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주재 총영사관 소속 한국 영사들과 30대 중국 여성 덩신밍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국내 각종 자료와 정보를 유출시킨 이른바 ‘상하이 스캔들’이 연일 이슈가 되고 있다. 당초 이 사건은 바람난 영사들의 공직기강을 바로 잡아달라는 덩신밍의 남편 진모씨의 제보로 국내에 알려지면서 ‘불륜’에 초점이 모아졌으나 덩신밍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 중 ‘비자 브로커’에 이어 현재는 ‘스파이’ 의혹까지 일고 있다. 스파이라고 보기엔 어설픈 구석이 많아 전형적인 ‘꽃뱀’ 비자 브로커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지만 덩씨가 보유하고 있던 자료의 특성상 스파이라는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덩씨와 접촉한 엘리트 공직자들의 면면과 그들이 덩씨에게 제공한 정보들의 성격에 대해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 외교가를 강타한 상하이 스캔들의 전말과 후폭풍을 조명했다.


덩신밍과 연루된 영사 6명 전원 징계 없이 복귀 또는 자진사퇴

종적 감춘 H 전 영사 제외 모두 의혹 부인 “상부상조 했을 뿐”


상하이 스캔들의 주인공 덩신밍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 한국인 남성 7명의 신원이 지난 11일 모두 확인됐다. 중국 현지에 진출한 국내 화장품 기업 스킨푸드 중국 본사의 M 전 이사를 제외한 6명이 김정기 전 총영사를 포함한 상하이 주재 영사들이었다. 이 가운데 덩씨와의 관계가 가장 먼저 불거져 문제가 된 인사는 법무부에서 파견된 H 전 영사와 지식경제부에서 파견된 K 전 상무관이다.

두 사람은 덩씨를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해 상하이 교민 사이에선 ‘H씨에게 덩씨를 뺏긴 뒤 K씨가 복수하기 위해 H씨 부인과 바람을 피웠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에 대해 K 전 상무관은 ‘사실무근’으로 주장하며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지난해 9월 H 전 영사 부인이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고 중국에 오자 덩씨로부터 오해를 받고 협박까지 받았다는 것. ‘내 사랑에 변함이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덩씨에게 써 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K 전 상무관의 설명이다.


MB 일정ㆍ이동 동선까지 파악


하지만 논란의 소지는 남는다. K 전 상무관은 지난해 5월 상하이 엑스포 개막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의 일정 및 동선 관련 정보를 덩씨에게 건네줬다. 별도 검문, 검색 절차 없이 이 대통령을 행사장에 출입시키는 문제와 행사장 내부에서 전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부분이 중국 측과 협의되지 않자 덩씨에게 협조 요청하는 과정에서다. K 전 상무관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해명했지만, 대통령 일정은 테러 등의 위험 때문에 국내에서도 사전에 알려질 경우 담당자가 문책을 당하는 1급 비밀로 부쳐진다는 점에서 눈총을 샀다.

K 전 상무관은 지난해 11월9일 귀국해 올해 1월 중순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의 조사를 받았다. 이후 아무런 제재 없이 업무에 복귀했고, 현재 기획재정부 산하 FTA(자유무역협정) 국내대책본부에 파견 근무 중이다.

K 전 상무관에 이어 하루 늦게 귀국한 H 전 영사는 올해 1월 법무부 감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덩씨와의 내연관계를 인정했다. 이로 인해 행시 출신이 오를 수 있는 법무부 최고 직위까지 승승장구할 것으로 기대됐던 H 전 영사는 파국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인천공항 출입국사무소 출국심사국장으로 발령이 났지만, 지난 2월 초 징계절차 없이 사표가 수리돼 1억원 가량의 퇴직금을 받고 중국으로 다시 출국했다. 이후 종적을 감춘 H 전 영사는 현재 아내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감찰 조사를 끝냈지만 H 전 영사 역시 정보 유출과 관련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보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공개 발언록,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금전 출납 내역이 찍힌 통장 등 참여정부 인사와 관련한 문건들이 덩씨 집에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H 전 영사는 덩씨에게 불법비자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H 전 영사와 덩씨의 첫만남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두 사람은 지난해 5월께 상하이 시내 도로에서 자동차 접촉사고로 알게 된 사이인데, 덩씨가 비자관련 이권에 개입하기 위해 당시 비자신청 대리기관 지정을 담당하고 있었던 H 전 영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에서다. 이후 현지에서는 ‘덩씨를 통하면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소문과 투서가 나돌았다.

