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학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해 10월 대전의 한 아파트에서 교통사고로 소방관 부부의 6살 난 어린이가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관련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진행 중이다. 

차량 운전자는 사망사고를 야기했기 때문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횡단보도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어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따라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하 교특법)상 중과실에 해당하는 횡단보도 보행자보호의무위반은 적용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일반도로에서의 횡단보도 사고에 비해 운전자에게 경한 벌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해 8월에도 비슷한 사고가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바 있었다. 역시 6살 아이가 아파트 단지 안 보도 위에서 승합차에 치여 크게 다쳤지만 사고지점이 도로교통법에 의한 보도가 아닌 아파트 단지 안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운전자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중상해를 입은 사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보호 받아야 할 아파트 단지에서 오히려 무방비로 교통사고에 노출된 셈이다. 어째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실제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에는 입주민 소유의 차량과 택배·이삿짐 차량 등 업무용 차량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는 법적으로 도로교통법상의 도로로 인정되지 않는다. 지난 2013년 대법원은 사유지의 경우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느냐가 도로의 기준이 된다고 하면서 차단기가 설치돼 주민들만 통행하거나 방문객이 주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곳이면 도로가 아니고, 설령 차단기가 있더라도 외부차량이 자유롭게 들어오는 곳은 도로가 된다고 설명하였다. 

같은 이유로 군부대나 대형 공장 내에서 진입 차량을 통제하는 곳에 있는 길은 도로가 아니고 식당 주차장이나 대형 관공서의 주차장은 누구나 이용 가능하기 때문에 도로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견해에 따르면 차단기가 설치돼 있는 등 통행에 제한이 있는 아파트 단지 내 도로는 도로교통법상의 도로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파트 단지 내에서의 교통사고는 법적으로 일반도로에서의 교통사고와 달리 취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국민청원은 아파트 단지 내 도로를 도로교통법이 적용되는 일반도로로 규정해 단지 내 교통사고를 동일한 잣대로 엄중 처벌해 달라는 것이다. 건전한 법감정과 법상식에 부합하는 당연한 요구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아파트 단지 내로 도로교통법의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넘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의 특혜를 규정하고 있는 교특법의 폐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난 1982년부터 시행된 교특법의 핵심내용은 교통사고 가해자가 손해배상금 전액을 보상하는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해 있으면 처벌받지 않도록 한 것에 있다. 

다만, 사고 원인이 가해 운전자의 신호 위반, 무면허 운전, 중앙선 침범, 횡단보도 사고, 보도 침범, 스쿨존 사고, 20킬로 이상 과속 등 중대한 과실 12개에 해당하거나 가해자가 음주운전, 뺑소니, 사망 사고, 중상해 사고를 일으킨 경우에는 처벌이 가능하다. 이 특례법의 제정 목적은 교통사고로 인해 전과자가 양산되는 것을 막고 무한보험제도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신속하고 완전한 피해배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데 있다. 물론 교특법이 이런 긍정적 기능을 전혀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운전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특례규정으로 인해 운전자의 안전의식 및 법규범준수의식이 약해지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많은 인명사상을 야기하는 교통사고 유발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통사고를 내더라도 종합보험에만 가입되어 있으면 웬만해선 처벌받지 않는다는 안도감과 배짱이 부주의한 운전행태를 낳고 있는 것이다. 

설령 운전자의 중대한 과실이 인정되어 기소되더라도 무한보험에만 가입되어 있으면 그 처벌은 매우 관대하게 내려져서 대부분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실형을 선고 받는 경우는 1~2%에 불과한 실정이다. 돈으로 해결되면 형사처벌은 쉽게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특례법의 규정이 심각한 인명경시풍조를 낳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차량과 보행자가 혼재하는 모든 공간에서 운전자는 강자이고 다치기 쉬운 인명은 약자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이 시점에서도 강자 위주의 도로교통법체계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2016년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4,29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현재 OECD 어디 나라에도 우리와 같이 일방적으로 운전자에게 유리한 도로교통법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청와대가 국민들의 청원에 본질적인 문제해결 방안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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