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술을 -주머니를 비움으로 가난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초래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또한, 첫 잔과 달리 마지막 잔을 비울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바보의 혀와 악한 입술, 죄 된 심장을 갖게 함으로 분별력을 잃어 시비를 불러온다고 평가하였다.

“적당히”와 “인간관계의 윤활제”라는 명분을 내세워 음주를 정당화 하지만, 주머니를 비우는 것도, 건강한 자를 병들게 하는 것도 결국 술이다. 세상 더러움의 자국을 남기듯, 술을 마시고 혼미한 정신에 실수를 남기는 것도 흔한 일인데 술에 관대한 세상은 그것을 너그럽게 용인하기도 한다. 불확실성으로 청춘기를 보낸 필자가 농반진반으로 타인에게 자랑하는 것 3가지가 있는데 가기 싫었던 군대를 다녀온 게 그 중 으뜸이요, 장가를 간 것과 술을 끊은 것이 그것이다.

술 끊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하지만 이런 실수들을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마포의 허름한 순댓국 집에서 있었던 일인데 젊은 친구 하나가 대낮부터 불콰하게 얼굴이 물들었다. 식당을 전세 낸 양 친구들과 떠들어 대는데 간헐적으로 요상한 웃음을 아주 큰 소리로 웃는다. 테이블 위에 소주병을 세어 본 후 술 한 병값인 4,000원과 곱해보니 28,000원이 나온다. 셋이 M+2병을 이미 넘긴 셈이다. 그 친구들을 정면에 앉혔다면 자연스럽게 쳐다볼 텐데 등 뒤에 앉았으니 큰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불쾌함을 표하기 위해 뒤를 돌아봐야 한다.

흉내 내기 힘들 정도로 특이한 웃음인데, 홀에서 밥을 먹는 이들의 표정이 모두 좋지 않다. 술을 몰아 먹었는지, 또는 몰아 먹였는지, 셋 중 유독 한 놈(?)만 그 모양이다. 벽 전면의 T.V에서는 국정 농단과 관련된 자들의 재판 뉴스가, 홀에는 그 친구의 웃음소리가 흘러넘친다.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에 뒤돌아보다 그 친구들과 눈이 마주쳐 흠칫한 나는 순댓국을 퍼 넣는 데 전념하기로 하였다. 분명한 것은 돌아다 보는 순간, 잠깐 목도한 그 친구의 자세였다. 요상한 웃음의 주인공은 의자 위에 신발을 벗고 마치 고양이처럼 올라앉아 세운 무릎을 깍지를 낀 채 끌어안고 있었다. 술을 먹고 난 후에도 변하지 않은 자신의 균형 감각을 코마네치*처럼 뽐내듯 말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생각처럼 순탄한 것이 아니다. 잠시 웃음소리가 멎어 조용해진 식당은 이내 “쿵”하는 소리와 함께 정적도, 그 평온도 깨지고 말았다. 의자 위의 코마네치가 깍지를 풀 겨를도 없이 옆으로 쓰러지며 식당 바닥과 조우한 것이다. 답답한지 양말까지 벗고 있었는데 의자 위에 양말만 덩그러니 한 짝이 남았다. 열상을 입은 머리에서 순식간에 피가 흐르는데 고통도 모르는 듯, 지혈하는 친구들을 오히려 제지하며 소리를 지른다. 순댓국을 먹다 피를 보게 된 손님 중 일부는 먹는 둥, 마는 둥 계산을 하고 주인은 돈을 받느라, 119에 신고를 하랴 바쁘다. 목불인견의 소란이 등 뒤에서 벌어지는 것이 불편해 앞자리로 옮겼는데 눈앞의 상황은 그야말로 엉망이다. 병원으로 가자는 친구들과 실랑이를 벌이는데 요란한 웃음은 간데없고 고성만을 내지른다.

묵묵히 그 모습을 보며 금주 8년 차인 필자는 생각에 잠긴다. 과거 술을 즐기던 필자는 힘듦을 술로 풀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할 뿐이었다. 술을 일상처럼 즐기며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 젊은이 역시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 있었겠지. 잠시 후 119가 도착하자 사태를 깨달은 듯 얌전해진 만취자는 순순히 구급차에 오른다. 마침 T.V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이 방영된다. 국정을 농단하여 국민을 유린한 자, 술주정을 부린 자, 이래저래 국가는 소란을 피운 자들을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올림픽 체조에서 5개의 금메달을 딴 루마니아 국민 영웅.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7번의 만점을 기록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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