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서양 근대건축을 거닐기 위해서는, 런던 근교 켄트에 위치한 레드하우스(Red House, 1859~60)에 먼저 들르는 것이 좋으리라.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공업화와 기계화가 진전된 영국에서는 오히려 19세기 후반 이에 저항해 장인의 손길을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우리는 이를 ‘영국 수공예운동(English Arts and Crafts Movement)’이라 부른다. 레드하우스는 바로 이 수공예운동의 선구적 작품으로서 빈번히 근대건축사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주택이다. 

19세기 말 런던에 머물며 영국의 주택을 조사했던 독일인 헤르만 무테지우스는 평한다. 이 집이 “새로운 예술 문화의 첫 번째 개인주택이고, 안팎을 통합된 하나로 구상해 지은 첫 번째 주택이며, 역사상 첫 번째의 근대주택 사례”라고.

레드하우스는 28세의 신출내기 건축가 필립 웨브(1831~1915)가 이제 갓 결혼한 25세의 청년 윌리엄 모리스(1834~96)와 그의 아내를 위해 설계한 집이다. 그런데 여기엔 신혼집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옥스퍼드 대학시절부터 여러 문필가와 예술가 친구들을 사귀었고, 스스로도 건축과 미술에 몰두했던 모리스가 이 집을 예술과 삶의 융합을 위한 본격적 교류의 장으로 꿈꿨기 때문이다. 

웨브가 건물과 여러 가구를 디자인했지만 계단실 벽화는 화가인 에드워드 번존스가, 벽걸이 융단 디자인은 모리스가 직접 맡았다. 집의 지극히 사소한 부분까지도 예술적 열정으로 손수 제작된 것이다. 기계화된 사회와 대량생산 상품의 저급성에 대한 강한 반동인 셈이다. 이들은 더 나은 미적 수준의 일상용품을 제작해 대중에 보급한다는 목적으로 공예회사를 차리기에 이른다(Morris, Marshall and Faulkner & Co., 1861). 이 같은 활동과 이념은 레드하우스가 담았던 내용이자 사회주의 이상가 모리스의 젊은 시절 배경이다.

건축적 측면을 보자. 외벽에는 붉은 벽돌이, 지붕에는 검붉은 타일이 집을 온통 뒤덮고 있다. 레드하우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다. 지금 우리에겐 별다를 게 없지만, 19세기 중반의 영국에선 벽돌을 주재료로 해 그대로 노출시킨 주택이 드물었다. 벽돌을 쌓았다면 그 위에 회반죽을 바르는 것이 관례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집은 좌우대칭이나 비례 같은 고전적 규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능을 따라 L-자형 평면이 계획됐고, 평면구성이 외관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불규칙한 매스와 창의 배열은 실내 공간의 솔직한 표출이다. 

모리스와 웨브는 이탈리아의 고전규범이 아닌 자국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로 눈길을 돌렸고, 중세 후기를 가장 이상적인 시점으로 참조했다. 그때는 신앙과 삶의 통합 속에서 예술(공예)의 아름다움이 노동의 기쁨과 조화를 이룬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웨브가 선보인 고딕의 디테일은 그 같은 전통과 관계있다. 건물 곳곳에 발견되는 뾰족아치와 급경사 지붕이 대표적이다. 더욱이 지붕의 경우는 다양한 프로파일이 겹쳐지고 그 위로 솟아오른 굴뚝들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중세 고딕 마을의 불규칙한 실루엣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런 배경에는, 당대 영국에서 무르익어가던 건축적 아이디어가 있었다. 이는 오거스트 웰비 퓨진과 존 러스킨의 영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퓨진이 1841년 출판한 『기독교 건축의 참된 원칙』은 19세기 영국 건축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참고서였는데, 건축에서의 “편의성, 축조성, 적절성”을 강조했고 고딕건축을 이에 가장 합당한 결과물로 제시했다. 레드하우스에 나타난 기능적 평면, 정교한 벽돌쌓기의 외적 표출, 부분과 전체의 구성 및 매스의 집합성은 퓨진의 원칙을 잘 드러낸다. 

한편, 러스킨은 1850년대 초 출판한 『베니스의 돌』에서, 편만했던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와 르네상스의 건축원칙에 대항해 훨씬 건강한 영국건축, 즉 고딕건축의 부활을 촉구한다. 지중해의 라틴 문화를 등지고 전설 속 북구로의 어렴풋한 근원을 추구했던 러스킨의 낭만성은 “해가 지지 않는” 빅토리아 왕조의 젊은이들을 고무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허면, 레드하우스가 함의하는 과거지향성과 지역성은 근대건축이 내세웠던 시대정신과 크게 배치되는 것 아닌가? 기계를 이용한 대량생산, 보다 국제적인 보편성, 부유한 소수가 아닌 대중을 위한 사회성이 시대적 요청이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역사가 이 건물에서 주시한 바는 과거를 향한 노스탤지어가 아니었다. 그것이 조명한 바는 그 다른 얼굴인 정직한 노동과 윤리성이었고, 일상용품의 예술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었으며, 건물 내적 기능의 솔직한 외적 표현이었다. 이런고로 레드하우스에서 촉발된 영국 수공예운동의 정신은, 예컨대, 독일로 전파돼 독일공작연맹(Deutsche Werkbund)의 창설(1907)을 유도했고, 거기서 기계주의 대량생산 시스템과 만나 근대건축운동의 꽃을 피우도록 일조한다.

(이 글은 필자가 쓴 《건축수업: 서양 근대건축사》(도서출판 집, 2016)의 레드하우스 챕터를 요약한 것입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이 책을 참조해주세요)

정원 쪽에서 본 레드하우스.. 사진=김현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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