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박종철 열사와 6월 민주화운동>이라는 제하의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가진데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자신의 입신을 위해 박종철 열사의 의로운 죽음을 이용했다는 지적이다. 앞서 “많은 신세대들이 이 사건의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는 안 대표는 지난 4일 열린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자신이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 민주주의가 확립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빈들도 축사를 통해 안 대표를 민주화의 주역으로 한껏 치켜세우기에 바빴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안 대표가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고문에 의한 것임을 밝혀냈다”고 말했고,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민주화 세력의 주류가 우리 한나라당에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박희태 국회의장은 “민주화 투쟁의 영웅 안상수를 청와대로 보내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박종철기념사업회’에선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고문에 의한 사망임을 밝히는데 일조한 것은 당시 서울지검 공안 2부장이었던 최환 검사라는 것. 최 검사는 사건 발생 당일 치안본부 대공경찰관들이 쇼크사가 틀림없으니 화장할 수 있도록 지휘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경찰병원이 아니라 한양대 부속병원에서 부검을 하도록 조치해 신뢰할 만한 부검 집도의를 합류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9년에 채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관계기관대책회의 은폐ㆍ조작 의혹’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관심을 기울인 최 검사는 정작 수사 일선에서 배제되고, 공교롭게도 부검이 있던 날 형사부 용산경찰서 담당 당직검사라는 이유로 안 대표에게 사건이 배당됐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당시 안 대표가 부실수사를 했다는 점이다. 고문에 가담한 자가 구속된 2명 외에 3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이를 상부에 보고한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는 것. 종교계가 이 같은 사실을 폭로하기 전까지 오히려 관계기관대책회의, 안기부 관계자 등의 요구에 따라 이를 은폐하는데 함께 했다는 게 박종철기념사업회 측의 설명이다. 따라서 박종철기념사업회에선 안 대표에게 노골적으로 불쾌한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안 대표가 박종철기념사업회에 모든 인세수입을 기부하겠다는 제안마저 거부하고,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야권에서도 사실관계를 바로잡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한 중심에 서 있었던 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은 박종철기념사업회에서 지적한 사례를 들어 “6월 민주화운동 그리고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관련한 안 대표 역할의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따져 물었다. 황희 부대변인 역시 “시켜서 한 일도 기여가 있다고 할 수는 있으나, 동일한 사건에 대해 부실수사까지 한 마당에 책을 출판하고 사람들 불러모아가며 자화자찬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진보신당에서도 브리핑을 열고 “안 대표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이 마치 본인 때문에 밝혀진 것처럼 행세해왔는데, 이는 전형적인 남의 공 가로채기”라고 지적했다. 5ㆍ18 민주항쟁 희생자의 묘비 상석에 발을 올려 질타를 받았던 안 대표의 이미지 쇄신은 사실상 이번에도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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