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함바집 비리 의혹이 정관계를 둘러싼 초대형 게이트로 확산되고 있다. 사건의 중심에 선 함바집 브로커 유상봉씨가 작심한 듯 로비 대상자를 잇따라 폭로하면서 이미 상당수의 유력 인사들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물론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에선 현재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정관계 인사들에 대해 “사실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지만, 최근 해당 수사팀 인력을 대폭 보강한 것으로 확인돼 유씨의 로비 규모가 상당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씨의 ‘로비 수첩’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50페이지에 달하는 유씨의 수첩엔 한 페이지당 20여명 인사들의 인적사항이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관리 대상이 최소한 1,000명은 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법조계 안팎에선 ‘유상봉 리스트’가 향후 정관계를 강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관계 인사들이 숨죽이는 이유다.


연루설에 휩싸인 전·현직 정관계 인사들 “모르는 일” 강력 부인

MB와 밀접한 ‘S라인’ 인사들까지 접근, 로비 수첩 1000명 기록


당초 함바업계 구조적 비리 척결을 위한 취지에서 시작된 유상봉씨 사건은 지난해 12월께 급반전 됐다. 유씨가 운영권을 내 달라는 명목으로 금품을 건넨 건설사 임원들을 소환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씨가 맺은 정관계 인맥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 유씨는 자신의 뒤를 봐줬던 인사들을 거침없이 폭로했고, 이들을 만날 때마다 메모한 유씨의 ‘로비 수첩’도 결정적인 증거자료가 됐다.

물론 이 수첩이 로비 액수가 적힌 장부의 성격은 아니지만 법조계에선 ‘박연차 게이트’의 포문을 연 ‘여비서 다이어리’를 뛰어넘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여비서의 다이어리를 통해 만들어진 ‘박연차 리스트’는 사실상 ‘죽은 권력’에 칼은 댄 것과 다름없지만 ‘유상봉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은 대부분 현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거나 현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만큼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피해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경찰 ‘쑥대밭’, 청와대 ‘불똥’


실제 이명박 정부에서 경찰 총수에 오른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지난 10일 소환조사를 받은데 이어 12일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도 검찰에 출두하는 수모를 겪었다. 검찰에 따르면 강 전 청장은 유씨로부터 1억1,000만원을, 이 전 청장은 3,500만원과 인천지역의 한 아파트 분양권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강 전 청장의 경우 함바집 로비의 출발 고리로 해석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조현오 경찰청장의 지휘 하에 치러진 경찰 내부 자체 조사 결과, 일선 경찰서장 이상 전국 경찰 간부 560여명 중 7%가 넘는 41명이 강 전 청장의 압력성 전화를 받고 유씨와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유씨의 처남 김모씨의 명의로 돼 있는 부산 센텀시티 인근의 K유통의 설립(2006년 2월)ㆍ폐업(2010년 8월) 시기가 공교롭게도 강 전 청장의 부임과 이후 검찰이 함바집 운영권 비리 수사를 시작하기 바로 직전 강 전 청장이 유씨의 해외도피를 권유한 시기가 맞물린다. 앞서 유씨는 검찰 조사에서 강 전 청장이 4,000만원을 주며 해외도피를 종용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소환이 예정된 이동선 전 경찰청 경무국장 역시 검찰 수사 결과 유씨가 운영했던 수원지역의 한 아파트 분양권을 받은 정황이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 전 국장은 “해당 아파트는 미분양 지역에 있으며 2004년 12월에 4순위로 당첨됐다. 계약금은 예금과 대출받은 돈으로 내고, 중도금은 둘째 자식이 2년간 저축한 월급으로 해결했다”고 설명했으나 강 전 청장, 이 전 청장과 함께 출국금지 조치를 받은 상태다.

현직에 있는 지방청장들도 수사 선상에 올랐다. 김철준 부산경찰청 차장을 비롯해 김병철 울산경찰청장, 양성철 광주경찰청장 등도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양 청장은 “고향사람이라고 해서 한 두 번 만났을 뿐”이라며 관련성을 극구 부인했으나 지난해 7월 유씨의 청탁을 들어주기 위해 직접 로비에 뛰어들기까지 했던 것으로 파악돼 논란이 일 전망이다. 건설현장의 식당 운영권을 달라며 양 청장이 전직 현대기아차 사장 C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던 것. C씨는 현대기아차의 핵심부서 사장 출신으로 현대건설에도 영향력 있는 재계인사로 꼽힌다. 그는 당시 양 청장의 부탁을 정중히 거절했지만 전화를 끊고선 “지방청장이 브로커 짓이나 하려 한다”며 화를 냈다는 후문이다. 일단 경찰은 양 청장을 치안정책연구소로 전보 조치하기로 하고 지휘권을 박탈했다.

