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하면 목숨 걸고 싸우겠다”

- 단속 강화되자 성 노동자 길거리서 투쟁 “끝까지 싸울 터”
- ‘생존권 보장’주장하 며 반나체 시위, 일부는 분실자살 시도도

  
지난 15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안에 위치한 한 명품 매장에서 성노동자들의 시위가 있었다. 성노동자들이 동전만으로 명품 가방을 사려했으나 매장에서 동전을 거부한 것이 화근이었다. 빨간 모자를 쓴 성노동자들이 몰려왔고 그 자리에서 즉각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이 시위를 한 것은 이 날 뿐이 아니었다. 4월부터였다. 성노동자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됐다며 ‘생존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지 7년이다. 불법은 단속을 통해 적발된다. 역 주변에 버젓이 위치한 집장촌은 불법 그 자체다. 단속을 통해 진작 사라졌어야 했다. 그런데 집장촌 여성들은 어째서 ‘지금’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고 말하는가. 기자는 이들의 시위 현장에 가보았다.

 
 

▲     © 민주신문


 
지난 17일 오후 두시 경 영등포 집장촌 앞에는 스무 명 남짓한 여성들이 몰려있었다. 그들은 빨간 모자를 썼다. 줄을 맞춰 타임스퀘어 앞 광장으로 걸어 나갔다. 광장 옆 도로에는 미아, 평택 등 각지에서 모인 여성 약 400여명이 길고 붉은 풍선을 손에 쥐고 앉아있었다.
 
 
시위 현장
 
“풍선 안 받으신 분들 풍선 받아가라.”

한 여성이 스피커를 입에 갖다 대고 목청껏 외쳤다. 멀리서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스피커를 손에 든 여성은 도로 옆 곳곳에 상주해 있는 성매매 업주들을 향해 손짓했다. 성매매 업주는 아까 손을 들었던 여성에게 풍선을 주었다. 업주들은 큰 고무 대야에 물과 함께 담근 음료도 성매매 여성들에게 부지런히 날랐다. 업주 중 하나가 모자를 벗어 땀을 닦은 뒤 다시 모자를 썼다. 모자는 빨간 색이었다.

 
 

▲     © 민주신문


시위를 앞둔 여성들이 점령한 도로 맨 앞에는 파란 트럭이 있었다. 트럭에는 열다섯명 남짓한 여성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흰 소복 차림에 페이스페인팅을 했다. 머리는 산발이었다.

2시에 예정이었던 시위는 지연됐다. 시위대 앞쪽에 설치한 스피커에서는 최신 가요가 나왔다. 시위를 주동하는 몇몇이 대열 곳곳에서 ‘질서를 지켜라’, ‘두 줄로 앉아라’고 외쳤다. 대열에 끼인 이들 중 친한 사이들은 앞뒤로 앉아 수다를 떨었다. 일부는 손부채질을 하며 곧 있을 시위를 기다렸다. 성노동자들이 앉아 있는 도로 주변에는 경찰들이 포진해 있었다. 경찰들은 정자세로 선 채 성노동자들을 지켜봤다.

시위가 시작됐다. 시위를 진행할 여성은 마이크를 들고 순서를 알렸다. 이어 그녀는 “우리는 부양할 가족들이 있어 평범한 삶을 포기할 수 있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모인 성노동자들이 박수를 쳤다. 그녀는 “우리는 이 터전에서 지켜온 삶이 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이곳을 잃게 됐다. 여태 눈감아주던 공권력이 강하게 개입했다. 불법이었지만 우리 삶은 계속됐다. 성매매 특별법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대책 없이 전과자들만 생겨나게 했다. 우리를 폐쇄한 후 생길 음성적 성매매는 괜찮은 것인가. 이곳이 없으면 성매매 근절된다는 보장은 있나. 폐쇄만이 방법이라면 목숨도 걸고 싸울 것이다”라고 성토했다. 성노동자들의 박수 소리가 커졌다.

이어 전국의 성노동자 및 업주들이 모여 만든 ‘한터전국연합회’ 대표가 그들 앞에 나섰다. 그는 “제가 힘없고 권력이 없어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전달 못해 죄송하다. 세상에 강도, 도둑, 살인자도 많은데 왜 우리가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모인 이들을 향해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들은 인사치레를 마치고 구호를 외쳤다.

“성매매특별법 개정하라.”
“대안 없는 폐쇄, 결사반대.”

