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목회 사태로 몸살을 앓았던 여의도 정가가 또다시 긴장감에 휩싸이고 있다. 신용협동조합(이하 신협) 중앙회가 직원들 명의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에게 거액의 후원금을 제공해 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이미 검찰은 신협 본사 사무실의 압수수색을 마치고 확보한 자료들을 토대로 정밀분석에 들어갔다. “누가, 얼마를, 어떤 명목으로 기부했는지에 대한 기초 수사자료를 만들고 있다”는 게 검찰 수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벌써 여야 국회의원 8명은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명된 8명 의원 모두 신협 중앙회 직원으로부터 1천만원 이상의 후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있다. 특히 이 가운데 2명은 2천만원 이상을 받은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정가에선 신협의 정치후원금 수사가 ‘제2의 청목회’ 사태로 번질 것으로 보고, 수사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목회 사태와 ‘닮은 꼴’ 의혹, 정무위 소속 의원 상당수 ‘좌불안석’

신협법 개정안 대표발의 이진복 의원 ‘특혜성’ 부인 “후원금 없었다”


신협의 입법로비 의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연말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불거졌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신협 직원으로부터 제보를 받고 자체조사를 벌인 결과 신협 중앙회가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에게 총 1억7,000만원의 불법 후원금을 제공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그해 12월14일 장태종 회장과 임직원 2명에 대해 기부알선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수사 의뢰했다. 기부 강요 정황이 명확하지 않아 고발 대신 수사 의뢰를 선택했다는 것이 선관위 측의 설명이다.

이후 검찰은 신협 본사가 있는 대전지검으로 사건을 이첩한 뒤 최근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7일 대전 서구 둔산동에 위치한 신협 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기획조정팀의 업무용 컴퓨터와 신협 내부전산망 서버, 직원 계좌번호 등 전산자료를 확보하고 현재 ‘로비 리스트’를 작성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에선 로비대상으로 거론되는 의원들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다. “아직 수사 초기 단계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가성 없는 지지와 호의”


하지만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좌불안석이다. 이미 8명의 국회의원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앞서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가 청원경찰법 개정을 위해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입법로비를 펼친 것으로 드러나면서 한나라당 권경석ㆍ조진형ㆍ유정현 의원과 민주당 최규식ㆍ강기정 의원,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 등 6명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탓에 긴장감은 더 하다. 이들은 향후 재판결과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을 수도 있다. 때문에 신협의 입법로비 의혹이 터지자마자 정치권에선 신협으로부터 받은 후원금이 있는지 그 내역을 급히 점검하는 모양새다.

불법 후원금 수수 여부와 관계없이 신협을 관장하는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에겐 불똥이 떨어진지 이미 오래다. 의혹의 중심에 서게 되자 정무위원장인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은 “신협 관련 의원 입법에 서명하지 않았다”며 연루설 반박에 나섰고, 다른 정무위 소속 의원들 역시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며 연루 가능성을 부인했다.

일부 의원들은 울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직 본격적인 법안 심사가 진행되지 않은 만큼 로비가 있을 수 없다는 것. 근거도 없이 ‘의혹 리스트’를 만드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특히 한나라당 이진복 의원의 경우 곤혹스런 상황에 처한 만큼 답답한 심경을 토로한다. 지난해 11월19일 신협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던 탓이다. 그간 신협은 다른 상호금융회사처럼 지역조합은 물론 중앙회도 직접 대출을 취급할 수 있게 하고, 각 조합에서 올라오는 여유자금과 상환준비금 등을 대출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신협법 개정을 추진해왔는데 이 같은 내용이 이 의원의 신협법 개정안에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로비의혹이 더욱 짙어졌다.

바로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무위뿐 아니라 다른 상임위에도 불똥이 튈 소지가 충분하다고 전망한다. 이 의원이 신협법 개정안을 발의할 당시 여당 8명과 야당 4명이 참여했는데, 이 가운데 이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이 모두 정무위 소속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일단, 이 의원은 신협과 관련된 의혹에 강력히 부인했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대부분 5만~10만원 개인 기부로 이뤄져 후원금을 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신협 측으로부터도 후원금을 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적도 없다”면서 “발의법안은 특혜성 법안이 아니다”고 밝혔다. 법률적 판단에 따라 법안을 제출했을 뿐 입법 부탁을 받은 적도 없거니와 신협으로부터 문제가 되는 후원금을 받은 적이 없다는 설명이다.

신협 역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쟁점이 됐던 중앙회 지배구조개편 부분은 정부와 대부분 합의가 이뤄져 입법로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동안 선진 정치문화 구현에 일조한다는 생각으로 직원들의 소액 후원금을 장려해왔을 뿐 직원들의 후원금 납부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직원 개인의 자발적인 의사로 후원금이 납부된 만큼 어떤 직원이 어떤 국회의원에게 후원을 했는지, 또 그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대가성 없는 지지와 호의를 표시한 게 전부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신협 측은 “금융권 가운데 신협만큼 감독기관의 철저한 감시를 받는 곳은 없다”면서 “힘없는 금융기관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신협 측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설명이다. 신협 측이 주장하고 있는 소액 후원금의 배경에도 또 다른 내막이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29일 정부 입법으로 경영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 이사의 배분을 확대하고, 부실 책임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사유를 확대하는 내용의 신협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신협 중앙회가 단위 조합에 정무위 소속 의원들의 소액 후원금 납입을 독려했다는 것. 지역 실무 책임자로 불리는 조합 최고위 간부들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단위 조합들에게 전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액 후원금도 수사 포함


특히 일부 지역에선 단위 조합별로 100만~300만원씩 갹출해 정무위 소속 의원들에게 후원하는 방안까지 검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높아 단위 조합 직원과 조합원들이 개별적으로 특정 의원에게 소액 후원금을 몰아주는 방식을 채택해 입법 로비를 벌여왔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해 수도권의 한 단위조합 간부는 “당시 후원금 기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해당 의원의 후원회 계좌가 아니라 선관위 정치후원금센터에서 신용카드 결제 방식을 이용해 서둘러 후원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후 이 법안은 지난 2년간 논의는커녕 안건이 소관 상임위에 상정된 적조차 없었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당초 선관위는 지난 한 해 동안의 후원금 내역만을 근거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수년 전부터 입법 로비를 목적으로 소액 후원금을 이용해 온 사실이 확인될 경우 수사 확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 수사의 향방에 정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소액 후원금으로까지 미치자 정치권 일각에선 검찰 수사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청목회 수사로 가뜩이나 얼어붙은 후원금 사정이 이번 수사로 인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조직적으로 돈다발을 들고 온 청목회와는 기본적으로 다르다”면서 “소액다수의 후원금마저 막는 것은 입법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업무 연관성이 있는 후원금을 문제 삼으면 어떤 상임위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신협 입법로비에 대한 검찰 수사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압수수색에 앞서 신협 측이 후원금 관련 디스켓을 파기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은폐 의혹까지 휩싸인 신협은 “업무용 컴퓨터의 용량 부족으로 지운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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