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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유산 되찾자 (4) 혜허의 수월관음도고려시대 수 많은 외침속에서도 백성의 구제를 기원한 세계 최고의 불화
  • 양희중 기자
  • 승인 2017.10.0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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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허, <수월관음도>, 비단에 색, 142×61.5cm,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수 많은 외세의 침략속에서도 475년을 존속한 고려는 찬란한 불교문화를 이뤄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16년 만에 완성된 팔만대장경, 화려한 고려청자 등 세계사에 길이 남을 다양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특히 고려 후기에 제작된 그림 중에서 세계 최고의 불화이자 유럽의 모나리자만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불화가 등장한다. 바로 ‘수월관음도’이다. 

수월관음도는 중국 당나라 말기에 시작해 송나라 중기까지 크게 발전했다. 특히 중국 서쪽 실크로드의 중심지이자 불교의 성지인 둔황 지역에서 발전해 고려에도 큰 영향을 줬다. 고려에서는 13~14세기경에 유행했는데 현재까지 전 세계에 40여 점 정도가 알려졌다. 그 중 혜허의 수월관음도는 현재 남아있는 불교작품 중 최고의 명작으로 꼽힌다. 

수월관음도는 중생 구제를 지향하는 대승불교의 경전인 《법화경》과 《화엄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화엄경》에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 길을 나선 선재동자가 남쪽 보타락산에 있는 관음보살을 찾아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화엄경》에는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찾아가보니 서쪽 골짜기에는 시냇물이 굽이쳐 흐르고 관음보살이 금강석 위에 가부좌하고 앉아 있어, 매우 기뻐하며 합장을 하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관음보살을 쳐다본다는 구절이 나온다. 

관음보살은 원래 성불하기 위해 도를 닦다가 다른 중생들을 도와주기 위해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는 존재로, 중생들이 재난을 당했을 때 구제해주거나 질병을 막아주기도 하고 외적이 침입하면 구해주기도 한다. 관음보살은 정병의 감로수를 중생에게 나눠줌으로써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갈증을 해소해준다고 한다. 

고려 후기 쓰여진 《삼국유사》에서도 수월관음도를 설명해줄 단서를 몇 가지 찾게된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당에서 돌아와 관음보살이 해변 굴속에 산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7일 동안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만나기를 청하자 동해 용이 나타나 여의보주를 한 알 바친다. 또 7일을 빌자 드디어 흰 옷의 관음보살이 나타나 산마루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곳에 사찰을 지을 것을 부탁한다. 

의상이 그 말을 받들고 굴에서 나오자 곧 대나무 한 쌍이 땅에서 솟아 나왔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오늘날 강원도 동해안 양양의 낙산사이다.

고려 후기는 빈번한 외적의 침입과 내부 혼란으로 고통받던 시기이기도 하다. 왕부터 귀족은 물론 백성들까지 그 고통을 누군가 덜어주고 구제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당시의 지배세력은 백성의 고통을 외면했었다.

그것이 바로 중생을 고통으로 구원하다는 관세음보살에 대한 염원이며 수월관음도에 투영된 고려인의 마음이었기에 많은 제작이 이루어졌던 이유다. 

단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수십 점의 수월관음도 중 대다수가 외국에 있다는 것이다. 다수는 일본에 있으며 독일이나 미국에 있는 경우도 있다. 왜구의 침입과 조선 시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본에 약탈당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그 중 혜허가 그린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일명 물방울 관음도. 일본명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는 현재 일본 센소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작품 1순위일 것이다.

혜허의 수월관음도 오른쪽 하단에는 ‘해동치납혜허필'(海東癡衲慧虛筆)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해동(海東)은 고려를 가리키고, 치납(癡衲)은 어리석은 승려라는 뜻이며, 연도 표시가 없지만 불화 양식으로 미루어 1300년 경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일본 현지에서도 공개하지 않아 일본 학자들조차 보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소장처는 일본의 센소지(淺草寺)로 작품을 대여해달라는 한국 박물관 측의 요청을 계속 거절했다. 결국 작품을 대여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소재만이라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는 한국 박물관 측의 끈질긴 설득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예상외의 결과가 발생했다. 작품이 펼쳐지는 순간 박물관 관계자들이 수월관음도를 향해 정성스럽게 삼배를 올린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센소지측에서 조건 없이 전시회에 대여해주기로 한 것이다.

그 전시회가 2010년 10월 12일~2010년 11월 2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고려불화대전-700년만의 해후’이다. 혜허의 수월관음도가 세상에 찬연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혜허(慧虛)가 1300년경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관음보살도로 크기는 114×62.5㎝이다. 그림에는 화면의 중앙으로 관음보살이 서 있으며 한 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관음보살은 화려하게 수놓인 천의를 입고 있어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신체는 완만한 굴곡을 보이며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서 있는 날씬한 자태를 아주 기품있게 표현했다. 

관음보살 뒤로 버들잎 모양 (물방울 모양}의 광배가 있다. 관음보살의 발 아래로 평평한 암반과 연못이 길게 늘어져 있고, 연꽃과 산호초를 가득 장식했다. 이 옆으로 관음보살을 알현하고 있는 선재동자의 모습을 그렸다.

혜허의 수월관음상은 현존하는 고려시대 불교 회화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대각선 구도는 일반적인 양류관음도와 유사하나, 버들잎 모양의 광배 앞에 관음보살이 서 있는 모습이나 오른쪽의 기괴한 절벽과 두 그루의 대나무가 사라지고 버들잎 모양의 광배를 중앙으로 배치하여 독특한 구도로 표현하였다. 

관음상의 부드럽게 곡선진 몸매, 부드러운 손동작, 투명한 옷자락, 호화로운 장식, 가늘고 긴 눈매, 작은 입, 가녀린 손가락과 버들가지 등은 고려적인 특색을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또한 도쿄국립박물관과 구세아타미미술관 소장 아미타삼존도의 관음보살입상과 자세나 형태, 천의와 장신구, 버들가지와 정병을 든 인상까지 비슷한 점은 이들 불화와의 연관성을 상정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수월관음도 대부분이 일본의 사찰 또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의 정당한 반입사유도 없이 소재 자체도 확인 안되는 경우가 허다해 문화재 반환은 물론이고 임대나 전시같이 대체되는 방법도 지금은 어렵다.

한 나라의 문화재가 왜 타국의 사찰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해당국가의 국민들이 볼 수 있는 전시나 임대도 거부하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는 현실이다.

양희중 기자  techj7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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