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천정부지 유통질서 와해...그래픽카드 개발사 “채굴 열풍에 생산량 늘리기엔 위험부담 커”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암호화폐 채굴장. 사진=조성호 기자

[민주신문=조성호 기자] 최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채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채굴에 필수 장비인 그래픽카드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국내에 그래픽카드를 유통하는 업체들 역시 제품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고성능 그래픽카드의 재고가 남아있지 않은 것. 설령 남아있다 하더라도 상당한 웃돈을 줘야 구매가 겨우 가능할 정도로 그래픽카드 유통 질서가 혼란에 빠진 상태다.

25일 전자상거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화폐 채굴 열풍으로 인해 그래픽카드 매출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옥션이 최근 3개월 그래픽카드 매출을 집계한 결과 1년 전과 비교해 145%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11번가와 G마켓의 그래픽카드 매출 역시 각각 141%, 61%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갑작스런 매출 증가로 인해 가격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현상이 고스란히 가격에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가격비교 사이트 에누리닷컴에 따르면 인기 그래픽카드 제품들의 최저가격은 최대 65%까지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상화폐 채굴 성능에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그래픽카드들의 가격 상승이 컸다. ‘ASUS 지포스 GTX1050 D5(3G)’ 그래픽카드의 경우 지난 12월3일 기준 27만6500원에서 25일 기준으로 45만4000원으로 64%의 증가폭을 보였다.

이 같은 원인으로는 가상화폐 채굴업자들의 그래픽카드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채굴업자들이 그래픽카드 유통사가 그래픽카드를 소매상으로 넘기는 과정에서 제품들을 사재기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채굴장을 운영하는 한 업자는 “시중에서 그래픽카드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미리 유통점에 5억원 정도의 금액을 예치시켜놓고 그래픽카드가 입고되는 대로 가지고 오고 있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투자자들의 요구를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 계열의 그래픽카드가 채굴에 사용되고 있다. 사진=조성호 기자

이로 인해 국내 일반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고성능 PC를 조립하는 과정에서 그래픽카드는 필수인데 비싼 가격에 구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PC방 창업을 준비 중인 예비 창업자들에게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 이 같은 현상은 크게 변화지 않을 전망이다. 그래픽카드 개발사인 엔비디아나 AMD 모두 칩셋(GPU) 생산 수량을 늘리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암호화폐 열풍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늘어난 수요를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엔비디아코리아 관계자는 “가상화폐 채굴 열풍으로 그래픽카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 같은 수요에 따라 생산량을 늘리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며 “현재 엔비디아의 경우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에 필요한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올해 역시 예전과 비슷한 생산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내 그래픽카드 유통업체들의 물량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암호화폐 채굴 열풍은 물론 배틀그라운드 등과 같은 고성능 그래픽카드를 요구하는 온라인 게임들이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수요가 더욱 확산되고 있기 때문.

더구나 전통적으로 연말연초는 전자제품의 판매가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시기로 컴퓨터 역시 가장 많은 판매 시점으로 꼽힌다. 그래픽카드가 유통되는 조립PC 시장 역시 이 시기가 성수기로 분류된다.

국내 그래픽카드 유통 업체로는 제이씨현시스템과 이엠텍, 갤럭시, 코잇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유통사는 ASUS, 기가바이트, MSI 등 그래픽카드 제조사의 제품을 국내로 들여오는 역할을 한다. 제조사에 따라 유통망을 한 업체에게만 독점으로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래픽카드 개발사인 엔비디아나 AMD 모두 수요 확산에 맞춰 생산량을 늘리지 않을 계획이어서 그래픽카드 제조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당분간 그래픽카드 품귀 현상은 지속될 전망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값비싼 가격을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재고가 남아있는 경우가 흔치 않아 소매상들도 곤란한 상황”이라며 “국내 유통사로서는 제품 수급에 한계가 있어 사실상 이 같은 갑작스런 품귀 현상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채굴 열풍으로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모두 채굴장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향후 중고 제품으로 나오는 제품들은 채굴에 쓰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꼼꼼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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