덩씨와 얼굴을 맞대거나 껴안다시피 한 사진들로 불륜 관계로 의심되고 있는 외교통상부 소속 P 전 영사도 덩씨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P 전 영사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오히려 덩씨가 비공식 라인을 통해 교민들의 고충을 처리해 주고 중국 고위직과 면담도 주선하는 등 우리 총영사관이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는 것. 실제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각각 2008년 11월과 2009년 4월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당초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던 위정성 당서기와 한정 상하이 시장의 면담을 성사시킨 게 바로 덩씨였다는 것. P 전 영사는 덩씨와 함께 촬영한 사진 역시 “덩씨가 한국에 왔을 때 친분관계로 찍은 것일 뿐 절대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P 전 영사는 현재 1등 서기관으로 외교부 본부에 근무하고 있다.

K 전 영사와 O 전 차관 역시 의혹의 중심에 있다. 특히 K 전 영사는 경찰청장감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이번 사건으로 경찰청 내부에서 파면 단계에 이르자 스스로 사표를 낸 뒤 이후 국내 유명 로펌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사실상 덩씨와 연루된 영사 6명 전원이 징계 없이 복귀 또는 자진사퇴한 셈이다.


유력 정치인 번호 200개 유출


이로 인해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해당 정부부처는 사건 은폐 의혹을 받으며 비난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뿐만 아니다. 이번 사건을 지난해 12월부터 인지하고도 늑장대응, 직무유기를 했다는 지적이 거세다. 당시 국정원에서 파견된 장원식 부총영사는 김 전 총영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체조사를 벌여 덩씨에게 불법비자가 발급되는 등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 이를 지난해 11월 국정원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을 계기로 김 전 총영사와 장 부총영사의 관계는 급격하게 틀어졌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자 김 전 총영사에게도 화살이 돌아갔다. 장 부총영사의 조사를 묵살한 것은 자신과 덩씨의 부절절한 관계를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것. 문제가 불거진 다음달인 지난해 12월에도 김 전 총영사는 덩씨와 사진을 촬영하며 친분을 자랑했다. 때문에 국정원에선 내사 과정에서 김 전 총영사로부터 국내 자료가 빠져 나간 것으로 봤고, 이는 결국 현실화됐다. 박희태 국회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이재오 특임장관, 이방호 지방분권촉진위원장 등 현정권 실세와 국회의원 휴대전화 번호 200여개가 김 전 총영사로부터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김 전 총영사는 “내가 사용하는 VIP리스트는 따로 있다. 정보를 주려 했다면 이걸 줬을 것”이라면서 유출된 정보가 국가기밀이나 중요정보 사항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누군가 총영사 관사에 침입해 카메라로 촬영한 뒤 이를 근거로 새로운 전화번호 리스트를 만들었다. 국내 정보라인이 나를 음해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장 부총영사를 배후로 지목한 셈이다. 장 부총영사는 “시간이 지나면 사실관계가 밝혀질 것이다. 현재로선 모든 질문에 노코멘트한다”고 전했다.

이와 별개로 김 전 총영사가 오락가락한 진술을 하고 있고, 아직까지 덩씨에 대한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일단 유출된 유력 정치인들의 휴대전화번호는 상당수가 여전히 같은 번호를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현재 각국의 정보기관들은 휴대전화번호만 알고 있으면 얼마든지 해외에서도 도청이 가능할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청이나 해킹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덩씨가 이 정보들을 중국 공안이나 다른 국가 정보기관에 넘겼을 경우 국내 정치는 물론 외교 문제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덩씨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상하이 총영사관 직원들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출된 국가기밀이 더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덩씨는 수년 전부터 총영사관 직원들이 서로 소개해주며 알고 지낸 인물로 총영사관에 근무했던 전·현직 직원들 중 덩씨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덩씨의 남편 진모 씨도 덩씨가 관리하는 개인금고 두 개 중 한 개는 끝내 비밀번호를 맞추지 못해 열어보지 못했으나 그 안에는 중요 문서가 상당할 것으로 추측했다.


합동조사단, 현지조사 착수


이번 사건으로 청와대 역시 불똥을 맞았다. 덩씨가 이 대통령 방중 시 통역을 하고 청와대도 방문해 식사를 했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사실이 전해진데 이어 이번 사건이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의 ‘보은인사’가 화를 자초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임명 당시부터 논란이 적지 않았던 김 전 총영사는 각 부처에서 파견된 공관원들로부터 질시의 대상이었다는 것. 실무 능력이 필요한 영사 업무에 정치권 인물이 임명되다 보니 관리 능력에 한계를 보이고 이는 결국 덩씨에 대한 정확한 실체 파악도 없이 비공식적인 인맥에 의존하게 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사태가 확산되면서 검찰 또한 이번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지난 10일 “정무부처 합동조사반에서 전면 재조사할 예정”이라면서 “범죄가 될 만한 사실이 나오면 바로 수사하겠다”고 말해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합동조사단은 진상파악을 위해 총리실을 중심으로 법무부, 외교통상부 직원 등 총 9명으로 구성됐으며 지난 13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중국 상하이 현지 조사에 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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