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코로스 코르돈’ 초연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아시아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핀란드의 비후리 재단이 수여하는 ‘비후리 시벨리우스 음악상’ 20번째 수상자로 진은숙(56) 서울시향 상임작곡가가 이름을 올렸다. 

거장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이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진은숙의 코로스 코르돈(Choros Chordon·현의 춤)을 지난 3일(현지시각) 초연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재단의 위촉을 받은 이 곡은 신기하고 신비로운 소리로 가득한 ‘소리의 백화제방’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최근 그녀가 천착하고 있는 우주의 근원 소리에 와닿고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로 알려진 진은숙은 2005년 아놀드 쇤베르크상, 2010년 피에르 대공 작곡상, 2012년 호암상 등 권위 있는 작곡상들을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세계 최대의 음악출판사 부시 앤 혹스(Boosey & Hawkes)에서 독점 출판되고 있다. 

오는 20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금호월드오케스트라 시리즈’의 하나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의 내한공연에서도 ‘코로스 코르돈’이 울려 퍼진다. 한국에서의 초연이다.

공연에 앞서 진은숙과 이메일로 먼저 만나보았다.

Q. ‘비후리 시벨리우스 음악상’ 수상은 어떤 의미가 있나. ‘작곡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위 있는 상을 모두 받고 있다. 

A. “이 상은 정말 너무 대단한 상이어서 내가 수상자 리스트에 끼어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자주 수상자가 있는 상도 아니고…. 나에게는 다만 이런 걸로 인해 작곡가로 일할 용기가 더 생기고 그런 의미에서의 기쁨이 있다. 나는 특히 상복이 많아서 상을 많이 받는 운을 타고 난 것도 같다(웃음).”
 
Q. 베를린에서 베를린필이 ‘코로스 코르돈’을 성공적으로 초연했다. 직후 기분은 어땠나? 

A. “베를린 필과 그 동안 여러 번 작업을 했었는데, 위촉초연은 처음이라 무척 영광이다.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와 작곡가로서 같이 작업을 한다는 것은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다. 초연 연주도 무척 좋았고, 리허설 하는 과정도 너무나 프로페셔널하게 잘 해줘서 즐길 수 있었다. 각 악기의 파트 별로 추가적인 연습을 굳이 요구하지 않아도, 음악적인 것에 대해서는 그들 스스로가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높기 때문에 알아서 완벽하게 연습해주는 이 모든 과정 자체가 참 좋았다.”

Q. ‘코로스 코르돈’을 작곡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A. “누구를 위해 쓴다 해도 심리적 압박, 데드라인에 대한 압박이 당연히 있다. 더군다나 이렇게 중요한 단체에서 의뢰를 해 왔을 때 심리적인 부담이 굉장히 컸다. 특히 이 곡은 투어의 레퍼토리로 연주되는 곡이라, 너무 길수 없었고 사실 내가 쓴 오케스트라 작품 중에는 가장 짧다. 사실 이 곡의 기본 아이디어는 곡의 길이가 길었어야 하는데, 할말은 제한된 시간내에서 모두 표현해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좀 있어 힘들었다.”

Q. 비교적 짧은 11분짜리의 곡이다. 작곡가님의 관심사 중 하나인 우주의 신비가 녹아들어간 듯했다는 평도 있더라. 우주와 음악 그리고 작곡가님의 삶에 공통점이 있다면?

A. “우주의 역사, 생성과 소멸이라는 프로세스를 11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운드 체계에서도 아주 부분 부분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하모니를 사용하기도 했다. 또 우주의 탄생 이후 엄청난 혼돈의 시기가 있지 않는가. 별이 폭발 한다든가 인간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혼돈들이 듣기에 쉽지만은 않은 음악으로 표현됐다. 모든 인간의 인생과도 같이 우주의 생물학 적인 프로세스처럼 시작과 소멸이 있고 또 새로운 생명이 나타나는 그런 공통점이 있다. 그런 나타낸 곡이다. 곡 자체가 짧고 곡을 이끌어가는 솔리스트도 없기에 일반 청중이 듣기에 쉽지는 않다. 복합 적인 구조로, 한번 들어서 쉽게 이해가 되는 곡은 아닌 추상적인 곡 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들어주셨으면 한다.”
 
Q. 아무래도 한국에서 연주되는 ‘코르스 코르돈’은 또 남다를 것 같다.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있나?

A. “어떤 작곡가가 베를린필이 자기네 나라에 와서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것을 마다하겠는가. 정말 최고의 영광이다. 특히 한국에서 제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좋은 오케스트라가 와서 나의 곡을 연주해 주는 것은 표현할 수 없이 기쁜 일이다.”

Q. 국내 클래식 연주회를 보면 서양의 고전 레퍼토리가 대부분이다. 국내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데 인색한 분위기다. 꾸준히 창작되고 자주 연주돼야 ‘제2의 윤이상’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분위기를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시향과 하고 있는 아르스노바 등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현대음악 프로젝트들이 있다. 예술의 역사는 창작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작품이 연주돼야만 한다. 물론 늘 많은 작품들이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데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고 그 중에 좋은 것이 숨어 있다. 하지만 빛나는 그 작품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작품들이 연주되어 야 한다. 수백명의 학자들을 수십년간 지원해야 한 사람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듯이 창작음악도 꾸준한 지원과 감시가 있어야 현대음악의 저변이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3일 베를린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이 진은숙의 신작 '코로스 코르돈'을 초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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