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롯데그룹 '신동빈 호(號)' 출범

20여년만에 회장 승 진, 일각선 “‘비윤리경영’으로 이룬 영광” 오명
 롯데 “‘상생’ 앞으로  열심히 할 것”, 추락한 신뢰·윤리 회복이 관건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1997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한지 14년만이다. 그룹 측에선 이번 승진의 배경으로 ‘실적’을 꼽았다. 실제 롯데는 지난해 총매출 61조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을 뿐 아니라 그가 적극 추진한 해외사업 역시 전년의 3배가 넘는 성과를 달성했다. 롯데 내부에선 신 회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의 대규모 승진에 대해 무척 고무적인 분위기다. 본격적인 ‘2세경영 체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롯데의 이번 승진잔치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싸늘하다. 롯데가 자랑스레 내세운 ‘실적’이라는 것이 결국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들의 숨통을 조여 이룩한 것들이라는 이유에서다.>
 
 

▲ 부회장에 오른지 14년만에 회장으로 승진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민주신문

 
롯데그룹(이하 롯데)이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롯데는 지난 10일 신격호 회장이 총괄회장을 맡고,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승진시키는 내용의 정기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롯데는 이번 인사에서 사장 7명을 승진시켰다. 그룹을 통틀어 사장이 모두 9명인 상황에서 한꺼번에 7명이나 새로 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기존에 사장급인 이인원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을 제외하면 롯데그룹의 사장단은 총 15명으로 부쩍 늘었다.
전체 승진 인사 규모도 역대 최대다. 2008년 142명, 2009년 127명, 2010년 136명에 이어 올해는 승진 규모가 172명으로 껑충 뛰었다. 한마디로 ‘파격’적인 인사인 셈이다.
 
총매출 61조, 최대 승진잔치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신동빈 부회장의 ‘회장’ 승진이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그룹에 발을 들여놓은 지 21년만이자 부회장에 오른 지 14년만에 그룹 키를 거머쥐게 됐다. 신동빈 회장의 승진은 롯데그룹이 1960년대 후반 창업 후 40여년 이상 유지해 온 신격호 총괄회장의 창업주 체제에서 ‘2세경영 체제’로 탈바꿈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롯데 측은 이번 대규모 인사의 배경으로 ‘실적’을 꼽았다. 경영실적 중심의 인사였다는 설명이다. 실제 롯데는 지난해 총매출 61조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2009년 47조3,000억원보다 무려 30%나 성장한 수치다.
특히 롯데그룹의 주력인 롯데쇼핑이 연간 총매출액 14조967억원, 영업이익 1조1,46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09년 대비 총매출액 17.3%, 영업이익은 30.8% 늘어난 것으로, 국내 유통업계 사상 첫 영업이익 1조원 시대를 열었다.
무엇보다 해외사업은 7조원의 매출을 달성하면서 전년 대비 200% 이상 신장했다.
신 회장은 이런 최대의 실적으로 바탕으로 회장으로 승진해 모양새도 좋고 향후 사업 추진에도 힘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롯데 내부에서도 이번 대규모 인사를 놓고 무척 고무적인 분위기다. 역대 최대규모 인사인데다, 신 회장의 승진으로 본격화된 ‘2세경영 체제’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재계에서도 신 회장 체제 이후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그동안 소극적으로 평가되던 롯데를 공격적이고 스피디하게 바꿔 놓은 인물이 바로 신 회장이라는 점에서 그가 만들 ‘롯데’의 모습에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이번 롯데의 대규모 승진잔치를 바라보는 일각의 시각은 그리 곱지 못하다. 롯데가 역대 최대규모 인사의 배경으로 자랑스레 내세운 ‘실적’이라는 것이 결국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들의 숨통을 조여 이룩한 것들이라는 이유에서다.
롯데는 신 회장의 ‘공격경영’ 이후 적지 않은 잡음에 시달려왔다. 특히 무서울 정도의 식성으로 영토를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들은 롯데 창사 이래 가장 시끄럽고 뜨거웠을 정도다. 숨가뿐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서민상권에 손을 뻗으면서 중소기업과 영세상인들의 밥그릇까지 차지하려 한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던 것.

지난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통큰 치킨’은 롯데의 영토확장 욕심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당시 롯데는 5,000원짜리 ‘초저가 치킨’을 선보이며 시장이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출시와 동시에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자영업자 죽이기’라는 비난을 받으며 결국 판매를 중단해야 했다.
 
