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사업 일환으로 다시 이어진 세운-청계상가 보행교는 명소
임대료 상승 때문에 기존 상인들 떠나는 악순환 막을 제도 보완 절실

1968년 세워진 세운상가는 50주년을 맞아 변신을 꾀하고 있다. 사진=조성호 기자

[민주신문=조성호 기자] 8월의 마지막 날, 기자가 찾은 세운상가는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2005년 청계전 복원으로 철거됐던 세운상가와 청계상가 사이 공중 보행교는 이미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낡고 오래된 세운상가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은 새로 세워진 보행교만 보더라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현재 세운상가는 지난 5월 서울시가 마련한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 선도사업지역에 대한 도시재생활성화 계획(안)’이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침체된 세운상가 일대를 4차 산업혁명의 거점으로 부활시킨다는 계획도 발표하는 등 세운상가 살리기에 힘쓰고 있는 모습이다.

종로부터 퇴계로까지 약 1km에 걸쳐 일직선으로 늘어져 있는 7개 상가 중 첫 번째 건물인 세운상가. 이 건물들을 통틀어 세운상가 일대로 칭할 정도로 세운상가가 가지고 있는 이름의 무게감은 다른 건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 만큼 세운상가는 김수근이 설계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였고 국내 전자제품의 메카였다.

1968년 세워져 50년의 역사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세운상가는 한때 철거 직전까지 가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오세훈 전 시장이 세운상가 일대 건물을 전면 철거하고 녹지축과 초고층건물 건립을 공약한 것. 실제 오 전 시장은 현대상가를 철거하고 초록띠공원을 조성하는 등 2015년까지 모든 건물을 철거하고 초고층 건물을 세울 계획이었다.

세운상가 1층 내부 전경. 사진=조성호 기자

하지만 전체 이주보상비만 1조원에 육박하는 등 사업성 논란과 더불어 부동산 경기 침체,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철거 계획은 흐지부지 됐다. 더 이상의 개발 계획도 존재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방치됐다.

오 전 시장의 계획은 세운상가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상인들에게 회복하기 힘든 상처만 남겨준 셈이 됐다. 건물이 철거 될 것으로 예상하고 떠난 상인들과 차마 떠나지 못하고 남겨진 상인들 간의 괴리감도 존재했다. 세운상가는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세운상가의 침체기는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철거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기로 하면서 언제 철거될지 모른다는 상인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시장이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전초기지로 발돋움

서울시는 세운상가 일대를 리모델링하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전환하고 세운상가 상권 살리기에 나섰다. 특히 세운상가의 특징을 살려 4차 산업혁명의 전초 기지로 탈바꿈 시킨다는 계획이다. 세운상가 내 기존 산업과 새로운 기술의 융합, 분야를 넘어선 협업을 통해 제조업 기반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전략적 거점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이는 청년 스타트업과 기존 상인들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청년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오랜 장인들의 숙련된 기술의 결합을 통해 세운상가를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기술을 적용해 실험 및 개발부터 실제 제품 제작, 나아가 이를 상품으로도 만드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교육, 제작활동을 지원하는 4대 전략기관을 입주시키고 스타트업을 위한 창작 및 개발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미 서울시립대학교 시티캠퍼스와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씨즈, 팹랩서울 등이 입주해 입주 업체와 주변 상인들은 물론 청년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4차 산업에 대한 기술과 창업 등의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세운상가 3층 보행교에 위치한 전자상가 전경. 사진=조성호 기자

서울시는 또 세운상가 일대 7개 상가 건물들을 지상 3층 높이의 보행교로 연결해 종묘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보행길을 만들 예정이다. 낡고 노후된 보행교는 새로 정비하고 끊겼던 구역을 다시 이을 방침이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1단계 사업으로 세운상가와 청계상가를 거쳐 대림상가까지 보행교를 새로 정비하고 있으며, 추후 2단계 사업으로 삼풍상가와 진양상가를 거쳐 남산까지 이어지는 보행교도 정비해 내후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세운상가와 대림상가 구간 보행교에 ‘세운 메이커스 큐브’라는 이름의 29개 창업공간을 조성한다. 세운 메이커스 큐즈는 드론 개발실, 실험게임 개발실, IoT UX 디자인실, 스마트모빌리티개발실 등 청년 스타트업 입주와 디바이스 개발을 위한 21개 공간과 세운전자박물관, 테크북카페 등 시민들을 대상으로 체험 및 관람을 위한 8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서울시는 지난 5월 세운 메이커스 큐브에 입주할 총 17개팀을 선정했으며, 보행교 마무리 공사가 끝나는 이달 내 입주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세운상가 옥상을 활용해 종묘와 남산 등 도심 일대를 조망하는 전망대와 쉼터를 만들어 이색 명소로 만들 계획도 포함됐으며, 옛 초록띠공원 자리에는 세운광장(지상)과 문화재전시관, 다목적홀(지하)이 들어선다. 세운광장과 다목적홀에서는 메이커페스티벌 등 제조업 관련 시민 행사를 개최하고, 공사 중 발견된 중부관아터와 유적은 한양도성 내 최초로 현지 보존방식 전시관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운상가 도시재생 사업 발표와 함께 “80년대부터 빠르고 유연한 생산방식으로 도심 제조 산업의 성공신화를 만들었던 세운상가군이 청년들의 혁신성, 기술 장인들의 노하우, 미래기술이 결합해 서울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며 세운상가의 청사진을 밝혀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8월 마지막 날 찾은 세운전자상가는 한산했다. 사진=조성호 기자

기존 상인들 보호할 제도 보완해야

서울시의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 사업에 대해 한편에서는 임대료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기존 상인들을 내쫒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세운상가 1층에 입점해 있는 한 오디오 가게 사장은 “재생 사업이 완료되면 방문객들이 늘어나겠지만 업종 특성상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며 “매출은 그대로인데 건물 주인이 임대료를 오르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한탄했다.

이런 걱정은 실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세운상가 시장협의회는 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임대료 인상 요구 조사에 나서고 있으며 이미 그런 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더구나 재생사업이 완료가 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인상 요구가 있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상원 세운상가 시장협의회 사무국장은 “도시 재생사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세운상가로 유입될 것으로 기대하는 상인들이 많다”면서 “하지만 유동인구가 많아지더라도 실제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또 “특히 임대료 상승이 실제 벌어진다면 그나마 현재 남아 있는 상인들도 더 이상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업체들이 자꾸 빠져나가게 되면 결국 세운상가의 존립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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