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실상 지옥 같은 세상 현실이 오늘날에만 그 검은 입을 벌리고 붉은 혀를 날름거렸던 건 아니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비유도 마찬가지다. 이 땅에서는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지시대를 거쳐 남북이 삼팔선으로 분단된 이후로 대한민국에서든 저 조선인민공화국에서든 이른바 금수저들의 천국과 흙수저들의 지옥 같은 생존 현실이 계속 이어져 왔다.
이 소설은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어린이·청소년 공작원’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8세~17세의 어린 소년들로 구성된 부대는 공식적으로 밝혀지진 않았지만, 6.25 동족상잔 전쟁을 전후해 실제로 수많은 아이들이 물색조의 허풍에 속거나 반강제적인 방법에 의해 비밀스런 부대로 끌려가 북파공작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거나 행방불명되었다. 남북한 간에 공작원 대결이 가장 치열했던 1960~70년대 초엔 어린 아이들은 배제되었으나, 열대엿 살 정도의 청소년이 체격이나 민첩성 등에 의해 선발돼 성인 부대에 소속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북파공작원의 존재가 이젠 은밀한 비밀이 아니며, 국가에서도 선별적으로 보상을 해주고 있다지만, 꽃다운 어린 청소년들의 활동과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구무언이다. 그 아이들은 깊디깊은 망각의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다.
후반부에 사이비 종교단체의 해괴망측한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할 말이 별로 없다. 다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 리얼하며, 진짜 종교와 사이비 종교의 관계는 진짜 정부와 사이비 정부의 관계와도 같다고 에둘러 말할 수 있을 뿐…….
2016년 초겨울
연신내에서 김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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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이어서>
제 2부 인간 소모품
차는 한없이 길게 뻗은 철조망을 따라 무정스레 달려갔다. 비무장지대(DMZ)의 숲과 벌판이 어둠 속에서도 어렴풋이 보였다(아니, 보인다기보다 느껴졌다). 달은 없었지만 유난히 초롱초롱 반짝거리는 별빛 때문인지 황량하면서도 그윽한 느낌을 주는 풍경이었다.
초소 앞에서 지프차가 멎었다. 세 명의 공작원이 내리자 차는 곧 떠나 버렸다. 청운은 미지의 세계인 북쪽의 암흑을 묵묵히 응시했다. 삼팔선 또는 휴전선이라고도 불리는 통한의 단절……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의 암투 속에서 그들의 입맛대로 한반도 금수강산의 허리에 그어진 그 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남북 양쪽으로 2킬로미터씩 모두 4킬로미터에 이르는 광막한 비무장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그 비밀의 공간을 거쳐 북국으로 침투해야 하는 것이었다.
초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색대 요원이 다가왔다. “여러분을 분계선 지점까지 안내할 송 중사입니다. 저 디엠젯 안에는 전역에 걸쳐 각종 지뢰가 매설돼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 뒤를 따라 조심스레 전진하기 바랍니다. 귀환 때에도 이 루트를 이용할 것이니 유의하십시오. 자기 몸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 30센티미터 밖으로는 결코 벗어나선 안 됩니다.”
그는 말을 마친 후 소리 없는 그림자처럼 움직여 나갔다. 대원들은 마치 어미 뒤를 따라 꼬리를 물고 가는 오소리처럼 일심동체로 움직였다. 달도 없는 밤이라 그런지 수색대 요원마저 침투 루트를 찾아 나아가느라 잔뜩 긴장된 상태였다.
10미터를 이동하는 데 1분 이상 걸렸다. 어떤 지점에서는 한동안 멈춰 이성적인 판단과 도박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했다. 이윽고 남방한계 철책선 앞에 도착했을 땐 자정이 한참 지나 있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사흘 후 자정에 이 지점에서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충성!” 송 중사가 작게 속삭인 후 돌아갔다. 세 명의 공작원은 천천히, 하지만 최대한 신속히 움직이려 노력하며 조심스레 어둠 속을 헤쳐 나갔다. 무성한 수풀이 바람에 흔들리며 얼굴을 간질렀다. 과연 저 광막한 지뢰밭을 통과할 수 있을지 의심스런 상황이었다. 저 땅 속엔 얼마나 많은 지뢰가 묻혀 있을까? 땅을 파 보면 마치 저 컴컴한 하늘에 무수히 박혀 반짝거리는 별들만큼 지뢰가 총총히 박혀 있지 않을까? 하늘의 별은 정신을 맑게 승화시키지만 땅의 쇠별은 사람의 육신을 파괴하면서 사악한 빛을 사방에 뿌린다.
