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학교 인성교양대 교수

정권교체의 태풍이 지나 간 이번 대선에서 극명하게 갈렸던 민심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친한 지인들끼리라도 정치 성향이 다르면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게 불문율인 요즘이다. 혹시라도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샤이 보수’들은 한없이 조용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보수적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가 지지하지 않았던 후보가 향후 5년 동안 이 나라를 이끌어갈 새 정부가 출범할 때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며, 국가를 잘 이끌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을 합리적 보수주의자라고 칭한다.

그리고 평소에 자신의 정치 성향이 진보라고 내세우는 자들 가운데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경우도 합리적 보수주의자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누구든 나라를 잘 운영하여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되기를 바란다고 하는 이들도 많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든 합리적 진보주의자든 상관없이 똑 같은 우리의 국민이며, 나라가 잘 되고 국민 개개인이 바라는 일들이 순탄하게 성취되길 기대한다.

흔히 사람들은 ‘보수’는 잘사는 계층,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며 ‘진보’는 못 가진 자, 노동자계층으로 알고 있다.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승객들로 꽉 차 이미 초만원이 된 버스를 타려고 할 때 먼저 탄 사람들 가운데 “비좁다, 제발 그만 태우소!”라고 외치는 승객은 보수주의자이고, “안으로 조금씩 들어갑시다, 같이 타고 가게요”라고 하는 승객은 진보주의자에 비유하였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여기서 보수는 만원 버스에 탔지만 간발의 차이로 자리에 앉지 못해 가득이나 짜증스러운데 계속해서 승객들이 막무가내로 타므로 인하여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이 침해당해 불편하기 그지없는 상황을 맞자, 화난 목소리로 버스기사에게 그만 태우라고 얼마든지 소리 지를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자 보편적인 심리라 하여도 될 성 싶다. 반면에 진보는 비좁아 불편하지만 기를 쓰고 승차하려는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아는 배려심과 자비심을 가졌기에 동행하려는 사람들이다.

요즈음 많은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오직 당리당략을 위해서 아니 그보다 오히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사생결단하고 시정잡배보다 못한 언행을 일삼아 물의를 일으키는 정치인들을 접할 때마다 저런 인간들의 세비를 충당하려고 세금을 꼬박꼬박 바쳐야 하는가라는 자괴심마저 든다.

대통령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해야 하고, 국회의원은 국가와 지역주민들을 위하여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지난해는 지도자를 잘못 선출한 대가로 많은 국민들이 수개월 동안 노상에서 초불을 밝혀야 했으며, 노심초사하면서 날밤을 지새운 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행태는 한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어쨌든 성숙한 국민들이 승리한 빅게임임에는 틀림없었던 것 같다.

자고로 충신은 국가와 민족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이 충돌할 때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자를 말한다. 반면에 간신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는 자이다. 충신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기꺼이 죽음을 내놓음으로서 영원히 살고, 간신은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해서 국가와 민족을 배신함으로서 영원히 죽는다고 하였거늘.

2017년 지금이야말로 정치인들은 한번 죽음으로써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한번 살기 위하여 영원한 죽음을 택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은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이제는 더 이상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결코 기망당하는 어리석은 국민이 아님을 명명백백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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