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하나 붙였는데 ‘압류면제법’을 만들어야 직지심체요절을 전시대여하겠다는 것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측은 바로 프랑스측에 “문체부 장관 명의의 반납 확약서를 써주겠다”고 설득했으나 지난해 우리 법원의 쓰시마 불상 인도 판결을 거론한 프랑스 측은 끈질기게 ‘압류면제법’을 요구했다. 

프랑스측이 우려하고 있는 대마도 불상 인도 판결은 지난 2012년 일본 대마도에서 한국 절도범들이 훔친 고려 불상에 대해 2017년 1월 대전지법은 일본 사찰의 환수 요구를 거부하고 원 소재지 충남 서산 부석사에 불상을 넘기도록 판결했었다. 

이 판결 이후 해외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해외로부터 구입하거나 약탈한 자신들의 한국 문화재가 한국에 가면 압류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전시 대여를 기피하고 있다.

이에 다급한 전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발의를 포기한 박 의원 대신 다른 의원을 알아보고 있지만 선뜻 나서는 의원이 현재 없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다른 의원들도 압류면제법에 대한 일부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 한 관계자는 “올 12월 전시에 직지심체요절을 선보이려면 이달 임시국회 중 법안이 통과되어야 하는데 현 상황이라면 올해 전시는 힘들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좌초된 이번 계획을 정부나 국회에만 미루지 말고 다른 외교 채널을 이용해 다른 대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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