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 민주신문 편집국장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UAE)와 원전 수출 계약, 2011년 1월 아랍에미리트에 아크부대 파병, 2013년 아랍에미리트와 상호군수지원협정(MLSA) 비밀리에 체결, 2017년 12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중동 특사 방문 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독대, 2017년 12월 자유한국당 청와대 앞 항의집회…

위는 아랍에미리트 원전과 관련해 연도별로 사실관계를 열거한 것이다. 이 원전을 수주한 지 횟수로 10년이 됐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 임 실장의 중동 방문을 전후해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청와대 해명은 묵은 그대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새해 2018년이 밝았으니 잘못된 건 바로 잡고 굽은 건 펴졌으면 좋겠다. 모 언론사는 아랍에미리트에 특파원을 급파해 현지 교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의혹을 규명하고 있다. 국익을 헤치지 않는 차원에서 밝혀질 건 빨리 밝혀져야 옳다. 소모성 논쟁은 국익을 좀먹는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관련 의혹과 해명을 역순으로 복기해 보면 작게나마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언론자유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가린다고 덮일 게 없고, 덮는다고 잊혀질 게 만무하기 때문이다. 촛불정국에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이기에 과거청산 못지않게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국정 최우선 과제라 믿기 때문이다. 불은 몰래 끄기 어렵다. 몰래 끄다가는 탈난다. 지금의 원전 의혹과 해명이 그 모양이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하고 한 달 여 만에 비서실장이 또 갔으니 모르게는 무슨 일이 있음에 틀림없는 노릇이다. 급하게 항공편을 예약하느라 일행이 좌석을 함께 하지 못하고 따로 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현재 청와대는 아랍에미리트 왕세제(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의 최측근인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1월 방한하면 여러 의혹이 분명히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으로 전해진다. 

불거지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의혹과 관련해 먼저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입장을 들어보자. 자유한국당은 1일 임 실장의 아랍에미리트 방문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가 아랍에미리트 원전 게이트에 대해 거짓으로 일관하더니 이제 야당을 향한 협박질도 서슴지 않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전임 정부 핑계가 만병통치약인지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갈등설'을 퍼뜨리며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수주했던 UAE 원전과 관련해 이면 계약 여부를 조사했던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을 마치 이 문제 때문에 '아랍에미리트 원전 게이트'가 불거졌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문재인 정권이 나선 것처럼 언론공작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런 졸렬함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정권 집권 이후 아랍에미리트 원전 사업 현지 하청업체들이 물건 납품과 대금 수령이 힘들어져 원전 건설 사업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며 "인기영합, 정치보복을 위해서는 국가 간의 신뢰관계와 국제사회에서의 외교관계, 국익마저도 걷어차는 파렴치한 정권이 되지 않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이 같은 야당의 의혹 제기에 대해 일부는 사실로 인정하기고 하지만 일부는 강력하게 부정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청와대는 임 실장이 아랍에미리트 방문 전 최태원 SK 회장을 독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랍에미리트 방문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임 실장은 최 회장 외에 다른 대기업 고위 관계자들도 개별적으로 면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 실장이 최 회장을 청와대 외부에서 30분 정도 만나 티타임을 가졌는데 아랍에미리트 특사 방문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느 곳인지 밝히긴 어렵지만 만난 적이 있다. 총수나 총수 대리인들이 면담을 요청하면 못 만날 이유가 없지 않느냐. 기업들의 어려움도 듣고,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운용 방침도 설명해줘야 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임 실장을 만난 자리에서 아랍에미리트 정유시설 건설과 관련된 문제를 해소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 언론은 이명박 정부 시절 아랍에미리트와 체결한 각종 계약을 현 정부가 조정하려는 과정에서 아랍에미리트 측이 반발했고, SK 계열사의 경우 10조 원 규모의 정유시설 건설 계약이 백지화될 위기에 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결국, 임 실장의 특사 파견이 양국 간 갈등을 무마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즉각 부인했다. 임 실장이 최 회장을 청와대 외부에서 만난 것은 사실이나 두 사람의 만남과 임 실장의 아랍에미리트 방문은 별개라는 것이다.

SK그룹 역시 "현재 아랍에미리트에서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가 임 실장의 아랍에미리트 특사 파견 배경을 뚜렷이 밝히지 않고 있어 논란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주무부처가 아닌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재벌 회장들을 비공개로 만나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아랍에미리트 원전과 관련해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도 여러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급기야 임 실장의 증동 방문에 즈음해 일부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국방부가 최근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아랍에미리트와 비밀리에 상호군수지원협정(MLSA)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MLSA는 양국 군대가 전시와 평시 군수지원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물자와 용역을 지원하는 협정이다.

