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비리 척결’로 사회전반 사정정국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까지 다 채우고 일하고 떠나겠다.” 집권 4년차를 맞이한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거액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만큼 권력형 스캔들이 일어나기 어렵고, 대체로 4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대 정부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명박 정부 역시 레임덕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미래권력’이 가시화될수록 레임덕이 찾아오는 건 권력의 생리현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나라당 지도부가 지난 1월 초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면서 반기를 든데 이어 국정원 직원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을 둘러싼 국정원과 국방부의 갈등은 레임덕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최근 자진 입국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에리카 김의 입국 배경에 관한 뒷말도 무성하다. 현정권에서 제기됐던 의혹들을 청산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차단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가동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대적 사정으로 제2금융권, 역외탈세, 정치권 게이트 수면 위

총리실ㆍ행안부ㆍ감사원ㆍ국세청 ‘토착 비리’ 발본색원 강조해


사실상 이명박 정권의 명운은 검찰이 쥐고 있다. 검찰의 대대적인 사정이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방지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검찰은 이 대통령의 집권 4년차를 앞두고 지난해 8월부터 금융관련 비리와 공기업 부패에 대한 전방위 사정을 예고해왔다. 국가 예산이 들어간 공기업이나 공적자금 투입기업의 비리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서민생활에 영향이 큰 제2금융권의 비리에 대해 집중적인 수사를 벌여왔던 것이다.

당초 검찰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흐트러진 조직 내 분위기를 다잡는데 주력, 김준규 총장이 임기 후반기를 맡아 대대적인 사정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방침을 내세웠으나 때마침 이명박 정권의 이해관계까지 맞아떨어져 수사에 속도가 붙은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아직은 자료 수집단계지만 조만간 이들 문제가 곧 수면위로 부상할 예정이다.


정권 말기 ‘힘’ 있을 때 현정권 비리 청산


특히 역외탈세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본격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국세청에서 탈세와 기업자금 유출 혐의가 있는 업체들을 속속히 고발하고 있다. 더욱이 국세청은 ‘역외탈세와 전면전’을 선언하고 올 한 해에만 총 1만 8,300건 내외의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총 1조원 이상의 역외탈세를 찾아낸다는 목표까지 세웠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올 초 역외탈세담당관을 신설한데 이어 서울청 내 국제거래조사국 인원을 100여명으로 대폭 확대했다. 3월부턴 ‘세정 전문요원’ 15명을 순차적으로 해외에 파견하는 등 역외탈세 대응체제를 구축하고 본격적인 ‘소탕전’에 나선다. 역외탈세에 대한 공세가 높아지면서 대기업의 포위망도 좁혀지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대기업에서도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자금세탁 등 조세피난의 목적으로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처벌해야 하지만 단지 우리나라가 이들 국가에 대한 자금 물동량이 많다고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조세피난처에 대한 직접투자의 89%가 대기업의 몫인데다 30대 그룹이 조세피난처에 거느린 계열사가 231개나 되는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대기업의 탈세와 비자금 조성, 기업자금 불법유출의 의혹을 빗겨가긴 어려울 전망이다.

대기업 관련 비리 수사가 예고된 가운데, 정치권 게이트도 시한폭탄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장 다음달 실시될 4ㆍ27 재보선과 내년 총선 및 대선을 앞두고 검찰이 ‘정보’를 모으고 있다는 후문이다. 더불어 총리실과 지방자치 단체에 대한 감찰 권한이 있는 행정안전부, 감사원 등도 발맞춰 공직자들의 토착비리 척결을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총리실은 ‘관가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중심으로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감찰활동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토착비리와 관련해 3~4명 단위의 소규모 팀을 구성하여 전국 광역시와 각 도에 파견, 해당 지자체에 상주시키면서 집중 감독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교육과학기술부와 행안부 등이 진행 중인 교육 및 토착비리에 대한 감찰활동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감독하고, 필요할 경우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거나 감사관 회의를 소집하는 등 감찰활동에 있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행안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직자의 선거 개입과 토착비리 척결을 위해 자치단체와 합동으로 총 150명 규모의 ‘특별감찰단’ 50개 반을 발족시켰다. 이는 2006년 지방선거 때보다 5배가량 늘어난 규모다. 특별감찰단은 공무원의 줄서기와 편가르기, 선거철 규제 및 단속업무 소홀, 민생현안 방치 등의 행위에 대해 상시적인 감찰활동을 벌이고 있다. 향후 행안부는 지방공무원법과 공무원복무규율 등을 개정해 뇌물수수뿐 아니라 공금횡령에도 즉각 퇴출시키는 방향으로 복무규율을 강화시킬 방침이다.

감사원도 공직사회 비리근절을 위해 지난해 연말 신설한 감찰정보기획관과 기동감찰과는 물론 기존 특별조사국과 자치행정감사국까지 총동원돼 고위 공직자와 지자체장 비리에 대한 상시 감찰체계를 구축했다. 감사원은 그동안 수집된 정보와 첩보 등을 바탕으로 연초 이후 10여명의 기초 지자체장에 대한 감찰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이권 개입에 연루된 혐의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일부 기초지자체장에 대해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국세청 역시 지역연고 탈세혐의 기업에 대한 교차 세무조사와 내부적으로 철저한 향피제 시행을 통해 토착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계획이다.

관건은 현재 야권에서 청와대와 검찰의 사전조율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에리카 김에 대한 수사 결과다. ‘한상률 게이트’와 ‘BBK사건’ 등 현정권의 치부를 안고 있는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그것도 자진해서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검찰의 기획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야권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힘’이 있을 때 문제가 되는 사건을 털고 가자고 하는 정권 마무리 작업”이라며 “어차피 터질 것을 막아보려고 하는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귀남 법무장관은 이를 부인했다. 국회 교육ㆍ사회ㆍ문화 분야 대정부질문 마지막 날인 지난 2일 민주당 의원들의 의혹 제기에 “한 전 청장은 수사팀과 전혀 의견 조율 없이, 사전에 전혀 연락 없이 들어왔고, 에리카 김씨는 미국에서 보호관찰이 해제되면서 사전에 들어오겠다고 연락을 하고 들어왔다”고 답변했다. 검찰에서도 역시 “초강도 수사”를 약속했다.


한상률ㆍ에리카 김의 ‘수사 결과’ 관건


그러나 검찰이 말한 초강도 수사는 맥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28일 소환조사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이상이 없었던 한 전 청장이 추가소환을 앞두고 지난 3월3일 돌연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자세한 병명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외부의 접근을 차단한 채 이 병원 심혈관병동인 VIP병동 2013호에 입원해 가족과 함께 머물고 있다는 전언이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이 입원 중이라도 수사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으나 야권에선 이를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에리카 김은 지난 대선 직전 이 대통령이 BBK의 실제 소유주라고 했던 자신의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증거로 내세웠던 이면계약서 역시 이 대통령의 도장을 위조해 가짜 서류를 만들었다는 것. 그러나 주가조작과 횡령 혐의는 대법원에서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동생 김경준씨가 주도해 자신은 모른다고 발뺌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에리카 김이 형량이 낮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만을 시인하는 선에서 한국 내 법적인 문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전격 귀국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검찰은 에리카 김에 대한 출국금지를 연장하고 다시 소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의 의혹이 계속되는 가운데 검찰이 이를 명명백백하게 밝히지 못할 경우 현재 수사 중인 사건의 폭발력이 약해지고, ‘현정권 봐주기 수사’라는 후폭풍 또한 적지 않을 전망이라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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