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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를 품다] 내 차로 가는 세계여행1-⑤
  • 저자 조용필
  • 승인 2017.09.2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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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저자 제공

<프롤로그> 시동을 걸다

2015년 4월 19일, 아침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둘째 아들 걱정이 앞서지만 떠나는 발길을 재촉합니다. 비가 내리는 새벽길을 달려 동해항으로 오는 동안 메시지와 전화가 운전이 어려울 만치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못나게 살아온 건 아니구나 괜히 마음이 뿌듯합니다. 여비가 떨어지면 꼭 연락하라고 하신 분 수두룩합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넉넉해져 안심이 되었습니다. 빗속을 달려 약속한 10시에 겨우 강원도 동해항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페리회사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일사천리로 통관 업무를 진행합니다. 보세 구역으로 차를 옮겨 세관 검사를 받습니다. 이틀 동안 실은 물품을 혼자서 다 내려 X-RAY검사를 받고 다시 싣느라 오랜만에 땀에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선내 화물칸으로 차를 옮긴 다음 네 바퀴를 야무지게 결박합니다. 

세관원의 안내를 받아 다시 보세 구역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오후 2시. 퇴색한 유행가 가사처럼 뱃고동 길게 울리며 출항합니다. 항구에 비는 내리는데, 선창가에 서서 눈물 흘리는 이도, 손 흔드는 이도 없습니다. 아무도. 모든 사물은 제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에 열심히 매진할 때 가장 빛난다고 알고 살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이 세상에 운명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내가 고생을 한 것도 운명이었고, 열심히 노력하여 그 고생을 벗어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없던 중학생이 세계 여행을 꿈꾼 것도 운명이고, 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의 날씨는 험하고 바람까지 드셉니다. 
갑판에서의 별 구경은 어림도 없습니다. 떠난다고 연락도, 작별인사도 못한 곳이 많은데 아쉽게도 이 선박은 와이파이가 불통입니다. 거친 풍랑으로 흔들림이 심한 탓에 선내 욕실에서 이리 저리 뒹굴면서 힘들게 목욕을 마치니 쏟아지듯 잠이 몰려옵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여행을 가겠습니다. 어렵겠지만 멋진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목숨 걸만한 가치 있는 훌륭한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제 운명이라고. 그리고 명심하겠습니다. 이 여행의 최종목적지는 ‘집’이라는 사실을!

몽골 - 50차선 비포장 도로

하지만, 콘크리트 문화가 식상하고, 잠시도 쉴 틈 없이 업무에 시달리고, 성냥갑 같은 고층 아파트에 질리고, 쉼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이 징그럽고, 출퇴근 러시아워의 혼잡함을 벗어나 보고 싶을 때, 내 동공과 시선과 기억 속에 끝없는 지평선을 담아보고 싶을 때 한 번쯤 모든 것을 내려 두고 몽골의 초원으로 와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저자 제공

다시 러시아를 거쳐 카자흐스탄으로

2주일 동안 약 4,000km의 거리를 달려 몽골을 벗어나는 출국장에서 통관을 담당하는 세관원이 “11년간 이 자리에서 근무했는데 한국 번호판을 달고 여행하는 자동차는 처음 보네.”라고 합니다. 뭐든지 처음, 최초라는 말을 듣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두 번째로 러시아에 입국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몽골을 거치며 8,000km나 왔지만 아직도 시베리아입니다. M52번 도로를 타고 비스크Biysk, 바르나울Barnaul을 거쳐 시베리아의 수도라고도 불리는, 러시아 제3의 도시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까지 올라갔습니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몽골을 거쳐 오며 혹독하게 시달린 자동차를 정비하고 휴식을 취한 후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남쪽 바르나울로 내려왔습니다. 시베리아로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룹촙스크 쪽의 국경을 통해 카자흐스탄에 입국했습니다.

사진=저자 제공

카자흐스탄 - 넓고, 많고, 밝고

풍요로운 중앙아시아의 거인

카자흐스탄은 북쪽 국경에서 경제 수도 알마티까지 약 1,200km거리를 남쪽으로 사흘 동안 달려야 할 만큼 넓은 나라입니다. 국토 면적이 세계에서 아홉 번째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크기일까요? 우리나라는 109위의 불과한 조그마한 나라입니다. 국토는 넓고, 자원도 많고, 사람들도 밝고. 풍광도 빼어나고…. 여행자는 모든 게 부럽습니다.

들판의 말들은 몽골의 말들보다 훨씬 윤기가 흐릅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선’을 넘었을 뿐인데 사람의 모습이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산천이 달라지는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역시 어렵습니다.

사진=저자 제공

관광모드로 급선회합니다. 도시 구경보다는 자연이 훨씬 좋아 도시를 벗어납니다. 남쪽의 알마아라산Alma Arasan 산에 오릅니다. 정상 근처까지 올라가자 산정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호수가 있습니다. 갈수기라 많이 가물어 있지만 아름다움에는 전혀 손상이 없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까지 올라가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질까 기대하며 계속 올라갔습니다. 정상 부근에서 군인들에게 제지당합니다. 이곳에서부터 키르기스스탄과의 국경지역이며,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라고 합니다.

사진=저자 제공

도로 위의 소, 비포장도로, 그보다 불편한 경찰들

여행자는 이 넓은 땅, 풍요로운 자원, 빼어난 풍광이 모두 부럽습니다. 그러나 입국하자마자 시작하여 며칠 동안 스무 번 넘게 검문을 받았습니다. 경찰이나 흰색 승용차만 보면 노이로제 걸릴 지경입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힘든 건 비포장도로도 아니고, 구멍 난 도로도 아닙니다. 도로에 뛰어드는 소도 아닙니다. 

곳곳의 으슥한 곳에 대기하고 있는 경찰관입니다. 무조건, 거의 무조건 세웁니다. 전조등을 안 켰다고, 선팅을 했다고, 비자가 없다고. 거주지 등록증을 내놓으라고, 세차를 안 했다고. 온갖 꼬투리를 잡다가 결국은 ‘텡게’. ‘텡게(편집자주 카자흐스탄 화폐 단위)’를 달라고 합니다. 심지어 내 선글라스를 가지고 도망가려고 한 경찰도 있었고, 내 운동화가 좋아 보이니 바꾸자고 한 한심한 경찰도 있었습니다.

도로 통행료가 없으니 그 돈 낸 셈치다가 나중에는 경찰과의 그 실랑이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밝게 웃으며 너네 말 모른다고 짧은 영어로 즐겼습니다만, 우리도 이삼십 년 전에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지금처럼 투명해졌다고 이해하며 스스로 위안했습니다.

저자 조용필  news@iminj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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