2011년 UAE에 아크부대를 파병한 데 이어 군수물자까지 지원하는 MLSA를 추가로 체결하면서 유사시 아크부대는 중동지역 분쟁에 자동 개입해야 할 위험을 떠안게 됐다는 지적이다. 임 실장이 특사 자격으로 아랍에미리트를 전격 방문한 것도 이처럼 과거 정부 시절 원전 수주의 대가로 군사지원을 하면서 왜곡된 양국 관계를 바로 잡기 위한 시도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1일 “2013년 10월쯤 한국과 UAE의 군수분야 국장급이 만나 비공개로 MLSA를 체결했다”며 “중동지역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국회에도 MLSA 체결을 알리지 않고 청와대와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은밀하게 진행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후 양국은 국장급 실무자가 매년 양국을 번갈아 가며 군수협력을 위한 정례 회의를 열고 있다.

양해각서(MOU) 형식으로 맺은 한국-아랍에미리트 간 MLSA에는 긴급사태, 작전, 연습, 평화유지활동, 탄약지원 등의 상황에서 우리가 UAE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아랍에미리트 주둔 아크부대의 임무를 특수부대 교육훈련 지원, 연합훈련, 우리 국민 보호로 한정한 국회 파병동의안의 범위를 넘어설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국방부는 아랍에미리트와 체결한 MLSA의 존재 자체를 철저히 감춰왔다. 1988년 미국을 시작으로 2007년 뉴질랜드, 2012년 스페인ㆍ영국, 2016년 독일 등 15개국과 MLSA를 체결한 사실은 국방백서를 통해 공개하면서도 아랍에미리트와 관련된 내용은 뺐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최근 “양국 간 신의를 고려해 아랍에미리트와의 MLSA 체결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2011년 1월 파병된 아크 부대는 아랍에미리트 군에게 특전 교육 훈련을 시키는 것이 주 임무였다. 그런데 파병 3년쯤 지나자 더 이상 가르쳐 줄 게 없는 상황이 됐다. 아랍에미리트 측이 새로운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요구하기에 이르는 이유다. 하지만 몰래 감춰둔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아랍에미리트의 요구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합참 관계자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으려고 노력은 해봤지만 없었다”며 “검토 중이라고 답변하면서 시간을 끌었다”고 털어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일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과정 의혹에 대해 “이면 계약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불거져오는 이면 계약 의혹은 대체 이렇다. 첫째, 군사 분야 지원 약속이다. 이명박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에 육해공군의 틀을 잡아주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아크부대 파병으로 일부분은 이행했지만 나머지 군사 지원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아크부대도 이제는 쓸모를 다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 군사 분야 양해각서는 이제 유명무실해졌다.

둘째는 아랍에미리트와 원전 수출 계약을 하면서 핵 폐기물을 우리나라로 들여와 처리하기로 했고, 리베이트도 오고 갔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인 된 바는 없다. 팩트(사실)은 아니다. 의혹일 뿐이다.

아랍에미리트 바카라원전은 관련산업 부가가치까지 합치면 74조원 규모다. 소나타급 승용차 200만대 수출과 맞먹는다. 세계에서 6번째 원전수출국인 우리가 중동에 최초로 세웠다. 바카라원전은 우리에게 약 74조원 국부 창출을 안겨줬다. 그러나 해가 바뀌었지만 도통 알 수 없는 게 아랍에미리트 원전 관련 의혹과 해명이다. 어마어마한 국부창출이 현재진행형이니 궁금증이 더해진다. 평소 친분이 있는 청와대 출입 기자에게 물어봐도 팩트가 원천 봉쇄돼 알 길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워낙 베일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차치하고 사이다 같이 시원한 팩트가 빨리 가려지길 바란다. 팩트가 빨리 가려져야 국격(國格)이 바로 서고 그것이 국익(國益)에 도움이 된다. 문재인 정부 국책과제인 적폐청산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아랍에미리트 왕세제(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의 최측근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1월 방한하기 전에 청와대는 여러 의혹을 분명히 밝히고 해명해야 옳다.      

과거에서 배우되 과거를 현재의 시각으로 재단(裁斷)해서는 못쓴다. 지난 정부의 해외자원개발을 무조건 폄하하는 건 지속가능 차원에서 위험하다. 잘못된 건 바로 잡아야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옳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란 게 있다. 상대를 비난하는데 에너지를 허비하면 똑같이 상대에게 당한다. 가고 가다보면 알게 되고, 하고 하다보면 깨닫게 된다.(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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