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반납 책임완수 '일중독자의 나라' 민낯…실노동시간 단축, 휴식권 보장 등 대책 마련 시급

과로 및 스트레스에 의한 질환 산재인정건수. 자료=최은희 원광대학교 교수

[민주신문=유경석 기자] 직장인들이 과로사 위험에 무방비로 내몰리고 있다. 성과 위주의 직장문화가 여전해 '책임완수'가 강조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금융권과 건설업에서 과로사가 많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IBK기업은행 과로사 인정 83.3%…금융권·건설업 40% 이상 31곳

금융권이 '죽음의 일터'가 되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최근 10년간 직원 6명에 대해 과로사 관련 산재 신청을 했고, 이중 5명(83.3%)이 인정됐다. 이는 은행 중 가장 많은 숫자다. 또 NH농협은행 3명, 우리은행.신한은행 2명으로 나타났다. 금융업에서만 160명이 과로사 신청을 했고, 이중 51명(31.9%)이 승인됐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서울 강서병)이 근로복지공단이 2008~2017년 6월 처리한 뇌심 질환(과로사) 신청·승인 사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 10년간 건설업 종사자 중 뇌혈관 질환으로 사망했다며 800건이 산재 신청을 했고, 이중 155건(19.4%)만 과로사로 승인됐다. 

전체 사업장 가운데 직원의 과로사 신청이 5건 이상 접수됐고, 2건 이상 승인된 사업장은 모두 31곳이었다. 이 가운데 13곳이 건설사였다. 과로사 승인자가 가장 많은 기업은 현대건설로 9건(승인건 기준)이었고, 2위 GS건설(8건), 3위 롯데건설(6건) 순이었다. 

승인 비율로 보면 기업은행이 83.3%(6/5)으로 가장 높고, LG CNS.경남기업.현대제철이 60%로 뒤를 이었다. 또 미8군(USFK) 57.1%, 현대건설 52.3%,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42.9% 등이었다. 

산재 신청 건수로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25건으로 가장 많았고, GS건설 24건, 삼성물산 건설부문.한국철도공사(철로변) 18건, 롯데건설 17건 등으로 나타났다. 

뇌심혈관계 질환 산재인정건수. 자료=최은희 원광대학교 교수

노동시간 OECD 국가 중 2위 '과로사 위험국'…집배원·경찰·유통업체 직원 등 사회전반 나타나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평균 2069시간으로 OECD 국가들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장시간 근로관행이 우체국 집배원, 게임회사 직원, 버스 운전기사, 복지부 사무관 등 과로사로 이어져 사회 문제로 이슈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집배원의 연 평균 노동시간은 2869시간으로 OECD 국가 1766시간보다 1103시간이 많다. 최근 5년간 우정사업본부 소속 일반직 직원은 월 평균 15시간, 집배원 업무를 총괄하는 우편집배과 직원들은 월 평균 26시간 초과근무를 했다. 집배원은 월 평균 51시간을 초과 근무해 다른 직원들에 비해 2~3배 과중한 업무환경에 놓여있다. 이는 최근 인사혁신처에서 발표한 42개 중앙부처 1인당 월 평균 초과근무시간인 32.1시간과 비교해도 거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복무 중 사망한 경찰이 400명이 넘지만 이 들 중 순직으로 인정된 경찰관은 79명으로 순직 인정 비율은 18%에 불과하다. 복무 중 사망에도 불구하고 순직 처리가 저조한 이유는 까다로운 순직인정 기준 때문이다. 

실제 2015년부터  2017년 6월 기준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질병 사망자 중 순직인정이 불승인된 신청자 21명의 사망 원인을 확인해 본 결과 대표적 과로사 원인이 되고 있는 심장질환·뇌질환·쇼크사가 12명이고, 돌연사 원인 중 하나인 패혈증·장기부전도 4명 확인되는 등 과로사, 돌연사 관련 질병이 76%를 차지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 측은 대부분을 지병으로 간주해 순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유통업 매장 판매직의 장시간 노동과 이로 인한 건강문제도 이슈가 됐다. 2017년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노동자 실태조사에서 유통업 매장 판매 노동자 근무시간은 1일 평균 8.8시간 주당 43.3시간으로 나타났다. 1주 52시간 이상이 16.3%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업 5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자의 일과 삶의 균형(WLB)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도 실태조사 결과 업무상 질병재해 유경험자 중, 질병재해 정도는 간단한 치료가 필요한 질병재해(42.6%), 지속적인 병원 내방 등의 치료가 필요한 질병재해(39.2%),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질병재해(18.4%)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로' 연관 추정 사망 광범위…과로사 인정비율은 하락세

'과로'와 연관성이 추정되는 사망은 이제 더 이상 특정 연령, 특정 직업군으로 한정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매해 과로사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3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과로사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 휴가권 보장, 과로사 근절 대책 및 부족인력 증원 등 다양한 해법을 내놓았지만, 경제계의 반발, 현실적인 산업 문제 등으로 노동자의 과로 해결문제는 뒤로 미뤄지고 있다. 

