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학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적폐가 쌓인 곳인 한두 군데가 아니겠지만, 그 일차적 청산대상은 지난 보수정권 하에서 권력과 기득권의 시녀 노릇을 하며 국민들의 기본권을 짓밟았던 권력기관들이다. 국가정보원, 법원, 검찰, 경찰이 대표적이다.

적폐청산의 첫걸음은 과거 잘못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책임자들에 대한 응분의 처벌이다. 보수정치권과 보수언론이 주장하듯 국민통합을 내세워 적폐를 덮고 불법을 저지른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내부가 곪고 썩은 상처를 그대로 봉합하는 무책임한 처사에 다름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는 아픔이 있더라도 곪은 상처를 철저히 도려내어 치료해야 한다.

촛불정국에서 평화시위에 나섰던 1700만 시민들이 간절히 원했던 한국 사회의 대개조는 지난 잘못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청산이 먼저 이루어지고 뒤이어 합리적인 제도개혁이 따를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지금 유럽연합을 이끌고 있는 양 강대국 독일과 프랑스도 2차 대전 후 나치 세력 및 부역자들에 대한 철저한 단죄와 적폐청산을 통해 강대국으로의 재도약을 위한 기초를 놓았던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특별히 철저한 적폐청산이 요구되는 곳이 바로 사법영역이다. 한국사회는 법치국가이다. 법치국가란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이루어지는 나라를 의미한다. 즉 권력자와 공권력이 법에 구속됨으로써 자의적인 권력남용이 예방되고 정의와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69년간 법치주의를 표방하여 왔다. 

하지만 현재 이 땅에 공평과 정의, 인권을 핵심가치로 하는 ‘법의 지배’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다고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권력이 법을 압도하여 법과 사법제도가 권력자 및 강자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냉소주의가 이 땅을 뒤덮고 있다. ‘유전무죄·무전유죄’, ‘유권무죄·무권유죄’는 단순한 비아냥이 아니라 엄연한 우리 법치주의의 현실인 것이다.

‘땅에 떨어진 한국의 법치주의’, 이 위기의 근저에 사법관료들인 판사·검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사법관료들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례에서 ‘법과 양심’이라는 잣대를 내버리고 때로는 권력의 요구에 의해 때로는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법을 왜곡함으로써 사법정의와 국민들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여 왔다. 수많은 수사와 기소, 재판에서 억울한 사법피해자들을 양산해 내었고 심지어 억울한 국민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사법살인도 저질렀다. 

전관들과 결탁하여 수사와 재판에서 정의를 감추고 실체적 진실을 뒤집는 경우도 많았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수임료로 수년간 수백억을 벌어들인 이면에 전관과 현관과의 끈끈한 결탁과 부정한 거래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사회에서 사법관료들은 많은 특권을 누려온 반면 자신들이 저지른 불법에 대한 책임에서는 철저하게 면책되어 왔다. 악의적으로 잘못된 수사·기소·재판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진 판사와 검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권한과 특권은 누리되 책임에서는 철저하게 면제되어 있는 특권층들이 바로 사법관료들인 것이다. 판사·검사들의 법왜곡 비리야 말로 이 시점에서 철저하게 청산되어야 할 심각한 적폐가 아닐 수 없고, 이들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단죄 없이 참된 법치주의의 실현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기회에 검찰과 법원에도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설치되어 과거 심각한 잘못이 저질러졌던 수사·기소·재판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지고 기관 및 관련 책임자들의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가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판사·검사들의 법왜곡 비리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법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독일을 비롯한 외국의 여러 나라는 사법관료들의 법왜곡 행위를 엄하게 처벌하는 규정들을 두고 있다. "법왜곡죄”는 판사 및 검사가 법률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법을 왜곡하여 당사자 일방을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만들 때 그에 따른 처벌을 할 수 있는 규정을 뜻한다. 

이제 우리사회에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고 검찰권·사법권의 남용으로부터 국민들의 인권과 권리를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법의 왜곡된 적용·집행이 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형법에도 판사·검사들의 법왜곡 비리를 직접 규제할 수 있는 법왜곡죄가 도입되어야 한다. 사법영역의 적폐청산에 이어  법제도개선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