청운은 긴장한 채 개호주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이따금 눈을 들어 밤하늘에 살아 있는 듯이 반짝이는 별을 쳐다보았다. 초롱초롱 마치 눈물이라도 머금은 양 살짝 웃음 지며 어떤 밀어를 속삭이는 듯한 별…… 서울에선 보지 못한 산골 처녀의 눈동자 같은 것이었다.
“야, 잠깐 기다려 봐!” 앞장서 걷던 스라소니가 말했다. “왜?” 개호주가 대꾸했다. “저게 뭐야?” “개울 같은데…….” “겉으론 얕아 보여도 늪지대일 수도 있어. 저쪽으로 돌아가자.”
“그러려면 제법 걸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돌파하자. 니미럴, 괜히 돌아가다가 재수없게 지뢰에 걸리는 것보다야 낫지. 쌍놈들이 물속에 뭘 묻어 놨겠어?”
“모를 일이잖아.” “그래도 어쨌든 저 멀리 돌기보다 길을 단축하는 게 유리할 것 같아. 네 생각은 어때?” 개호주가 청운에게 물었다. “응?”
청운은 그들의 대립된 의견을 그냥 무심중에 듣고 있다가 되물었다. 어차피 파리나 지푸라기 같은 목숨인데, 이리 가든 저리 가든 목적지에만 가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엔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 어디로든 움직여 나갈 테니까.
“빨리 말해 봐, 임마!” 누군가 재촉했다. 청운은 심호흡을 했다. 어찌 보면 사소하겠지만 또 다른 관점으로 보면 너무나 중대한 양갈래 길 앞에 선 느낌이었다. 두 사람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으므로, 지금은 운명이나 신의 뜻에 맡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간의 의지에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소하게 별일 없이 나아간다면 좋겠지만 혹시 큰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결국 청운은 아무 말 없이 앞으로 나서서 개울인지 늪인지 모를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폭이 5미터쯤 되는 개울을 청운이 탈없이 헤쳐 건너자 의견을 다투던 둘도 더 군말 없이 따라왔다. 원래 행동지침은 ‘서로 협력하되 중요한 최종 결정은 스라소니가 한다.’라고 내려졌지만 대충 그렇게 해서 넘어갔다.
다시 무성한 수풀이 앞을 가로막았다. 부드러운 풀과 나무들은 침묵의 휴식을 방해받은 게 성가신지 발목과 무릎 그리고 허리께까지 휘감으며 저항하는 성싶었다. 마른 갈대가 스산한 바람결에 휘날리며 구슬픈 곡조로 노래했다.
어둠 속을 헤치며 공포스런 밤의 여로를 얼마나 걸어갔을까. 저 앞쪽에 철조망이 보였다. 어둠보다 더 검고 날카로운 철조망은 그 순간에도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고 있다는 게 실감날 정도로 강고하고 길게 펼쳐져 있었다.
“이제 저것만 넘으면 빨갱이 도깨비들이 산다는 북한 땅이다.” 스라소니가 중얼거렸다. 정말 그럴까, 하고 청운은 맘속으로 생각했다. 저 너머 비밀의 베일에 가린 북촌엔 과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들이 괴상스런 도깨비 같은 사람인지는 의심스러웠다. 이쪽에서 저쪽 사람들을 도깨비라고 한다면 저쪽에선 이쪽 사람들을 마귀라고 부를지도 몰랐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는 무슨 소린들 못하랴. 환한 자유대한에서 사는 사람들도 의견이 좀 다르면 악마니 사탄이니 하며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지 않던가.
‘쳇, 두 쪽 다 국민과 인민을 위한 아름답고 위대한 민주공화국이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정말 그런가? 선감원 같은 강제수용소나 아오지 지옥수용소 따위에 수많은 사람들을 가둬 둔 채 서로 잘났다고 허풍 치지 말고 형제간끼리 통일이나 잘 해서 잘 살 생각이나 해라, 짜식들아!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국민들을 제발 우롱하지 말란 말이야…… 뿔 돋은 뻘건 도깨비니 마귀 사탄이니 하는 관념적인 헛소리보다야 이 현실의 지옥을 직시하는 게 훨씬 짜릿하지 않을까 싶어. 권력과 돈과 욕망에 미친 상류층 인간들이 중류층 동족을 짐승으로 여기고, 중류층 인간들은 하류급 동족을 사람 아닌 벌레처럼 취급하는 이 땅은…… 정말로 두 덩이가 아니라 열 덩이 백 덩이 천 덩어리로 쪼개져서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단 말야. 강대국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지 뭐…….’
