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외 각양각색의 재미있고 다양한 이벤트로 저녁손님 발걸음 끌어

밤에 운영하는 심야 서점인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밤의 서점'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는 아날로그 냄새가 폴폴 풍기는 책을 들고 시간의 달콤함을 즐겼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던 아날로그의 산물, 책은 이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디지털 첨병에게 자리를 내주고 그 자리를 점점 잃어가소 있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던 덩치 큰 책은 주머니 속 간편해진 스마트폰의 전자도서로 대체됐고, 덩달아 책이 필요할 때 마다 동네어귀에서 저녁 늦게까지 손님을 위해 불을 밝혔던 작은 서점 등은 우리의 추억이 되고 감성이 되어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갔다.

저녁이면 더욱더 활기찬 서울 연남동 밤거리에서 조금 비켜나간 연희동 한 주택가에 밤에만 열리는 ‘심야 책방’이 있다. 스마트폰 지도들 봐도 한참을 들여다봐야 찾을 수 있는 조그만  골목에 ‘밤의 서점’이라 입간판이 빛을 발하고 있다. 

주류를 판매하는 '심야서점' 서대문구 연희동 '책바'

일상의 연희동 골목길은 늘 조용하다. 덕분에 서점 분위기도 차분하다. 이곳을 찾은 다른 손님들도 말없이 진열된 책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적당한 책을 고르면 앉아서 읽는다.

작은 책방이지만 뜻밖에 다양한 책이 꽂혀있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시가 모여진 책장의 한구석에는 ‘이 작가의 시가 처음이라면 이 시부터 읽어보라’는 추천 메모가 붙어있다. 정감이 가고 책 선택에 편안하다. 역시 책 옆에 붙어있는 서점 주인의 추천 글이 낯선 책을 한 번쯤 뽑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이 서점은 수업이나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책을 하나 읽고 싶긴 한데 일반 서점으로 가면 늦은 시간되는 이들을 위해 생겨났다. 보통 대형 서점에는 책이 너무 많아서 무슨 책을 사야 할지 고민되지만 밤의 서점은 밤에 편하게 와서 추천해 주는 책을 골라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같은 심야서점들은 골목 구석구석에 위치해 아는 사람만 알던 것이 최근에는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있다. 20, 30대들의 젊은 직장인이나 학생들의 일상 패턴에 따라 늦게 열고 늦게 닫다 보니 ‘심야서점’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서를 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 추세다. 유엔(UN)이 2015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그해 한국인의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전체의 34.7%를 차지했다. 성인의 독서율은 2007년 76.7%에서 2015년 65.3%로, 하루 평균 독서시간은 2010년 31분에서 2015년 23분으로 떨어졌다. 

종이책을 찾는 사람들은 더 줄었다. 종이책 독서율(1년간 종이책을 1권 이상 읽은 비율)은 2007년 76.7%에서 2015년 65.3%로 감소했다. 전체적인 독서량의 감소와 더불어 전자책의 대중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밤의 서점과 같은 심야서점, 책 술집 등의 동네서점들은 증가하고 있다. 어플리케이션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퍼니플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9월1일부터 올해 7월31일까지 전국에서 운영 중인 서점 257개 중 올해 개점한 곳은 31개로 집계됐다. 일주일에 약 1개꼴로 개점한 셈이다.

심야서점들은 책 이외에도 저마다의 재미 요소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밤의 서점 한쪽에는 ‘블라인드 데이트’라는 코너가 있다. 책을 종이봉투에 담아 표지나 제목을 가리고 점장의 추천 문구만으로 책을 구매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책일까’하는 설렘을 갖고 책을 구입하게 되는데, 이 서점의 특징인 ‘책 추천’을 특화시킨 코너다.

‘북티크’에서는 독서뿐만 아니라 저자의 강연도 들을 수 있는데 ‘북티크 작가 인사이드’라는 작가 초청 강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퇴사 준비생의 도쿄’ 저자인 이동진씨, ‘창업가의 일’ 임정민 저자 등의 강연도 있었다.

술을 즐기며 책을 읽는 형태의 심야 서점도 인기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책바(Chaeg Bar)’, 마포구 염리동의 ‘퇴근길 책 한잔’ 등이다. 책 추천, 영화 상영, 인디밴드 공연 등의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동네 서점이 대형서점과 사람들의 관심속에서 사라져 갈 때 심야서점은 2030 손님들의 독서만이 아닌 ‘서점 문화’ 자체를 즐기게 되는 형식으로 진화했다.

밤의 서점 관계자는 “윗세대에게 책을 읽는 다는 것은 하나의 취미라기보단 생활이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밤에 책을 꺼내 읽는 일상적 독서가 굳이 ‘취미’로 분류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제 디지털이 익숙해진 2030 세대에게 독서나 책을 읽는 행위는 하나의 새로운 아날로그적 취미, 유행이 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밤의 서점'의 랜덤 책 추천 이벤트 '블라인드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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