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6일(현지시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강경화 외교 장관과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 장관의 협정·MOU서명식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선 후보시절 “北 6차 핵실험 시 남북 대화 어렵다” 데자뷔 위기 봉착
원폭 5∼6배 위력 ‘한반도 운자자론’ 기로, 강력하고 실제적 대응조치는?

[민주신문=강인범 기자]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의 최대 뇌관인 북핵 문제가 문재인 정부 들어 최대 이슈로 등장하면서 대북정책이 기로에 서게 됐다. 북핵이 체제 연장을 위한 블러핑(허풍) 수준을 넘어 실제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란 현 정책기조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북한의 이번 핵도발은 지난해 이뤄진 5차 핵실험 이후 1년 만으로 유엔안보리의 강력한 제제에도 불구하고 핵포기 의사가 없음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히로시마 원폭의 5~6배에 해당하는 위력으로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 등 대북정책에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다. 대선 후보시절 북한의 6차 핵실험 시 남북간 대화는 어렵다고 밝힌 그대로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 같은 위기속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대화와 압박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북한 6차 핵실험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열고 '실망', '분노', '전략적 실수' 등의 표현을 쓰며 북한을 규탄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또다시 "대화의 길로 나와야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야당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무대책에 국민이 또다시 불안에 떨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회복을 통해 북핵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성에 기대는 방안은 이미 북한 측으로부터 외면당하며 한계에 부딪힌 상태라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도발이 거듭되면서 굳건하다던 한미 관계도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압박 속에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공식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상황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의 말을 한국이 이제서야 이해하게 됐다"며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를 지적했다. 이를 두고 6월 워싱턴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이 '운전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한 것에 대한 불쾌한 감정이 표출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미국 뿐 아니라 대중외교도 출구전략이 요원하다. 문재인 정부가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사드배치를 전격 감행함에 따라 중국 측의 저항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의 압박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제재는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중국도 19차 당 대회가 한 달 앞인 만큼 물러서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산정책연구원 김지윤 박사도 "북한이 적극적으로 '코리아 패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북한이 북미대화를 원하는 만큼 한국 정부는 미국과 적극적으로 공조하고, 미국을 통해서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왼쪽 앞줄 두번째) 대표 등 의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열린 보이스 오브 자유한국 릴레이 발언대에 참석해 '북한의 무모한 핵도발 규탄' 과 '대북구걸 중단, 안보태세 확립' 피켓을 들고 있다. 왼쪽부터 김태흠 방송장악저지투쟁위원장, 홍준표 대표, 정우택 원내대표, 김광림 정책위의장. <사진=뉴시스>

‘코리아패싱’ 우려

국제사회의 다음 행보도 주목된다. 북한이 레드라인(Red line·한계선)으로 여겨졌던 핵실험까지 감행함에 따라 대북제재가 더욱 강경해질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 국면이 미국과 북한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른바 '코리아 패싱(한국만 제외)'의 현실화 우려다.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가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행정부가 다소 북한 측이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대화 요구를 거절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다.

북한은 미국에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체제보장, 세부적으로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배제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데 있다. 북한은 핵 관련 협상은 북미 양자 간의 사안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해왔다. 여기에다가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실질적인 위협을 느끼게 될 경우 한반도에 대한 억지력 제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치권도 북핵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놓고 강경론이 대두되고 있다. 야권은 문재인 정부의 유화적 대북정책이 현 시국을 초래했다며 공세에 나서고 있는 상황.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6일 “북핵 위기가 마지막 단계까지 왔다”고 진단하며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홍 대표는 6일 최고위원-방송장악저지투쟁위원 연석회의에서 “5천만 국민이 핵 인질이 되어있는 이 상태에서도 한가롭게 대화 타령만 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정부고, 무책임한 대북정책이다”며 이같이 말했다.

홍 대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말대로 김정은이 북한 체제가 보장될 경우에만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진단한 발언을 언급하며 “벌써 20년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다. 그런 발언에 현혹되지 말고 대북정책을 새롭게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대표는 그 해법으로 “핵 균형만이 북핵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이다”며 “국민들도 그렇게 인식을 다 하고 있다. 정부가 조속히 여권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엇박자를 종식시키고 5천만 국민이 핵 인질로 되어 있는 이 상황을 빨리 해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전술핵 재배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직은 당내 일각의 이야기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된 햇볕정책 계승을 표방하고 있는 국민의당에서 핵무장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 하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중국의 대북제재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카드로써 '전술핵 재배치'를 거론했다. 김 원내대표는 "중국은 북한에 대해서는 제재하지 않으면서 우리를 제재하고 있다. 중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를 하게 할 우리의 카드가 없으니 '당신들 그렇게 나오면 우리도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라고 경고하자는 것)"라고 했다.

이날 오후 이용호 정책위의장 주재로 국회에서 진행된 정책간담회에서도 전술핵 재배치는 화두가 됐다. 정책간담회 안건엔 사드배치를 비롯해 코리아 패싱 문제 등 외교안보 현안 여러 가지가 포함됐지만, 회의 참가자들은 특히 전술핵 재배치에 관해 돌아가며 의견을 개진했다고 한다. 국회 국방위 간사인 김중로 의원이 대표적으로 전술핵 도입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이미 지난 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그동안 쉬쉬했던 전술핵 배치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옵션을 심각히 검토할 단계"라고 말한 바 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