청운은 속으로 혼잣말을 뇌까렸다. “임마, 빨리 오지 않고 뭘 자꾸 우물거리는 거야.” 개호주가 퉁박을 주었다.
청운은 머릿속의 잡념을 털어 버리고 곧 동료들의 뒤를 따라붙었다. 철조망은 견고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강철은 무심한 가운데 적의를 품고 있는 성싶었다. 스라소니가 상의 주머니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내 손바닥으로 가린 채 불을 켜 철조망 아래쪽을 살펴보았다. 주변의 풀들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바람결에 의한 나부낌이 아닌 어딘지 부자연스런 느낌을 주는 떨림이었다. 철조망에 강한 전기가 흐르고 있다는 징조였다.
“일단 오리발을 꺼내 봐. 가능한 대로 작업하면서 찬스를 보자구.”
스라소니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개호주가 배낭에서 특수 절단기를 꺼냈다. 절연제로 처리됐기 때문에 전기가 거의 통하지 않는 기구였다.
개호주는 특수 장갑을 끼고 나서 철망을 조금씩 끊기 시작했다. 이따금 신음 소리를 토하는 것으로 보아 힘겹기도 하겠지만 그가 전기를 억지로 견뎌내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북한이고 남한이고 전력량이 풍부하지 않은 상태였다. 산업시설을 가동하고 도서관에 불 하나라도 더 밝혀 민족 문화를 꽃피우는 데 써야 할 전기가 동족 파괴의 사악한 동력이 되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아마 미국이나 소련에서 수입된 무기가 한 동족을 살해할 그런 용도로 준비되지 않을까. 교육 시간에 듣기로는, 전력 부족으로 인해 시간대에 따라 강 중 약의 전기가 흐르기도 하고 완전히 꺼져 버릴 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규칙적이지 않고 시시각각 바뀌므로 언제라도 그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었다.
개호주가 땀을 뻘뻘 흘리며 전기 철조망을 따는 동안 스라소니와 청운은 야전삽과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조금씩 팠다. 어찌 보면 걸치적거리기만 하고 또한 감전될 위험이 있는데도 그들은 마치 검정 개미처럼 조금이나마 도우려고 애를 썼다.
‘꼭 이렇게 해야 할까? 물론 일분 일초가 급하므로 응당 협력해야만 한다. 하지만 별로 효 율적이진 않다. 괜히 찔끔찔끔 헛심을 쓰는 대신 개호주 녀석의 작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힘을 모아 집중적으로 작업한다면 훨씬 빠르고 위험성도 적을 텐데…… 하지만 스라소니가 부지런히 뭔가 하고 있는데 나만 베짱이처럼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지랄같군. 이런 식은 아마 우리 조상님들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버릇이 아닐까. 어딘지 정이 많아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조금이나마 도우려는 뜻은 좋은데, 상황에 따라서는 좀 합리적으로 가만히 쉬고 앉았다가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진짜 부지런히 하는 게 결과는 더 좋을 것 같아.’
청운은 혼자서 꿍얼꿍얼 속으로 중얼거렸다. 결국 우려하던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뒷걸음질치던 개호주의 군홧발에 스라소니의 손이 밟히면서 삽날에 손가락 하나가 깊숙이 베어 버린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흘러나온 짧은 비명 소리를 북한군 초소에서 만약 누가 듣게 된다면 셋은 독 속의 쥐새끼 신세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였다. 서치라이트가 좀더 강렬해져 샅샅이 훑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셋은 일단 작업을 중지한 채 납작 엎드려 숨을 죽였다. 죽음처럼 싸늘한 땅바닥 위로 시간이 급박하게 흐르다가 허공으로 흩어지고, 마치 시공간이 응결된 듯이 여겨졌다.
다행히 북한군 초소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셋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철조망을 다 잘라내고 뒤처리까지 마치자 청운은 삽으로 그 아래쪽의 땅을 파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감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개호주는 스라소니의 손을 묶어 주고 있었으므로 청운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통로를 만들었다.