유씨의 로비 정황이 속속히 밝혀지면서 경찰 조직이 ‘쑥대밭’ 된 가운데 불똥은 청와대까지 번졌다. 이미 유씨와의 연루 의혹으로 배건기 내부감찰팀장이 사퇴했다. 그는 청와대 자체 조사에서 “2~3년 전 유씨와 관련된 진정서가 청와대로 접수됐을 때 업무 연관성이 있는 줄 알고 만났으나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청와대 직분을 지닌 채 검찰 수사에 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따라서 배 팀장은 유씨와 하루빨리 대질 할 수 있길 고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배 팀장의 결백에도 청와대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배 팀장의 결백 여부와 무관하게 의혹이 불거진 것만으로도 청와대로선 도덕적 타격을 입었다는 것. 특히 배 팀장은 2006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보좌해온 참모라는 점에서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이번 사건이 자칫 이 대통령의 측근 비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검찰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시절 형성된 이른바 ‘S라인’으로 불리는 인사들을 눈여겨 보고 있다. 당시 시청 공무원들이 유씨를 아예 ‘함바’라고 불렀을 정도로 유씨가 건설현장 식당 등 이권 로비를 위해 서울시청을 자주 드나들었던 것. 게다가 유씨는 이 대통령의 측근들과도 안면을 텄던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서울 정무부시장을 지낸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 역시 유씨와 만난 적이 있었다. 정 최고위원은 “거절할 수 없는 사람 부탁으로 유씨와 인사를 나눴다”면서도 “브로커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이후 상종도 하지 않았지만, 초대하지도 않은 지역구 행사장에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나와의 친분을 사칭했을 걸로 짐작한다”고 밝혔다.

검찰 안팎에서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강원랜드 최영 사장도 S라인으로 분류된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당시 서울시 산하 SH공사 사장을 지냈던 최측근 인사다. 이에 검찰은 SH공사로부터 최 사장 재직 시절 발주한 사업 리스트를 넘겨받아 유씨와의 관련성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 사장은 “유씨의 터무니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대해 일일이 대응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서 “검찰 조사를 통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게 될 것”이라 자신했다. 현재 최 사장은 회사에 연가를 내고 서울에 머무르며 검찰 수사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의 활동 근거지가 부산이었던 만큼 부산지역 또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예고되고 있다. 실제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내 초고층 아파트 공사 현장 주변에서는 지난해 초 유씨가 함바 운영권을 받는데 부산지역 고위 공직자들이 도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는 전언이다. 이에 허남식 부산시장은 유씨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서 “결코 개입한 적 없으며 대응할 가치가 없는 루머”라고 부인했으나 이틀 만에 말을 뒤집었다. “집무실 등에서 2~3차례 만났지만 특별히 부탁한 것은 없었다”는 것. 최근 허 시장이 도마 위에 오른 이유다.

뿐만 아니다. 부산지역의 현직 국회의원 C씨도 곤혹을 치르고 있다. 측근인 K씨와 L씨가 해당 국회의원의 지역구에서 함바집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의혹을 샀다. “유씨와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의혹이 여전하다.


여야 의원들 ‘너도나도’ 해명


유씨의 전방위 로비에 정치권 역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지난 20여년간 900여건의 사업권을 따내면서 1,000억원을 번 것으로 알려진 유씨는 이권의 절반인 500억원을 다시 로비에 쓸 정도로 대범했다는 후문이다. 정치권에 줄을 댈 정도로 자금력이 충분했다는 것. 실제 유씨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10여명의 의원들에게 정치후원금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유씨로부터 후원금 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항간에서 제기되고 있는 ‘보험성’ 의혹에 자신이 직접 나서 해명했고,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의 지역구인 경남 통영시 문화예술단체에 유씨가 1억원을 기부한 사실에 대해 “유씨와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의 의원 2~3명과 함께 장수만 방위사업청장, 전직 차관 M씨, 공기업 C사의 전 사장 J씨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현직 장관 L씨의 동생도 연루돼 있다. 동생 명의의 통장에 유씨가 2005년과 2007년 각각 5,000만원과 1억원을 보낸 것. 이에 L씨는 “유씨가 동생과 돈 거래를 했지만 오히려 받을 돈을 못 받았다”면서도 “해명 같은 것을 할 때가 아니다”고 전했다. 유씨와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은 하나같이 이를 부인하고 있어 향후 유씨와의 공방전이 예고되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