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학적인 측면에서 본 선비의 이해

조옥구
한자한글교육문화콘텐츠협동조합 이사장. 전 동덕여대 교수

‘소인한거 위불선(小人閑居 爲不善)’은 《大學》에 소개된 글귀로써, ‘소인은 한가하면 자칫 나쁜 짓을 한다’라고 풀이합니다. 사람이 한가하면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칫 나쁜 짓을 하게도 되는데, 그것은 소인이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소인(小人)’은 소위 ‘군자(君子)’에 상대되는 개념으로써, ‘군자(君子)’는 유가(儒家)에서 전통적으로 이상적인 인격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호칭입니다. 따라서 위 문장은 ‘군자’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소인’의 행태를 통해 ‘군자는 그렇지 않다’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군자(君子)’는 공자님 이래 글을 읽거나 벼슬에 나아가려는 자들이 도달하려는 주요한 목표였습니다.

우리가 어린 남자 아이의 이름 뒤에 ‘군’을 더하여 ‘~군(君)’이라 부르는 것이 한 예로써 군자의 인격을 갖춘 사람 혹은 군자의 인격체로 성장할 대상이란 뜻이며 어린 여자의 이름 뒤에 ‘~양(孃)’이라 부르는 것은 ‘품안에 해를 품었으나 아직 덜 성숙한 여자’라는 뜻입니다.

동양 문화권에 등장하는 용어들의 대부분이 고대 문자를 만든 하나의 주체들로부터 비롯되므로 서로 구분해서 보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군자(君子)’에 비견되는 우리식 호칭을 찾는다면 ‘선비’를 들 수 있겠습니다.

‘한자’에 부정적인 사람들조차도 ‘선비’라는 말의 정체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는 경우를 보지 못할 정도로 ‘선비’는 우리에게 친근한 용어입니다. 더구나 ‘선비정신’, ‘선비문화’ 등의 용어가 우리 귀에 익숙할 정도이니 우리로서는 소중하게 여겨야할 전통적 가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비’라는 말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또 그 정확한 뜻(의미)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경전을 잘 외워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나 글을 읽기는 하였지만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을 일컫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런 가운데 가끔 우리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원로들로부터 ‘선비문화 복원’을 희망하는 모임이 보도되지만 그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는 듯 보입니다. 중산층의 현실적 삶을 고려할 때 ‘선비’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립 그리고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 ‘선비문화 복원’이란 구호는 조금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비’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쓴 주인공들이 생각했던 ‘선비’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다보니 ‘선비’는 ‘선배’와 유사한 말로써, 밝은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지도자’를 일컫는다는 박현님의 주장이 눈에 띱니다. 과연 ‘선비’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이 오늘 우리사회에서 반드시 복원해야할만한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인지 문자 자체를 대상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선비’를 한자로는 ‘士’로 표현합니다. ‘士’자는 불과 3개의 획으로 구성된 비교적 단순한 모양입니다만 단순한 모양일수록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한자의 특징입니다. ‘士’자는 과연 어떤 배경으로, 어떤 관계로 ‘선비’라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일까요?

‘士’와 ‘선비’의 관계는 우리 지명(땅이름)을 통해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경북의 한 산골 마을은 행정지명으로는 ‘사곡면(士谷面)’인데 주민들은 ‘싹실’로 부릅니다. ‘싹실’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곡(士谷)’이 되었다는 것인데 어떻게 ‘싹실’이 ‘사곡’이 되는 것일까요?

‘사곡’의 ‘곡’은 계곡의 ‘곡’과 같습니다. 산 봉우리에서 뻗어 내려온 곳을 계곡이라고 부르며 사람들은 산기슭에 의미해서 집을 짓고 살게 되므로 계곡이 ‘곡(谷)’이 되고 ‘골’이 되어 ‘고을’로 쓰이게 되는 것입니다. 고을이 또 ‘실’이 되는 것은 봉화의 ‘닭실마을’이나 우리 어릴 때 사용하던 ‘마실 간다’라는 말의 ‘마실’을 생각하면 도움이 됩니다. ‘실’은 ‘고을’과 같이 ‘마을’이란 의미입니다.

‘고을’이 ‘실’이 되는 것은 마을과 마을이 길을 통해 서로 이어진 것을 마치 하늘에서 땅으로 실처럼 이어진 것과 같이 본다는 의미입니다. 길은 실처럼 길게 이어진 끈과 같다는 말입니다. ‘사곡’의 ‘곡’이 ‘싹실’의 ‘실’과 같다면 ‘사’는 곧 ‘싹’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士’자 풀이의 소중한 단서가 됩니다.

‘士’자는 땅에 돋아난 ‘싹’의 모양입니다. ‘士’자는 모양이 같은 ‘土’자와 비교하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두 글자는 모양이 같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모양이 같은 한자는 의미가 같습니다. 두 글자 모두 ‘땅에 돋아난 싹’의 모양인데, ‘土’는 아래의 획(一)을 길게 하여 싹을 토해낸 ‘땅’을 강조하여 ‘흙 토’라 쓰고 ‘士’는 위의 획(一)을 길게 하여 땅위에 돋아난 ‘싹’을 강조하여 ‘선비(싹) 사’라고 구분해서 쓰는 것입니다. 아래와 위를 길게 늘여서 쓰는 것은 강조의 의미입니다.

‘싹실’을 ‘士谷(사곡)’으로 옮긴 사례를 활용하면 다행스럽게도 ‘士’자의 숨은 의미에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士’자는 ‘선비 사’라고 하기 이전에 ‘싹 사’라고 해야 합니다. 봄에 돋아난 싹은 겉으로는 아주 작고 연약하지만 그 싹이 돋아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싹의 상징은 강인한 지도자의 상과 닮아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싹이 돋아나기 위해서는 이미 오래 전에 땅에 떨어진 씨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땅에 떨어진 씨는 어둡고 추운 땅속에서 몸을 웅크린채 겨울을 견디다가 봄이 와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면 힘든 여정을 시작합니다. 두꺼운 겉껍질을 뚫고 어둡고 단단한 땅을 헤쳐 마침내 빛이 있는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됩니다. 하나의 싹을 내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희생한 씨와 씨의 생명을 담보로 밝은 세상으로 돋아난 싹은 공동체와 지도자의 위상을 나타내기에 적당한 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씨는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생명을 가진, 싹을 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싹은 씨의 생명과 희망과 꿈을 짊어지고 밝은 세상으로 나온 지도자입니다. 우리 공동체를 이끌고 어둡고 답답한 세상에서 빛이 있는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 꽃을 피워야할 싹 같은 사람이 ‘선비’입니다. 공동체를 어둠에서 밝은 빛의 세계로 이끌어갈 지도자가 선비입니다.

공동체에 대한 강한 책임감으로 공동체를 위해 자기 자신을 불사를만한 각오와 다짐이 가능한 사람이어야 선비라 할 수 있습니다. ‘선비’를 ‘士’로 표현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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