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열릴까 두려웠나

3년 공들인 서원대, 우 선협상대상자 선정 3시간만에 “인수포기” 발표
 현대백화점 “학내분규  때문” 외부선 “비리의혹 불똥튈까 미리 발뺌”

 
<현대백화점그룹(회장 정지선)이 인수 추진 중이던 서원대학교(충북 청주)를 결국 포기했다. 학내 구성원들 간에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해 인수의사를 접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인수 포기 시점이 묘하다. 현대백화점은 서원학원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불과 3시간만에 ‘인수포기’ 의사를 밝혔다. 무려 3년 간이나 진행해오던 작업이었다. 도대체 현대백화점이 서원대를 갑작스럽게 포기해야 했던 이유는 뭘까.>
 

현대백화점이 서원대 인수를 포기했다. ‘서원학원’은 서원대학과 운호중·고교, 충북여중·고교, 청주여상 등 6개 학교를 운영 중인 청주의 대표적 사학재단이다.
현대백화점 측은 지난 6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서원대 인수 포기를 공식 발표하고 “인수 포기 발표로 학내 구성원과 지역 사회에 놀라움과 당혹감을 안겨드리게 돼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유감의 뜻을 표했다.
 
김준호 총장 비리가 ‘직격탄?’
 
현대백화점은 “지난 3년 간 서원학원 정상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지만 구성원 간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할 수 있는 역량 부족으로 인수 의사를 접게 됐다”며 “학내에서 교수회가 주도권 다툼을 위한 소송을 벌이는 등 학내 갈등과 분열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원학원 정상화 길이 너무나 멀고도 험난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서원학원의 경영참여 의사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이르러, 최종 서원학원 인수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과 서원대의 인연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백화점은 악성부채와 경영진 비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서원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해 7월 “육영사업을 추진하겠다”며 공식적으로 서원학원 인수의사를 발표했다.

현대백화점은 서원학원의 악성부채를 떠안으며 지난 3년간 인수에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서원대 인수 의사를 밝힌 지 3년 만인 지난 6월 21일, 현대백화점은 ‘인수포기’를 선언했다.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대로 현대백화점은 서원대 내부의 갈등에 무척 지친 것으로 보인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학내 갈등을 현대백화점 차원에선 해결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돼 손을 떼자는 데 의견을 모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런데, 현대백화점이 인수포기를 선언한 시점이 석연찮다. 현대백화점은 서원학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3시간만에 갑자기 인수포기를 선언했다. 무려 3년이나 준비해온 인수작업을 본격적인 협상시점에서 갑자기 포기한 것이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는 현대백화점이 서원대를 급하게 포기해야만 했던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일각에선 현대백화점의 갑작스런 인수포기 발표가 김준호 서원대 총장의 사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준호 총장은 이번 서원대 인수를 추진했던 현대백화점 경청호 부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경청호 부회장과 청주대 선후배 사이로, 김준호 총장이 현대백화점의 서원학원 인수 과정에 큰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8월 12일 서원대 총장직무 대행으로 임명된 후, 올 1월 ‘직무대행’ 꼬리표를 떼고 총장에 올랐다.

최근엔 현대백화점이 서원대 교수회의 권한축소 등을 요구하자 김준호 총장이 직접 나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김준호 총장은 교수채용과 관련된 금품수수 의혹에 휘말리며 지난 6월 18일 전격 사퇴했다.

사실상 ‘현대백화점 측 사람’이었던 김준호 총장이 비리 의혹으로 사퇴하면서 현대백화점은 ‘반대파(현대백화점 인수 반대파)’를 설득하고 회유할 채널을 잃게 됐다. 전면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된 것이다.
 
 

▲ 서원대학교 한 교수가 현대백화점 서울 본점 정문 앞에서 상복과 가발, 단두대 등을 착용하고 ‘현대백화점은 물러나라’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민주신문


 
의혹의 종착지는 현대백화점?
 