구호를 외친 뒤, 행진이 시작했다. 행진은 타임스퀘어와 신세계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다. 성노동자들은 간간히 타임스퀘어 정문 앞, 집장촌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 그들이 신세계 명품관 앞에 섰다. 구호를 외쳤다. 별안간 소복을 입은 이들이 명품관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명품관 입구는 막혀있었다. 내부는 조명이 환했지만 입구는 철제 셔터가 내려와 있었다. 백화점은 시위대의 진입을 방지하기 위해 한쪽 입구를 막아놓고 영업 중이었다.

진입에 실패한 이들이 한복에 걸려 넘어졌다. 시위대 선두에서 내내 스피커를 잡고 있던 여성이 그들에게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뒤돌아 스피커를 입에 대고 “우리는 아직 싸울 시간이 많다”고 소리쳤다. 백화점 앞에 동그랗게 모여든 성노동자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행진이 끝났다. 그들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화장실에 가려는 여성들은 타임스퀘어 건물 내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들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집장촌을 향해 뛰었다.

 
 

▲     © 민주신문


다시 시위가 시작됐다. 각지에서 온 이들이 그들 앞에 서서 의견과 격려를 표했다. 성노동자들에게 음료를 건네던 한 여성이 기자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이거 이따 저녁이 더 재밌다. 불도 막 지르고 그런다. 어제 여기 아가씨 한 명이 몸에 불 지르려고 휘발유 뿌렸는데 잘 모르더라”며 목소리를 낮췄다. 기자는 시위에 업주들도 참여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아니라고 말하고 원래 있던 곳으로 갔다.

인근 상인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당연히 시위대 무리 속에 업주들이 있다’고 했다. 한 상인은 “아가씨들이야 룸이든 뭐든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업주들은 그게 아니다. 그러니 더 속 탄다”고 했다. 이어 상인은 “우리도 속 탄다. 장사가 안 된다. 여기 밤마다 경찰차를 아예 갖다놓고 있으니 사람이 골목 안으로 들어올 생각을 안 한다”고 토로했다.

다른 상인은 “세를 주고 나가려 해도 들어올 사람이 없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고 했다.

다시 행진이 시작됐다. 처음 했던 행진과 같은 형식이었다. 행진 말미에 타지에서 온 성노동자들은 그들을 태우고 왔던 고속버스에 올랐다.

기자는 한 성노동자에게 다가갔다. 왜 시위까지 하는지 물었다. 청량리에서 왔다던 안모(28·여)씨는 “단속이 강화되는 게 싫다”고 답했다. 그녀는 “단속 피해서 오피스텔이나 다른 데 숨어서 일하게 될 텐데 그건 싫다. 더 위험하고 더러워질 거다”라며 “룸이나 이런 데 단속도 못하고 만만한 우리만 잡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럼 룸에 가는 게 속 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술 억지로 먹는 게 힘들 것 같다. 여기선 그럴 일 없다”고 답했다.

내친 김에 기자는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물었다. 안씨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 집에 환자가 있다. 내가 벌어야 한다. 한달에 적어도 300(만원)은 필요하다. 이 일 하면서 명품 선글라스 꼈다고 욕하는 건 내 입장에서 이해가 안 간다. 그거 백화점 매대에서 20만원 주고 산거다. 몇 백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선글라스 한번쯤 사고 싶은 거 아닌가. 돈 많이 벌어서 집도 돕고 가끔 선글라스나 옷 살 정도의 여유를 갖기 위해 이 일을 한다. 어려운 형편을 핑계 삼는다고 욕하지만 말라”고 말했다.

 
 

▲  성노동자와 업주들이 속한 ‘한터전국연합’ 대표 강현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려하고 있다.   © 민주신문


한편, 기자가 성노동자와 인터뷰를 하던 그때 영등포 집장촌 앞에는 불이 나고 있었다. 소복을 입고 시위를 내내 주도하던 10명가량의 여성들은 하의 속옷만 착용한 몸에 휘발유를 부었다. 그전에 그들은 경찰과 충돌했다. 타임스퀘어 매장 내에 진입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성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들 중 하나가 방향을 바꿨다. 집장촌을 향해 뛰었다. 집장촌으로 들어온 그들은 집장촌 내에 비치된 휘발유를 찾아 몸에 부은 것이다.

기자가 집장촌을 찾았을 때는 휘발유를 많이 마신 여성이 구급차에 막 실려 간 뒤였다. 휘발유 냄새가 강하게 났다. 집장촌 안 골목은 휘발유로 인해 미끄러웠다. 성노동자들은 어디론가 흩어져 보이지 않았다.