과로사는 산업재해의 한 종류로, 근로자가 일을 지나치게 하거나 무리해서 그 피로로 갑자기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육체적 부담으로 뇌출혈, 심장 마비 등으로 돌연사하는 상황이다. 

근무시간과 뇌심혈관질환간 유병률에 관한 연구자료를 보면 주당 35~40시간 표준근무시간을 근무한 사람보다 주당 5시간 이상 더 근로한 사람에게서 뇌경색 및 관상동맥질환의 유병률이 높았다. 특히 관상동맥 질환의 경우 위험도가 주당 근무시간이 55시간 이상인 경우 표준근로시간 근무자보다 약 13%가 증가했고, 뇌경색은 약 33%가 증가했다. 뇌경색의 경우 주당 41~48시간 근무자에서 10%가 증가했고, 주당 49~54시간 27%, 주당 55시간 이상 33%가 발생해 근무시간이 길수록 뇌경색의 발병률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과로사 승인률은 200년대 초반 70%대였으나 2011년 이후 20%대로 대폭 낮아졌다. 이는 2008년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기준의 영향 때문이다. 급성심근경색이나 급성뇌경색과 같은 심뇌혈관 질환은 대표적인 다원인 질환으로 직접적인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또 과로의 원인도 업무상인지 사적인지 명확히 구분될 수 없다는 특징이 있어 업무상 재해 인정여부를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다. 

과로사 예방을 위해서는 업무적 요인에 따른 관리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된 적정업무에 대한 직무분석을 실시하고 불필요한 업무 지시를 삼가하는 등 효율성과 집중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퇴근시간을 준수할 수 있는 범위의 업무량을 정하고 자율적인 업무수행과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보건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뇌심혈관 업무상 질병 판정 현황. 자료=최은희 원광대학교 교수

여전한 '과로사 공화국'…산재 승인율 20%대 답보 

지난해 산재보험법상 만성과로 산재인정 기준인 '발병 전 12주간 60시간'을 일하다가 뇌심혈관계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들의 산재 승인율도 2015년 67.1%(356명 중 245명 승인)에서 66.6%(299명 중 199명 승인)로 낮아졌다.

이런 결과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과로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는 의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뇌심혈관계 질환의 전체 산재 승인율이 2015년 40.2%를 정점으로 지난해 40.5%로 떨어진 데다 주 50시간 이상 60시간 미만 산재 승인율이 최근 4년간 20%대로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로사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뇌심혈관계질환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업무의 양‧강도‧책임‧업무환경 변화로 발병 전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이 증가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2012년 노사정이 업무상 질병판정 시에 현장조사를 하기로 합의하고, 관련 요양업무 처리규정을 개정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에 따르면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현장조사가 80%를 넘는 것에 비해 뇌심혈관계질환에 대한 현장조사는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46.2%로, 이는 2015년 46.7%보다 0.7%p가 더 낮아졌다. 

한국이 '일중독자의 나라', '가정의 삶이 없는 회사에 메어 있는 나라'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전반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실노동시간 단축, 휴식권 보장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했고, 같은 당 이용득 의원은 "과로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뇌심혈관계질병에 대해서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이 사측이 제공하는 서류에 의존하는 경향을 지양하고, 철저한 현장조사를 통해서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한국 사회에서 과로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됐다"며 "생산직 노동자에서 사무직 노동자까지 직군을 넘어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장시간 업무 관행을 뿌리뽑고 근로시간을 정상화하는 것만이 과로사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원 국회의원이 지난 13일 정책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강병원 국회의원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도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준비하려고 한다"며 "장기간 근로를 야기하는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고, 불필요한 대기성 야근 등이 자율적으로 근절될 수 있도록 근로문화혁신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병원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은평을)은 산업안전보건 정책 세미나 '직장인의 과로사, 진단과 해법은'을 주제로 한 정책세미나를 지난 13일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사)한국산업간호협회, (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대한간호정우회와 공동으로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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