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원대 상품권깡 사건 장본인 구속 위기 넘기자 경쟁자들 내쳐

3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대구지검의 조사를 받고 나오는 박인규 DGB금융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민주신문=서종열기자] “사태를 수습하고 거취를 고민하겠다.”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았던 지난 8월 ‘거취’ 발언으로 ‘자진 사퇴설’에 휩싸였던 박인규 DGB금융그룹 회장(대구은행장 겸임)이 대규모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26일 DGB금융그룹과 대구은행은 4명의 자회사 대표를 유임시키고, 18명의 임원을 승진시키는 대규모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비자금 수사와 직원 성추행 의혹,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연루 등 뒤숭숭한 내부조직을 추스르고 조직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 노성석 DGB금융지주 부사장과 임환오-성무용 부행장 등 등기임원 3명이 모두 퇴진했다. 이들은 금융권에서 박 회장의 차기 인물들로 거론됐다. 반면 박 회장 측근 임원들은 대거 승진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놓고 “구속위기를 면한 박 회장이 인사를 통해 경쟁자들을 모두 제거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DGB금융그룹의 이번 인사에 ‘보복성 인사’라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행장 유력후보 3인방, 모두 해임 

DGB금융그룹은 현재 비자금 조성 혐의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박 회장을 비롯해 대구은행 간부급 17명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지검은 2014년 3월부터 올해 8월까지 법인카드로 총 32억70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구매한 뒤, 이를 판매소에 되파는 방식(상품권 깡)으로 비자금 30억원을 조성한 혐의로 박 회장과 대구은행 간부들을 수사 중이다. 

박 회장을 궁지로 내몬 비자금 사건은 대구지방경찰청은 이와 관련한 제보를 통해 내사에 착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경찰은 지난 9월 대구은행 제2본점 등 12곳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고, 지난 10월13일과 20일, 12월13일 등 3차례에 걸쳐 박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인 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대구지방검찰청이 혐의에 대한 보강수사를 지시하면서 영장을 기각했다. 

DGB금융그룹의 26일 임원인사는 이런 상황에서 급작스레 단행됐다. 비자금 사건이 터진 지난 8월 노조와의 대화에서 "사태를 수습하고 거취를 고민하겠다"고 밝혔던 박 회장이 구속위기를 모면하자 곧바로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에 나선 것이다. 

게다가 박 회장은 이번 임원인사를 통해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를 모두 내쳤고, 조직개편을 통해 자신의 권한을 더욱 강화했다. 사실상 친정체재 구축에 나선 것이다. 

실제 이번 임원인사에서 노성석 DGB금융지주 부사장과 임환오-성무용 대구은행 부행장 등 등기이사 3명이 모두 해임됐다. 이들은 올해 초 DGB금융그룹 차기 회장 선임 절차 진행 당시, 박 회장과 함께 최종 후보자 명단에 올랐던 이들이다. 박 회장 입장에서 보면 잠재적인 경쟁자였던 셈. 이에 금융권에서는 DGB의 이번 임원인사가 '보복성 인사'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반면 DGB금융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대구상고 출신들과 영남대 인사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대구상고와 영남대는 박 회장의 모교다. 사실상 박 회장이 자기사람들을 대거 승진시키며 친정체제를 강화한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 상무급 이상으로 승진한 DGB금융지주와 대구은행의 임원 18명이다. 이중 대구상고 출신은 절반에 가까운 7명에 달한다. 직급상 그룹 내 2인자로 불리는 김경룡 DGB금융지주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대구은행의 2인자가 된 박명흠 부행장은 영남대 출신이다. 

박 회장과 함께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임원들도 승진했다. 김남태 대구은행 상무는 DGB금융지주 부사장보로, 김태종 DGB금융지주 전략기획부장은 대구은행 상무로, 여민동 대구은행 상무는 부행장보로 각각 승진했다. 

구속영장 기각됐지만, 재청구 가능성 남아있어

이번 인사와 관련 등기이사 3인의 무더기 해임에 따른 보복성 인사 논란에 친정체제 구축 의혹까지 제기됐지만, DGB금융그룹은 "조직 안정과 쇄신 차원의 인사"였다는 입장이다. 비자금 사건을 비롯한 성추행 논란, 금감원 채용비리 연루 등 민감한 사안들로 뒤숭숭한 내부분위기를 안정시키고, 도약을 위해 인적쇄신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DGB금융그룹의 비자금 조성 혐의로 드러난 뒤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은 대구은행 제2본점 앞에서 '박인규 회장 즉각 사임'을 요구했다. 사진=뉴시스

금융권에서는 그러나 "쇄신 차원의 인사로 보기는 어렵다"며 "잠재적 경쟁자들을 모두 내치고, 박 회장 친정체제를 강화한 것이 이번 인사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차기 회장 후보자들을 모두 사퇴시켰고, 자신과 관련된 임원들을 대거 승진시켜 요직을 맡긴 것은 친정체제 구축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금융권의 시각이다. 

지역 시민단체들 역시 DGB금융그룹의 이번 인사에 발끈하는 모습이다. 대구경실련과 대구참여연대, 우리복지시민연합 등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은 대구은행 제2본점 앞에서 집회를 열며 박 회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대구경실련 관계자는 "쇄신차원의 인사라는데,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임원들이 승진하는 것은 신뢰를 받아야 하는 금융기관의 모습이 아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찰의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경찰은 19일 업무상 횡령 및 배임, 사문서 위조, 위조사문서 행사 등 4가지 혐의와 함께 '증거 인멸 우려'를 이유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20일 대구지검이 "혐의에 대한 수사내용을 보강하라"며 영장을 기각한 상태다. 이에 따라 경찰은 박 회장의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한 보강수사를 진행 중이다. 한 차례 구속위기를 넘겼지만, 추가 수사 결과에 따라 구속영장이 재청구 될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금융권의 한 임원은 “경찰의 수사결과가 기다려봐야겠지만, 어쨌든 박 회장과 DGB금융그룹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박 회장이 친정체제 구축에 나섰지만, 앞으로의 행보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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