집장촌 내에 위치한 큰 천막 안에 업주들만 둥그렇게 모여 앉아있었다. 시위를 주도하며 스피커를 잡고 있던 여성도 보였다. 업주 중 하나가 스피커를 낚아챘다. 그는 “아까 경찰 서장이 여기 있었다. 보고도 못 본척 했다”며 “누구 하나 죽어 나가야 정신을 차리냐”고 했다. 업주들은 ‘맞다’며 여기저기서 경찰 욕을 해댔다. 다른 업주 하나가 스피커를 잡았다. 그녀는 “우리도 사람이다. 사람 취급도 안하니까 그냥 늙은 우리가 죽겠다”며 소리쳤다. 자세히 보니 그녀는 아까 기자에게 다가와 목소리를 낮춘 사람이었다.
별안간 그들 앞에 건장한 체구의 한 남자가 섰다. 그는 “방금 통화했는데 실려 간 우리 아가씨들 위급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모인 이들은 욕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위독하다는데 기자는 뭐 하냐, 거기 안 가보냐”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어차피 이런 얘기 쓰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여기 와 있기만 한다”며 타박했다.

기자 옆에 서 있던 한 남자가 기자에게 그들이 화가 난 이유를 설명했다. 영등포로 출퇴근을 한다던 그는 “시끄러워서 와봤더니 아가씨들이 탈진해서 세 명 쓰러져 있었다. 응급차를 부르는 것 같았는데 응급차가 빨리 안 왔다. 저기 있는 업주들이 불을 지르면 구급차 온다고 길모퉁이에 버려둔 옷가지랑 쓰레기 더미에 불을 질렀다. 불이 나니까 구급차가 금방 왔다”고 했다.

이어 그는 “출퇴근도 하고 자주 오다보니 시위 소식은 알고 있었다”며 “대기업이 경찰과 거래해 여기 단속을 시작했다는 말은 여기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기정사실화 된 지 오래다”고 전했다.

 
 

▲     © 민주신문


한 업주가 휘발유가 흥건한 바닥에 누웠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려고 했다. 옆에 있던 업주들이 말렸다. 누군가는 물을 가지러 갔다. 누워 있던 그는 라이터를 멀리 던졌다. 근처에 있던 업주들은 곁에 퍼질러 앉았다. 빨간 모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누군가가 일어서서 스피커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진정해라. 오늘만 날이 아니다. 투쟁의 날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최설주 기자 aucsj@naver.com
 
 
<성노동자들 시위 내막>
 
- 떠날 유예기간과 생존권 보장이 관건
 
 

▲     © 민주신문


성노동자들은 타임스퀘어 광장 앞에서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들이 그곳을 고집하는 이유는 최근 강화된 경찰의 단속이 신세계 측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임스퀘어와 연결된 주차장 출·입구가 집장촌으로 인해 큰 도로 쪽으로 틀어진 것이 신세계 측의 아쉬움을 샀다고 말했다. 또한 신세계 물류 창고가 집장촌이 위치한 곳에 있어 껄끄러운 면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4월 1일부터 단속을 했다. 유예기간은 없었다. 며칠 전 단속을 하겠단 통보가 전부였다. 20곳이 문을 닫았다. 시위에 참가했던 한 여성은 “그동안 영업 방치하다가 유예기간도 없이 무턱대고 떠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는 떠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유예기간을 주고 생존권을 보장했으면 한다. 성매매특별법이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단속이 아니라 철거나 마찬가지다”고 덧붙였다.

성매매특별법은 2004년부터 시행돼 올해로 7년이 넘었다. 그러나 영등포 집장촌은 없어지지 않았다. 4월부터 시작된 단속이 20곳을 문 닫게 한 것과는 상이하다. 한 포주는 “경찰은 집장촌에 모인 가게를 띄엄띄엄 단속해 꾸준히 실적을 올렸다. 덕분에 집장촌은 운영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업무가 단속만 있는 게 아니다. 상황이 그랬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경찰은 타임스퀘어가 생겨난 후 민원 접수가 늘어 단속을 실시하게 됐을 뿐 신세계측과의 공모는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번 시위로 인해 성매매특별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 법을 두고 인터넷 상에서 치열하게 찬반 논쟁 중에 있다. 실효성과 영등포 시위 결과 여부를 떠나 집장촌이 사라진 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변종 성매매’다. 실제로 올해 초 급격히 늘어난 ‘키스방’ 때문에 정부는 간판과 전단지 배포에 대한 규제를 엄격히 해 키스방을 단속한 바 있다.

성매매 여성들은 있다.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집장촌이 사라지면 변종 성매매에 뛰어들 의지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근본적인 단절은 어렵다. 오히려 그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음성적 성매매를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이것에 대한 대책의 마련이 시급해 보이는 시점이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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