잠시 후 셋은 조심스레 기어 철조망을 건너갔다. 찌릿찌릿 온몸을 엄습해 오는 성싶은 공포감이 전류 때문인지 미지의 세계에서 오는 압박감 탓인지 청운은 잘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우선 급히 산속을 찾아 기어들었다. 변변한 무기도 갖지 않은 그들로서는 가능하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은밀히 임무를 수행한 뒤 귀환하는 게 최상책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으슥한 산줄기를 타고 목표지점에 접근해 가야 했다.
청포도
산은 갈수록 점점 더 험준해졌다. 남한의 고산준령을 토끼처럼 뛰어다닐 정도로 지독한 훈련을 받았지만, 처음 보는 북녘의 험산은 꼭 어둠속이 아니더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만큼 가팔랐다. 지도상으로 보면 그들의 목적지는 50킬로미터쯤 되었다. 하지만 산길은 평지와는 달랐을 뿐더러 앞으로도 계속 첩첩산중을 넘어야만 했다. 깎아지른 절벽과 까마득한 계곡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칼산 지옥의 나졸들처럼 밤길을 막았다.
어느덧 먼동이 터 오고 있었다. 셋은 기진맥진한 채 낙엽이 수북이 쌓인 산중턱에 주저앉았다. “일단 요 부근에 비트를 파고 숨은 채 좀 쉬면서 대책을 짜 보자.”
스라소니가 말했다. 그들은 한숨 돌린 후 곧장 잠복호를 파기 시작했다. 아무리 깊은 산중이라 하더라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북파공작원이기 때문이었다. 남한에선 애국자가 북한에선 반역자로 변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나무꾼이나 산나물을 캐러 올라온 아낙네의 눈에 띌지 모르는 노릇이었다.
설령 철부지 꼬마라 할지라도 일단 부딪치면 위험스러웠다. 남한 아이들도 반공 교육을 받아 수상한 사람을 보면 두서너 명쯤은 경찰서에 신고하겠지만, 철저하게 세뇌 교육을 받은 북한 아이들은 남한 간첩을 철천지 악괴로 생각하므로 즉각 달려가 보고할 터였다. 그러므로 북한 지역으로 넘어온 이상 가능하면 누구와도 만나지 않아야 하며, 만일 그럴 경우엔 아장아장 걷는 어린애일지라도 죽여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장해물 중엔 인간의 눈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다고 훈련 때 들었다. 지뢰나 전기철조망보다 덜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은 은근히 더 무서운 건 흙밭과 실 올가미였다. 침투가 예상되는 지역의 논밭이나 길목에 고운 흙이나 모래를 깔아 두었다가 발자국을 보곤 추적했다. 또한 인간 고기가 스며들 만한 숲의 요소에 보일락말락한 실을 쳐두었다가 그게 끊어진 걸 보고 적의 침투를 알아채기도 했다. 그런 원시적인 방법을 쓰는 건 북한의 경제사정때문이기도 했지만, 남한의 공작원을 생포해 정보를 수집하려는 목적이 없지 않았다.
잠복호를 파고 그 위에 나뭇가지와 낙엽 따위를 올려 위장해 놓은 다음 셋은 급히 비상식량을 꺼내 허기를 달랜 후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가서 용변을 보곤 흙으로 덮었다. 그러고는 비트 속으로 들어가 웅크려 앉았다.
“일단 오늘은 여기 푹 박혀서 동태를 살펴보다가 어둠이 내리면 나가서 전진하자. 좀 갑갑하겠지만, 산속에도 낮에 사람이 다니는지 알아두면 다음날에 참고할 수도 있으니까 말야.”
스라소니가 삽날에 베인 손가락을 슬슬 흔들며 말했다. 아마 붕대 속으로 신선한 바람이 스며들도록 그러는 모양이었다.
“잠이나 푹 자두자구.” 개호주가 받았다. “그래도 한 사람은 불침번을 서야겠지. 코를 골다가 들켜 생포될 수도 있으니까 말야.” “먼저들 좀 자. 내가 나중에 깨워 줄 테니까.”
청운이 대꾸했다. “짜식, 형님 대접을 해주는군.” 개호주가 빙긋거리더니 흙벽에 기댄 채 스르르 눈을 감았다.
작가; 김영권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후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으며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仙甘島 수용소의 비밀 보리울의 달 등이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취재해서 르포 시장의 하루 「보통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현재는 지옥극장 시리즈 제3탄 몽키하우스를 집필중이이며, 앞으로도 계속 우리 사회의 감춰진 진실을 찾아 드라마틱하게 소설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