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생 사생활 캐다 ‘덜미’

남편 경영권 안 뺏기려 맏며느리가 시동생 측 불륜·사생활 캐
장남은 아버지 상대로 소송, 업계 “3류 드라마 보는 기분” 눈살

 
 
<한 중견그룹 맏며느리가 시동생 측의 불륜을 캐다 쇠고랑을 찼다. 그룹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시동생의 약점을 캐내려 했던 것. 이 맏며느리는 심지어 심부름센터 직원에게 의뢰해 시동생과 가족들 금융거래정보까지 빼냈다. 이는 드라마 속 얘기가 아니다. 국내 섬유소재 분야 중견기업인 한국화이바그룹에서 벌어진 ‘실제상황’이다. 경영권을 둘러싸고 가족간에 벌어진 추잡한 ‘골육상쟁’ 전모를 들춰봤다. >
                  
 

▲ 한국화이바 조용준 회장의 장남인 조문수 한국카본 대표     © 민주신문


 
회사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간의 분쟁은 사실 경제계에서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 두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 그보다 앞서 2000년 현대그룹 ‘형제의 난’, 최근 금호그룹에 이르기까지 경영권을 놓고 피 튀기는 아귀다툼은 재계에서 오래된 레퍼토리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화이바그룹’에서 벌어진 사건은 기존 그룹들의 경영권 분쟁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하고 볼썽사납다는 점에서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버지와 장남간 갈등이 발단
 
재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른 ‘한국화이바그룹’은 섬유소재분야 중견그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창업주인 조용준 회장이 1972년 한국화이바와 한국카본, 한국신소재 3개사를 경남 밀양에 설립한 후 에이치엠 등 2개사를 추가로 설립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 주력인 한국화이바와 한국카본(상장사)의 2009년 매출액은 각각 1,740억, 1,760억원에 이른다.
창업주인 조용준 회장은 아내 김순봉 씨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장남 문수 씨(한국카본 대표)를 비롯해 장녀 정미 씨(한국카본 전무), 차녀 정인 씨, 차남인 계찬 씨(한국화이바 사장)다.

사건은 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와 장남간 이견이 발단이 됐다.

조 회장은 ‘제조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고, 반면 장남 문수 씨는 ‘글로벌 경영과 사업다각화’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갈등을 보였던 것. 이런 갈등이 발단이 돼 문수 씨는 조 회장의 눈밖에 나 그룹 경영권에서 차츰 멀어지게 됐고, 대신 차남인 계찬 씨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갈등은 본격화됐다.

문수 씨는 지난해 아버지 조 회장을 상대로 한국화이바 주식확인 소송을 자신의 아들을 대신해 법원에 제기했다. 조 회장의 승인없이 문수 씨가 자신의 아들에게 지분을 주자 조 회장이 무효소송을 냈고 문수 씨는 맞소송을 낸 것.
장남의 행동이 괘씸했던 조 회장은 문수 씨에게 줬던 한국화이바와 한국신소재, 한국카본, 에이치엠 경영권 중 한국화이바와 한국신소재 경영권을 거둬들였다. 두 회사의 경영권이 차남인 계찬 씨에게 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부자 사이는 더욱 나빠졌다.

이런 가운데 ‘진짜 사건’이 터졌다. 남편이 시아버지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해 그룹 경영권을 뺏길 것으로 생각한 문수 씨의 부인 이모 씨가 남편의 ‘경쟁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경쟁자는 시동생인 계찬 씨와 둘째사위인 A씨였다. 이 씨는 이들의 약점을 알아내 회장으로부터 신임을 잃게 하려고 마음먹었다. 이 씨는 사업관계로 알고 지내던 회계사에게서 사무장 백모 씨를 소개받아 이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방법을 상의했고, 백 씨는 심부름센터 대표인 김모 씨에게 계찬 씨의 아내(둘째 며느리)와 둘째사위 각각의 불륜 증거를 캐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부정한 행위는 포착되지 않았다.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한 이 씨는 다시 심부름센터 직원에게 의뢰해 이들의 개인정보(인터넷 사이트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를 넘겨받았다. 이 씨는 또 지난 2009년 10월부터 2개월 동안 한 시중은행의 VIP 고객 담당인 원모 씨를 통해 둘째사위와 둘째며느리뿐 아니라 시어머니의 통장잔액까지 확인하는 등 17차례에 걸쳐 불법적으로 금융정보를 열람하기도 했다.

맏며느리 이 씨의 범행은 심부름센터 측의 폭로로 들통이 났다. ‘일처리가 미흡하다’며 질책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심부름센터 측이 둘째사위인 A씨에게 이러한 사실을 폭로했고, 이를 전해들은 조 회장이 며느리인 이씨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업계에선 ‘충격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라는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의 경영권 분쟁을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가족간에 소송을 벌이고 뒷조사까지 하는 걸 보면 돈이 많다고 모두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마치 3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라고 실소했다.

또 다른 업계 인사는 “화이바그룹은 복합소재분야로는 국내 선두기업인데, 이런 곳에서 공륙상쟁이 발생해 안타깝다”면서 “선두기업의 행보는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화이바그룹의 가족간 경영권 분쟁이 업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진 않을 지 걱정된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한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3부(부장검사 이기석)는 화이바그룹 맏며느리인 이 씨를 정보통신망 침해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지난 1일 불구속 기소했다.
정소현 기자 coda0314@naver.com
 
본지 지면 기사 게재 일자 20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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