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문인 학포 양팽손 작품 진위여부에 국내 미술학계 논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16세기 ‘산수도’(왼쪽)와 최근 일본에서 환수한 16세기 작품 ‘산수도’.  이는 지난해 일본 야마토문화관 전시에 출품돼 국내에 알려진 희귀명품으로 박물관이 소장한 16세기 '산수도'와 같은 병풍과 서로 짝을 이뤘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일본 전시도록에는 15세기 문인 학포 양팽손의 그림으로 표기됐으나 국내 학자들은 학포 작품이 아니라 전문 화원이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16세기 명품그림 ‘산수도’를 일본 수장가와 협상 끝에 환수했다. 이 작품은 가로세로 88.7×56.7㎝의 종이에 먼 산과 강을 배경으로 그림 우측에는 기괴한 암봉과 소나무 언덕 풍경을 아련하게 그린 수묵화다.

화폭 위쪽에 유려한 글씨로 4언시를 쓰고 붉은 인장이 찍힌 이 작품은 지난해 11과 12월 일본 나라현 야마토문화관 전시전 ‘조선의 회화와 공예’에 처음 선보이면서 알려졌다. 이어 국내에서 환수 여론이 일자, 국립중앙박물관이 올 봄 현지 수장가한테서 억대의 거액을 주고 사들였다.

특히 이번 명품 산수도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국내에 희귀한 조선 초 산수화인데다, 박물관에 쌍둥이처럼 닮은 동시대 산수도 1점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산수도는 1916년 일제강점기 초대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이왕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전신)에 기증한 작품으로, 암봉과 바위의 방향이 작품 왼쪽에 쏠린 것만 다를 뿐 소재·화법·글씨체·인장까지 빼닮았다.

더욱이 박물관측이 과학적으로 두 작품을 분석한 결과 종이 지질도 같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같은 작가가 한 병풍에서 그린 서로 짝을 이룬 그림으로 판명됐다. 박물관측은 오는 8일 재개관하는 서화실 전시에 두 산수도를 나란히 비교 전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두 그림을 그린 작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두 산수도는 15~16세기 사림파의 거두 정암 조광조(1482~1519)의 지인이던 학포 양팽손(1488~1545)이 그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학포는 글씨에 능했던 인물로 화가로 활동했다는 당대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그의 그림에 대한 기록은 19세기 ‘동국문헌론’에 나오는 게 유일한 언급이다.

환수된 산수도는 일본 전시도록에 양팽손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작품 역시 양팽손이 그렸다고 전한다는 뜻의 ‘전칭작’으로 표기돼 있다. 특히 이번에 환수된 산수도가 양팽손 작품이라고 굳어진 결정적 계기는 일제가 ‘조선고적도보’에 작품을 소개하면서 부터다. 이는 작품에 ‘전(傳) 양팽손 작’으로 표기한 것이 해방 뒤에도 관행처럼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1969년에 발행한 ‘한국회화대관’은 양팽손 작으로 단정했고 국립박물관의 ‘한국미술오천년전’(1975) 등에서도 이런 인식을 따라가다 1996년 호암미술관의 ‘조선전기국보전’에서 이원복 당시 국립박물관 학예관이 이견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학계에선 양팽손의 작품이 아니라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이는 환수한 작품과 국립박물관 소장품에 같이 찍힌 인장이 양팽손이 소장했다는 뜻의 ‘양팽손장’(梁彭孫藏)으로 판독되기 때문. 또한 똑같은 인장이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윤두서의 대작 <심산지록> 등 18세기 화가들의 작품에도 나타난다.

즉 양팽손 인장이라면, 200년 후 인물인 윤두서의 작품에 직인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화폭에 적은 시구의 글씨체도 조선 후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미술사가인 홍선표 전 이화여대 교수는 “이렇게 뛰어난 산수도를 남길 정도면 화가로 활동한 기록이 보여야 하는데 없다”며 “조선 초 사대부들이 고도의 기법을 요구하는 화원풍 그림을 기피한 관행을 감안하면 학포 작품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처럼 명품 ‘산수도’를 그렸다고 알려진 양팽손 작품 여부는 미술학계에서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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