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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를 품다] 내 차로 가는 세계여행1-⑦환상의 오지, 키르기스스탄은 조물주가 장난삼아 주무른 선물
  • 조용필
  • 승인 2017.10.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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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저자 제공

<프롤로그> 시동을 걸다

2015년 4월 19일, 아침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둘째 아들 걱정이 앞서지만 떠나는 발길을 재촉합니다. 비가 내리는 새벽길을 달려 동해항으로 오는 동안 메시지와 전화가 운전이 어려울 만치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못나게 살아온 건 아니구나 괜히 마음이 뿌듯합니다. 여비가 떨어지면 꼭 연락하라고 하신 분 수두룩합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넉넉해져 안심이 되었습니다.

빗속을 달려 약속한 10시에 겨우 강원도 동해항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페리사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일사천리로 통관업무를 진행합니다. 보세 구역으로 차를 옮겨 세관 검사를 받습니다. 이틀 동안 실은 물품을 혼자서 다 내려 X-RAY검사를 받고 다시 싣느라 오랜만에 땀에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선내 화물칸으로 차를 옮긴 다음 네 바퀴를 야무지게 결박합니다. 세관원의 안내를 받아 다시 보세 구역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오후 2시. 퇴색한 유행가 가사처럼 뱃고동 길게 울리며 출항합니다. 항구에 비는 내리는데, 선창가에 서서 눈물 흘리는 이도, 손 흔드는 이도 없습니다. 아무도. 모든 사물은 제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에 열심히 매진할 때 가장 빛난다고 알고 살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이 세상에 운명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내가 고생을 한 것도 운명이었고, 열심히 노력하여 그 고생을 벗어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없던 중학생이 세계 여행을 꿈꾼 것도 운명이고, 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의 날씨는 험하고 바람까지 드셉니다. 갑판에서의 별 구경은 어림도 없습니다. 떠난다고 연락도, 작별인사도 못한 곳이 많은데 아쉽게도 이 선박은 와이파이가 불통입니다. 거친 풍랑으로 흔들림이 심한 탓에 선내 욕실에서 이리 저리 뒹굴면서 힘들게 목욕을 마치니 쏟아지듯 잠이 몰려옵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여행을 가겠습니다. 어렵겠지만 멋진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목숨 걸만한 가치 있는 훌륭한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제 운명이라고. 그리고 명심하겠습니다. 이 여행의 최종목적지는 ‘집’이라는 사실을!

사진=저자 제공

신이 흘린 보석, 송쿨 호수

송쿨(Sonkul)로 가는 길은 전형적인 오프로드 산악 도로입니다. 산악 지형인 키르기스스탄에서 10도 이하의 오르막 경사로는 보통 수준입니다. 해발 3000m를 넘어 수목한계선을 지나자 주변엔 나무 한 그루 없지만, 소떼, 양떼, 말떼가 떼를 지어 눈 녹은 물을 밟으며 올라가고 있습니다. 한쪽은 겨우내 켜켜이 쌓인 눈, 또 한쪽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입니다.

그저 그런 경사진 산길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이곳을 다니는 사람은 오금이 저립니다. 힘겹게 운전해 해발 3800m 고개를 넘자 거짓말처럼 초원이 펼쳐집니다. 올라오느라 고생했다며 선물을 주듯이 보석 호수, 송쿨이 멀리 자태를 드러냅니다.

눈앞에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론 20km 길을 내려가야 호숫가에 닿습니다. 시야에 인공 건축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얀 게르가 몇 채 있을 뿐입니다. 자연을 망치는 건 언제나 사람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광도 사람이 등장하면 별로입니다.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여기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사진=저자 제공

별 다섯 개, 오성 게르 호텔에 머물다

필자가 좋아하는 어느 소설가가 히말라야 트래킹을 갔을 때, 제 몸보다 더 큰 짐을 메고 산을 오르는 나귀를 보고 어머니 생각에 그렇게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 나귀를 여기서 만났습니다. 나귀 등에 탄 아이들로부터 자기네 게르에서 머물기를 권유받고 그들의 요구보다 조금 더 주고 머물렀습니다.

우리가 머무른 오성 게르 호텔은 천연 무공해 친환경 연료를 사용해 난방을 합니다. 소의 배설물을 말린 것입니다. 냄새? 그런 거 없습니다. 다만 이 연료를 사용하기 위해선 자다가 코끝이 시리면 일어나 연료를 수동 공급해야 합니다.

사진=저자 제공

새벽 무렵 연탄을 갈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땐 참 서글펐는데 여기서는 모든 게 재밌었습니다. 여섯 겹의 요를 깔고 세 겹의 이불을 덮습니다. 덮으니 무겁고, 걷어내자니 춥고. 그러나 차에 있는 거위털 침낭과는 비교가 안 되는 보온성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보름달이 떠올라 기대하던 송쿨 고원에서의 별보기는 망쳤지만 별똥별을 네 줄기나 보았습니다. 이런 호숫가에서 하룻밤 보내고 있다는 사실도, 다시 찾아와 며칠 머무르며 힐링하고 싶은 곳을 찾았다는 것도 여행의 참 재미의 하나입니다. 하룻밤 멋진 체험을 했습니다.

사진=저자 제공

신의 손으로 빚은 카저맨 산

많은 아쉬움과 미련을 남기고 송쿨을 떠났습니다. 호수를 둘러싸고 동남쪽으로 감아 카저맨(Kazarman) 산으로 향합니다. 몽골 산악 지대만큼이나 다니는 차가 없는 한적한, 그리고 위험한 산악 도로입니다. 여행의 3대 요소라는 체력, 시간, 자금이 허락한다면 꼭 바이크를 타고 다시 달려보고 싶은 그런 길입니다.

산과 강, 호수와 계곡, 사막과 초원, 고원과 평원. 몽골과 카자흐스탄에 있는 자연은 키르키스스탄에 다 갖춰져 있었습니다. 조물주가 이 세상을 만들 때 무척 힘들고 지겨워 장난삼아 주물러 놓은 듯 희한한 모양의 산들이 수백 km 줄지어 있습니다.

GPS가 고도 4000m, 외기 4도를 가리킵니다. 기압차에 따른 연료흡기상의 문제인지 조금씩 차의 출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4200m 지점을 넘어서자 근사한 눈 터널이 좌우로 도열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5월의 눈을 보고 감탄했었는데 여기서는 6월의 눈을 보게 됩니다. 힘들지만 즐겁게 올라왔으니 이젠 내려가야 합니다. 비포장도로에선 내리막 운전이 더욱 어렵습니다. 어려워도 신나게 내려갑니다.

사진=저자 제공

몇 개의 산을 더 넘어, 잘랄아바드(Jalal Abad)를 15km 남겨두고 타이어가 터졌습니다. 예비 타이어로 교체하고 출발하자마자 공교롭게 에어 서스펜션도 말썽이라 차가 주저앉았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입니다. 4000m 넘는 산속에서 타이어가 터졌거나 서스펜션에 탈이 생겼다면? 해결방안이 없었을 겁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마운 차를 몇 번이나 토닥토닥 거리며 저속으로 갓길 운행해 잘랄아바드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700km 떨어진 비슈케크로 싣고 가야만 수리할 수 있다고 했지만 어떻게 밤을 새워 수리해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일반 여행자들이 잘 다니지 않는, 험하다는 M41번 도로를 타고 타지키스탄 국립공원으로 갑니다. 앞에 이미 모습을 드러낸 파미르(Pamir) 고원으로 갑니다. 순백의 파미르 고원을 마주하고 달립니다.

<다음 호에 계속>

조용필  news@iminj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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