골목상권 장악 이어
대학가 자판기사업까지 싹쓸이

 
롯데의 도 넘은 ‘영토확장’ 행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엔 대표적 서민상권인 ‘동대문 패션타운’에 진출을 선언하면서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롯데는 그룹의 자회사인 롯데자산개발을 통해 지난달 동대문지역 쇼핑몰인 굿모닝시티 관리단과 양해각서(MOU)를 체결, 굿모닝시티 지하 2층에서 지상 7층까지 총 9개층을 임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근 상인들은 대기업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게되면 자영업자들의 매출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또 일부 상인들은 서울 잠실에 위치한 ‘롯데월드 쇼핑몰’ 사태처럼 일방적으로 쫓겨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도 드러낸다. 현재 ‘롯데월드 쇼핑몰’ 내 240여개 점포 상인들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 당하고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놓여있다. 상인들은 “국가안보의 중대한 위험마저 감수하며 얻어낸 ‘제2롯데월드’ 사업 허가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는 것도 모자라,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오랫동안 상권을 형성·유지해 온 상인을 아무런 보상없이 내쫓는 것은 기업 윤리마저 저버린 파렴치한 행동”이라며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SSM(기업형 슈퍼마켓)’ 역시 지역 소상공인들과의 첨예한 갈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차별적 개점을 벌이며 골목상권을 장악해가고 있다. 롯데의 SSM인 롯데슈퍼는 전국 234개로 업계 1위다. 롯데슈퍼는 지역상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기존 동네 상권보다는 아파트 미입주 지역이나 신도시 등 기존 상권이 채 형성되지 않은 곳 위주로 교묘한 출점을 하는가 하면 하룻밤 사이 기습적으로 점포를 내는 위장 개업도 펼치고 있다.

심지어 ‘피자집’과 ‘스시뷔페’ 입점 예정 현수막을 달아놓고 위장 출점하는 어처구니없는 행각도 벌이고 있다. 중소상인, 지역 자영업자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게 롯데 재벌의 주특기라는 중소상인과 시민사회의 지적이 커지는 이유다.

‘대학가’도 점령했다. 자판기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대학가 상권까지 싹쓸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자동판매기운영협동조합 측에 따르면 현재 롯데가 대학교 구내까지 진입해 직접 운영하는 자판기는 약 2만2,000대. LG생활건강(3,000여대)과 동아오츠카(700여대)와 비교했을 때 엄청난 숫자다.
한국자동판매기운영협동조합 측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기업의 우월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판기 사업권을 싹쓸이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롯데처럼 상생에 미흡하고 부정적인 기업은 없다. 공정한 사회, 진정한 상생을 위한 협력이라면 최소한 서민들의 생계형 시장까지는 침범하지 않는 것이 대기업의 상도덕이 아닌가 싶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 넘은 영토확장
‘통큰 추락’우려도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는 입장이다. 나름 상생을 위해 상생협력자금도 지원하고 다양한 협력안 등을 내놓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대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몰아세우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하지만 롯데가 말하는 ‘상생’에 진정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롯데의 ‘상생’ 행보가 빨라진 것은 지난해 10월께부터다. 당시 신 회장은 협력업체를 방문해 수출지원 등을 약속하고 1,500억원의 상생펀드 조성을 약속하는 등 중소기업과의 상생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같은 동반성장의 행보 이면에는 롯데슈퍼의 기습 출점 등에 따른 여론 악화와 정부의 동반성장 압박에 떠밀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M&A 등을 통해 롯데가 해외영토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반면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동반성장에 대해서는 롯데가 무관심했던 게 사실. 이런 가운데 롯데건설·롯데미도파 등 계열사에 대한 잇단 세무조사가 실시되고 여론까지 악화되면서 신 회장이 큰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특히 신 회장은 지난해 10월 25일 정부 주최로 열렸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조찬간담회 이후 곧바로 상생 행보를 보이면서 이같은 해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 회장은 간담회 바로 다음날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상생협력안을 보다 구체화할 것을 지시했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겉으로는 상생을 내세우면서 골목 구석구석까지 서민상권을 장악해나가고 있는 행태는 기업윤리나 상도덕 등을 죄다 무시한 횡포”라면서 “롯데가 자랑스레 내세운 ‘실적’이라는 것이 결국은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들의 숨통을 조여 이룩한 것이다. 서민들 피눈물로 왕관을 차지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롯데의 이같은 공격적인 영토확장에는 신 회장이 내세운 ‘비전 달성’이 밑바탕으로 깔려있다. 신 회장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09년 ‘2018 아시아 톱10 글로벌 그룹’이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2018년까지 매출 200조원을 달성하고, 그룹 전체 매출의 최대 30%까지를 해외에서 올리겠다는 목표다.
이를 실현하려면 현재 61조원 매출에서 앞으로 8년 동안 약 3배 이상의 매출 성장이 필요하다. 결국 신 회장의 과제는 해외진출과 M&A 등으로 회사의 덩치를 키워야 한다. 이는 신 회장의 영토확장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들이 눈물 흘릴 일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롯데 측은 “좀더 지켜봐 달라”는 당부다. 상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노력할 것이니 믿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롯데가 보여준 행보를 보면 본격적인 ‘신동빈 체제’에서도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게 사실이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신 회장이 ‘글로벌 비전’을 달성하고, 성공적인 체제 안착을 위해선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국내 여론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통큰치킨이나 SSM기습개점 등으로 불거진 논란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신뢰 하락으로 연결될 것이고, 이는 결국 ‘통큰 추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20여년만에 그룹 경영키를 움켜쥐게 된 신동빈 회장. ‘준비된 회장’이라는 수식어답게 과연 신 회장은 이같은 논란과 비판을 잠재우며 명분과 실리,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신동빈 호’에 업계는 물론 서민과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소현 기자 coda0314@naver.com

 
본지 기사 게재일자 20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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