무엇보다 현대백화점 입장에선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준 김준호 총장이 ‘비리’에 연루된 것이 찜찜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준호 총장과 현대백화점의 관계를 석연찮게 바라보는 눈들이 많은 만큼 자칫하면 ‘현대백화점이 의혹의 종착지’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한마디로, 더 이상 엮이기 전에 관계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 서원대 내에서는 김준호 총장과 현대백화점의 관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원대 교수회’ 김성렬(교수회 회장직무대행) 교수는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가 있기 하루 전인 지난 6월 20일 “김준호 총장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영입실무위원회의 모든 활동에 부정이 저질러 졌을 개연성이 있다”며 “새 재단 영입실무위원회에서 산하학교 발전방안, 사회기여도 등 현대백화점그룹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서원학원 정상화와는 무관한 항목을 가지고 정한 우선협상자를 인정할 수 없다. 영입절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원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각종 ‘의혹들’에 시달린 바 있는 현대백화점으로선 이같은 상황이 더욱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현대백화점을 둘러싼 루머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재벌그룹이 사학재단을 기업사냥 하듯 인수하려한다는 지적에서부터 현대백화점이 청주 지역 진출(출점)을 좀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서원대를 노린다는 얘기, 김준호 총장이 현대백화점 돈으로 대형로펌을 사서 서원대 측 관계자들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뒷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특히 채권자에 불과한 현대백화점이 대규모 자본으로 로비와 압력을 행사해 학내 인사권에까지 개입하고, 내부에 자신의 측근들을 심어 인수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의혹은 지금까지도 서원대 내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의혹이다.
실제 서원대 이사회 구성원이나 인수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들이 적지 않다.

현대백화점 경청호 부회장과 대학 선후배 사이로 알려진 김준호 총장은 임시이사회에서 임명했는데, 공교롭게도 임시이사 4명 중 2명이 경청호 부회장과 학연·지연으로 평소 긴밀한 관계로 알려진다. 임시이사로 파견된 A씨는 경청호 부회장과 청주대 경영학과 동문이고, B씨는 청주고 동문이다. 특히 A씨는 현대백화점 자문위원 경력이 있다. 서원대 교수회에서 임시이사회에 대한 불신과 현대백화점 ‘배후의혹’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교수회 김성렬 교수는 특히 “영입실무위원장인 박모 씨가 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사인 현대홈쇼핑과 거래 관계가 있다”며 “이런 이유들 때문에라도 현대백화점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 1순위로 결정된 것은 공정성을 상실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쯤되자 현대백화점은 사회공헌 차원의 육영사업은커녕 기업 이미지마저 실추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총장실 압수수색
사학비리 드러나나

 
결국 김준호 총장이 현대백화점의 서원학원 인수 참여에 큰 역할을 해왔음을 감안할 때 그가 비리의혹에 연루돼 총장에서 물러난 것이 인수 포기결정에 결정적 이유가 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현대백화점 안팎의 분석이다. 특히 김준호 총장이 사퇴하긴 했지만, 이번 일로 또 다른 비리와 의혹들이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엮여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현대백화점 측이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서원대 인수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재계 한 관계자는 “김 총장의 비리와 사퇴는 현대백화점 입장에선 큰 타격이었을 것”이라면서 “현대백화점의 인수 반대를 주장하는 교수들 입장에선 김 총장의 비리가 좋은 명분이 됐을 것이다. 김 총장이 경 부회장과 관계가 있는 만큼 그의 비리를 캐다보면 현대백화점 측도 편치 않은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백화점 측은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마 현대백화점 측은 그룹 이미지 실추에 따른 리스크까지 감안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면서 “서원대 인수와 관련된 의혹들이 종착지(현대백화점)까지 오지 못하게 미리 관계를 끊어버린 것으로 보여진다. 애먼 불똥이라 하더라도 튀게 될 경우 상처가 크게 남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외부에서는 최근 검찰이 김준호 총장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한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 청주지검은 지난 6월 24일 교수 채용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김준호 서원대 전 총장과 관련, 총장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총장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수첩 1권을 압수하고 컴퓨터를 검색한 뒤 돌아간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검찰은 김준호 전 총장의 비리 의혹 외에도 서원대와 관련한 문제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과정에서 김준호 총장과 현대백화점 간의 관계 및 서원대 인수 과정 등이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편 현대백화점은 2008년 사들인 서원학원의 채권을 새로운 인수자에게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서원대 인수포기로 그룹의 ‘고민거리’는 하나 덜었지만, 이번 인수 과정을 둘러싸고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각종 의혹들과 추문들은 한동안 현대백화점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정소현 기자 coda0314@naver.com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