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를 품다] 내 차로 가는 세계여행1-⑭

<프롤로그> 시동을 걸다

2015년 4월 19일, 아침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둘째 아들 걱정이 앞서지만 떠나는 발길을 재촉합니다. 비가 내리는 새벽길을 달려 동해항으로 오는 동안 메시지와 전화가 운전이 어려울 만치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못나게 살아온 건 아니구나 괜히 마음이 뿌듯합니다. 여비가 떨어지면 꼭 연락하라고 하신 분 수두룩합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넉넉해져 안심이 되었습니다.

빗속을 달려 약속한 10시에 겨우 강원도 동해항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페리사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일사천리로 통관업무를 진행합니다. 보세 구역으로 차를 옮겨 세관 검사를 받습니다. 이틀 동안 실은 물품을 혼자서 다 내려 X-RAY검사를 받고 다시 싣느라 오랜만에 땀에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선내 화물칸으로 차를 옮긴 다음 네 바퀴를 야무지게 결박합니다. 세관원의 안내를 받아 다시 보세 구역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오후 2시. 퇴색한 유행가 가사처럼 뱃고동 길게 울리며 출항합니다. 항구에 비는 내리는데, 선창가에 서서 눈물 흘리는 이도, 손 흔드는 이도 없습니다. 아무도. 모든 사물은 제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에 열심히 매진할 때 가장 빛난다고 알고 살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이 세상에 운명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내가 고생을 한 것도 운명이었고, 열심히 노력하여 그 고생을 벗어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없던 중학생이 세계 여행을 꿈꾼 것도 운명이고, 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의 날씨는 험하고 바람까지 드셉니다. 갑판에서의 별 구경은 어림도 없습니다. 떠난다고 연락도, 작별인사도 못한 곳이 많은데 아쉽게도 이 선박은 와이파이가 불통입니다. 거친 풍랑으로 흔들림이 심한 탓에 선내 욕실에서 이리 저리 뒹굴면서 힘들게 목욕을 마치니 쏟아지듯 잠이 몰려옵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여행을 가겠습니다. 어렵겠지만 멋진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목숨 걸만한 가치 있는 훌륭한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제 운명이라고. 그리고 명심하겠습니다. 이 여행의 최종목적지는 ‘집’이라는 사실을!

체코, 유럽 한가운데 역사의 한복판

유럽 대륙 한가운데, 내륙에 자리한 이 나라에는 해안선이 없습니다. 바다 대신 독일,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어 지도를 보면 ‘이 나라도 참 많이 싸웠겠구나’ 하고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은 독일이 폴란드의 바르샤바를 기습 폭격하면서 시작됐는데, 폴란드의 이웃인 체코는 독일의 공습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히틀러가 체코의 공업 기반 시설을 군수물자 생산기지로 활용하려고 꾸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체코 경제는 공업을 중심으로 종전 후 기계류와 무기류, 기타 철강 소비재를 수출하며 호황을 구가하게 됩니다.

천년고도 프라하

우리는 프라하(Praha)로, 영어로는 프라그(Prague), 독일어로는 프라크(Prag)라고 하지만 많은 여행전문가들은 동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입을 모읍니다.

프라하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구 시가지를 찾았습니다. 11세기에 도시의 모양을 갖췄다는 이곳은 1992년 도시 전체가 ‘프라하 역사지구’로 지정됐습니다. ‘구 시청사’라고 하면 현지인들도 잘 모르고 ‘천문 시계탑’이라고 해야 알 정도로 시계탑이 유명한 곳입니다.

시계탑은 매 정시마다 아름다운 종소리와 함께 시계 옆의 작은 창이 열리고, 성경의 12사도 조각상이 시계 주위를 회전합니다. 단지 몇 초에 불과한 작은 움직임이지만 이를 보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듭니다.

시침, 분침, 초침 말고도 뭐가 저리 복잡할까 자세히 봅니다. 시간 표시 외에도, 일출, 일몰, 월출, 월몰까지 표시돼 있습니다.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어 한참동안 지켜보고서야 겨우 이해가 됐습니다. 1400년대 초 만든 지 600년이 지났으나 처음 형태 그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하니 눈으로 보면서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천문시계가 만들어진 뒤, 복제품을 만들지 못하도록 시계를 만든 장인을 죽여 버렸다고 합니다. 모르고 보았을 땐 세계에서 하나 뿐인 시계를 보는 기쁨이 있었는데, 알고 나니 참 애잔합니다.

시계탑 위에서 프라하 시내를 바라보는 풍경은 한마디로 장관입니다. 고층건물이 없어 시야를 가리지 않는 시원한 스카이라인 아래로 역사와 전통이 고즈넉이 담겨 있는 나지막한 건물들이 지평선까지 사방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모양, 똑같은 색상의 건물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비슷한 듯 하지만 각기 개성이 분명한 건물들입니다.

시계탑에서 내려다보면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도 장관입니다. 정시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주니 덩달아 소매치기들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프라하에 오면 지갑 조심하길 빕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라하 성

나흘간 프라하에 머물면서 프라하 성의 놀랍고 멋진 모습을 보려고 매일 찾아 갔습니다. 이 성만 보고도 체코의 옛 영화는 지금보다 훨씬 대단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프라하 성은 궁전과 교회, 성당이 한 건물에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의 상징물이며, 여러 방면에서 유럽에서 손꼽히는 성입니다.

9세기 말부터 공사를 시작해 무려 900년 동안 공사가 이어지다 보니 건축 양식도 시대에 따라 최초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시작해 고딕 양식도 추가되고 르네상스 양식도 가미돼 복잡 미묘합니다.

흔히 ‘천 년의 역사’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프라하 성에는 실제로 천 년이 넘은 건축물도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300년쯤은 ‘애기’급입니다. 정교한 조각, 높이 솟은 첨탑, 화려한 장식, 다채로운 색채, 많은 박물관 등 프라하 시내 어디에서도 보이는 이 성은 중세의 예술품이 가득 차있고 귀중한 건축 양식과 장식이 넘쳐나는 진정 프라하의 보물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가까운 나라, 체코

흔히 맥주 하면 독일 맥주를 최고로 치지만 세계에서 맥주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사실 체코입니다. ‘버드와이저’도 체코의 맥주 회사입니다.

체코는 유리의 원료인 규석도 풍부해 13세기부터 크리스탈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또한 이 유리의 투명도를 높이는 데 사용되는 탄산칼륨도 풍부해 프라하는 일찍부터 유럽 유리 공예의 중심지가 됐습니다. 체코는 몰라도 ‘스와로브스키’는 압니다. 스와로브스키는 생산보다 판매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회사입니다.

이런 공업적 사실 외에 예술 문화적 측면에서도 체코는 유럽의 강국입니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곳이 이 도시라고 늘 좋아했다고 합니다. 매년 5월과 6월 열리는 체코 최대의 음악축제도 ‘프라하의 봄’이라고 불립니다. 작곡가 ‘드보르작’도 이 나라 태생입니다. 그는 체코의 전통 민속 음악의 멜로디와 리듬을 기반으로 많은 곡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슬라브 춤곡’, ‘신세계 교향곡’ 등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