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일 오전 충남 남산중앙시장 상인회 사무실에서 열린 충남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차를 마시고 있다. <사진=뉴시스>

헌재소장 부결-대법원장 가결 ‘오락가락’
외연 확대 절실한 상황서 캐스팅보트 ‘오만’ 프레임 우려 

[민주신문=강인범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의 국회 임명동의안 통과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화해기류가 뚜렷하다. 하지만 당의 재도약을 선언하며 전면에 나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20대 국회에서 선명야당으로 존재감 부각이 절실한 국민의당과 집권여당 간 협치가 본격화 될지 미지수인 상황에서 김 후보자 통과 과정에서 ‘캐스팅보트’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한계론 역시 뚜렷해 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게다가 김이수 헌재소장 부결 과정부터 이번 국회 본회의까지 안 대표가 애매모호한 스탠스를 취하면서 선도적으로 당을 이끄는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당내서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출국 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에게 협조전화를 건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김명수 구하기’에 사활을 건 더불어민주당과 ‘김명수 부결’을 위해 단일대오를 형성한 자유한국당의 팽팽한 표 대결은 결국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가결로 막을 내렸다.

국회는 21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총 투표수 298표 중 찬성 160표, 반대 134표, 기권 1표, 무효 3표로, 과반을 넘겨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가결됐다. 이 과정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 의원들 상당수도 찬성 표를 던진 것으로 추측된다.

각 정당별 의석수는 현재 서영교 의원의 복당으로 1석이 늘어난 더불어민주당이 121석, 자유한국당 107석, 국민의당 40석, 바른정당 20석, 정의당이 6석을 갖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이 전원 찬성표를 던졌다고 가정하면 야당 쪽에서 30표 이상의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찬성표가 나온 것이다. 바른정당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을 열고 김명수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관련 반대 의견으로 당론을 확정했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고 가정했을 때다.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54회 국회(정기회) 제9차 본회의에 참석한 바른정당 주호영 인사청문특위위원장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에 관한 심사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방선거 목전, 선명야당과 ‘협치’ 고민 

이번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 임명 동의안 과정에서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터’로 뚜렷한 존재감을 각인시킨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당의 재도약을 목표로 전면에 나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명야당을 기치로 여당과 차별화를 통해 외연확대가 절실한 상황에서 여당과 ‘협치’는 ‘발목잡기’라는 비판에선 자유로울 수 있지만 야당 본연의 역할인 정부 여당을 견제하는 정치력을 발휘하기에는 미흡할 수 밖에 없다. 선거가 일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협치가 이뤄질 지도 미지수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통과 불과 몇일 전만 하더라도 양측은 ‘오만’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책임을 두고 '네 탓 공방'을 벌였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국민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평생 노력해온 김이수 재판관을 부결시키는 것이 국민의당의 정체성인지 한번 묻고 싶다"며 "국민의당 소속 의원들과 지도부는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성찰해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성토했다.

아울러 김 의장은 "안철수 대표는 존재감을 운운했다. 국민의당은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갖고 있는 정당이라고 임명동의안 부결을 국민의당 성과로 평가한다"며 "제 눈에는 참 오만하다. 이렇게 오만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국민의 당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용호 정책위 의장도 "청와대와 여당의 반응을 보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며 "국회의 헌법적 권한 행사가 무책임의 극치인지, 지지도에 취해 코드·보은인사를 밀어붙이는 것이 무책임의 극치인지를 되돌아보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아울러 "100일 넘게 수수방관하던 민주당은 이제 와서 국민의당 탓을 하고 있다"며 "이게 적반하장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민주당에도 날을 세웠다.

국민의당 의원들이 대거 찬성표를 던진 것 역시 더 이상 캐스팅보터로서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반대에 나설 경우 호남 지지세력에서 마저 반감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당 지지율 또한 저조한 상황에서 헌법재판소장에 이어 대법원장까지 사법공백이 장기화되는 것에 대한 책임이 국민의당에 지워지는 것 또한 부담이다.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제3회의장에서 열린 국민의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박지원(왼쪽) 전 대표가 천정배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당내서도 선도적 리더십 부재 목소리
 
원외인 안철수 대표의 애매모호한 리더십 또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1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가결된 것과 관련 “우리 국민의당 의원들의 결단으로 대법원장이 탄생했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임명동의안 표결 전 의원 개개인의 자율투표에 맡긴 다고 강조했지만 박지원 전 대표는 "가결인가 부결인가 우리의 입장을 표결 전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발표해 정리했을 때 선도정당으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는 21일 의원총회에서 "우리는 20대 국회 개원 초 리딩 파티, 선도정당으로써 명확한 입장을 먼저 정리해 발표함으로써 우리가 정국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우리가 결정이 항상 늦고 뒤따라가기 때문에 늘 2중대 당이라는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동영 의원도 기존 자유투표 원칙을 존중한다면서도 "대법원장 인준 등 주요 사안은 당이 일정 방향성을 갖고 최소 권고적 당론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의회정치의 원조인 영국 보수당인 노동당은 중요한 투표서 레드라인을 정했다”는 점을 예로 들며 한줄, 두 줄, 석 줄짜리를 만들어 석 줄짜리 당론을 위배하면 축출, 제명이다. 당헌 위반사항에 속하는 것이다. 권고적 당론이라면 두 줄짜리 정도가 될 텐데, 저는 오늘 이 자리가 당의 방향을 정하는 자리가 돼야 된다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천정배 전 대표도 정 의원과 궤를 같이 했다. 천 전 대표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개인적으로는 당론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물론 비밀투표, 무기명투표로 치러지는 사안이지만 그러나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결국 의원 개개인이 아니라 국민의당 전체에 대해서 내려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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