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스마트폰에 빠진 아들 녀석을 위해 집에 애견을 들인 얘기를 해 보자. 결론적으로 손바닥만 한 강아지로 손바닥만 한 기기에 갇힌 아들 녀석을 끌어내 보겠다는 생각이 참담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21세기가 SNS와 디지털 기기로 대변된다면 그 중심에 스마트폰이 오롯이 위치한다. 설 명절에 온 가족이 모였는데 누군가 전화를 모두 걷어 봤더니 밥상으로 하나 가득이라 했다. 손금 외에는 자주 볼일이 없던 손바닥이다. 이제는 지하철에 앉아 가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연신 들여다본다.

심지어 길을 걷다 앞사람과 부딪히거나, 차에 치이기도 한다. 세상은 손바닥만 한 기기에 갇힌 사람들 투성인데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 갓난아기부터 고령의 노인까지 구분이 없으니 그 중독의 심각성은 중세기 서유럽을 휩쓴 흑사병에 버금간다. 손바닥에 고정된 시선 탓에 고개를 들 일이 없으니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지거나 땅이 솟아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혹자는 향후 50년 정도 인간이 이 기기를 들고 다닐 것이라 예언하기도 한다.

우려의 핵심은 스마트폰이 아니다. 날카로운 칼도 어머니가 잡으면 자식의 음식을 만들지만, 흉악범이 쥐면 사람을 해치는 법이다. 요는 손안의 인터넷, 내 몸의 일부로 여겨지는 그 문명의 이기 속에서 우리가 꼭 필요한 것을 취하며 얼마나 스마트하게 처신하느냐다. 특히 문제는 일반 청소년 그룹인데 그들은 일 평균 4시간 이상 모바일 메신저, 검색, 온라인 게임 등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폐해가 가장 심한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인터넷 중독은 전 연령층 대비하여 확대되는 상황이다. 일부 유아들은 식탁에서 스마트폰을 보여주지 않으면 떼를 쓰며 밥도 먹지 않는다. 어린이의 인터넷 중독을 한 때라 치부하며 너그러이 여기는 안이한 대처는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책을 통해 참지식과 정서를 함양할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치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봐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게임에 빠져 인격 형성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일은 통탄할 정도로 안타까운 일임을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한다.

차치하고 깡지라 이름 붙인 강아지 얘기로 돌아가 보자. 물컹거리는 촉감이 싫어 개를 만지지도 못하던 아내 역시 작은 강아지에게 애정을 듬뿍 쏟게 되었고 아들 녀석 또한 스마트 폰을 잠시 접고 깡지와 교감을 나누는 듯했다. 필자의 관찰 결과, 실내견은 시골집 마당에서 키우던 개들과 차원이 달라 인간의 품에서 귀염을 받도록 인위적으로 조작된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친 야생에서 멧돼지에게 덤비던 야성은 온데간데없고 정량의 사료와 물, 특식으로 설탕물과 비타민을 급여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생명체에 불과했다. 수시로 병원을 찾아 예방 접종을 하고 무르기 등 변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며, 기저귀에 소변을 묻혀 가며 배설물 가리기 훈련을 해야 했다. 글을 쓰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는 필자는 가장 먼지 깡지의 똥부터 치우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수고스럽긴 하지만 작은 강아지가 우리 인간에게 주는 기쁨은 절대 작지 않았다. 몰티즈는 작은 얼굴에 비해 털이 긴 편인데 그것을 서투르게나마 깎으니 초롬하게 빛나는 작은 눈이 더욱 돋보인다. 똥을 밟았던 작은 발을 씻겨주고 눈곱을 떼어준 후 품에 안으면 필자가 그토록 원하던 딸을 얻어 안은 기분이다. 아내는 어디선가 작은 핀을 구해 와 깡지의 머리에 꽂았는데 볼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임이 분명하다. 여타의 애견인들처럼 우리 네 식구 역시 깡지를 애기라 부르게 되었는데 등본에 가족으로 등재만 못 할뿐, 우리 가족은 드디어 다섯이 되었다. 그러던 깡지는 얼마후 동물 병원에서 귓속의 털을 뽑힌 후 먹이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필자는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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