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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건의 여시아문(如是我聞)] 거기에 사람이 있습니다
  • 김병건 객원기자
  • 승인 2017.11.2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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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된 근로기준법 제59조 폐기 촉구하는 노동법률가단체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발언을 하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고(故) 정은임 아나운서의 2003년 10월 22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오프닝멘트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춥고 좁았고 어두웠던 크레인 위에서 김주익이라는 사람은 129일 만에 유서 한 장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의 요구 사항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 반대’였습니다.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실직을 의미했고 실직이란 동료들과 가족들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때와 지금도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자유한국당은 “노동귀족들이 좋아할 정책만 펴지 말고 고용 유연성 대타협을 추진하기 바란다.”라는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노동조합원은 귀족이라는 말로 교묘하게 노동자를 양분시키고 있습니다. 그 노동귀족은 월급 7만 5000 원 인상을 위해서 싸웠는데 참 대단한 거금의 노동귀족인 것 같습니다.

여의도 국회에서 길하나 건너가면 30m 높이 광고탑 위로 민주노총 소속의 이영철,정양욱 두 사람이 지난 11월 11일부터 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노동법 개정입니다. 건설기계 (덤프, 레미콘, 굴삭기 등) 운전자에게도 최소한의 안전망인 퇴직 공제부금을 적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체불과 저임금 현실에서 그들의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서 시공사가 하루 4천 원을 건설 기계 노동자에게도 퇴직금으로 적립해달라는 내용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임금지급 확인제 시행’입니다. 시공사는 하청을 주고 그 하청은 또다시 하청을 하는 현실에서 시공사는 지급하였는데 하청 업체가 부도가 나면 몇 달의 임금을 받을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노동자들의 생명과 같은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확립해달라는 요구입니다.


하루 4000 원을 적립해주고, 체불임금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만들어 달라고 목숨을 걸고 그 높은 광고탑에 올라가야 하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 노동귀족의 현실입니다. 사실 ‘특수 노동자’라는 어디에도 없던 이름으로 많은 노동자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고용관계가 분명 함에도 불구하고 택배 노동자, 학원 강사, 학습지 교사도 개인 사업자 일뿐 노동자는 아닙니다. 오직 ‘특수’라는 생경한 단어로 그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 3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려서 노조 조차 만들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노동자들은 크레인에, 굴뚝에, 송전탑에, 광고탑에 오른 이들은 더 이상 탈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절망의 심정으로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하늘로 오르고 있습니다. 오늘도 현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공에 오르도록 강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그래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그들의 외침에 대해서 우리는 응답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큰 문제는 우리들의 귀가 둔감해져 고공에서의 외침을, 그 소리 없는 절규를 종종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들에게 회의의 시선과 비판의 목소리를 보낼지도 모르나 그 회의와 비판 이전에 먼저 ‘외침의 내용’을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고공 노동자의 외침이 우리 사회 미래를 위해 합리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연대해야 합니다.

고 정은임 아나운서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를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이렇게 마무리 멘트를 했습니다.

김주익 열사는 살아서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크레인에서 김진숙 씨는 내려왔습니다. 차이점은 우리가 연대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의 차이였습니다.

시간은 겨울 한복판으로 가고 있습니다. 바람이 강한 여의도에도 목동에서도 하늘 가까이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내려오도록 우리는 늘 관심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김병건 객원기자  overwatch.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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