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대선을 준비할 때가 아니다.” 손학규 대표는 자신의 대권 행보 시점에 대해 ‘아직’이라고 말했다.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보다는 민주주의의 회복 등 당면한 시대적 요구에 충실할 때라는 것. 하지만 정가 안팎에선 손 대표의 의사와 달리 사뭇 다른 관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 연말 전국 순회 투쟁을 마친 손 대표가 새해 벽두부터 100일간 ‘희망대장정’에 돌입하며 ‘민생행보’에 나선 것 자체가 대선 행보에 시동을 건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여권 내 유력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그간의 정치적 잠행을 깨고 지난 연말부터 발 빠른 행보에 나서면서 ‘대세론’을 형성, ‘맞불’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만큼 손 대표의 액션 또한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덧붙여졌다. 사실상 현재 진행 중인 희망대장정이 맞불인 동시에 손 대표가 17대 대선을 앞두고 보여준 100일 민심대장정과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는 셈이다. 실제 손 대표는 2012년 대선까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대장정을 계속할 방침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당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박근혜 거명 “시대정신 부적합, 한계 있다”

‘현대판 유목민’ 자처해 민생 현안 공부 몰두 “열심히 일 할 것” 다짐


손학규 대표가 연일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올해 행동 지침을 ‘국민 속으로’로 잡은 손 대표는 “국민의 숨결 하나, 한숨 하나까지 놓치지 않겠다”면서 지난 3일 경기 부천을 출발점으로 전국 234개 시ㆍ군ㆍ구를 순회하는 희망대장정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민주당 대표에 취임한 이후 대정부 투쟁에 전력을 쏟았다면 올해는 전국을 누비며 국민과 얘기를 나누는 ‘희망캠페인’에 집중하겠다는 것. “국민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구도의 심정으로 쉬지 않고 일 하겠다”고 다짐한 손 대표는 민생현장을 누비며 현안 공부에 몰두 중이다.


민생탐방 명분으로 한 대권 행보


현장에서 만나는 지역민들과 원활한 대화를 위해 이동 차량에서 지역 관련 자료를 숙지하고, 시민토론마당으로 명명된 지역민 간담회를 통해 민원사항을 수첩에 빼곡히 받아 적었다. 자리를 마무리하는 발언을 할 때면 ‘누구누구는 이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재차 확인하며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밝히는 등 지역민들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섰다. 뿐만 아니다. 자리가 파한 뒤에는 그날의 기록을 참모들에게 전달해 당 정책에 반영토록 지시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민과의 만남이 끝나면 밤 10시가 웃돈다.

매일 밤 지역 마을회관을 돌며 수행비서와 함께 잠을 청하고 있는 손 대표는 다음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대중목욕탕을 찾아 피로를 푼 뒤 곧바로 다음 지역으로 이동, 또다시 이동 차량에서 도착 예정 지역의 관련 자료를 숙지한다. 신문도 잊지 않고 챙겨본다. 지난 연말 천막농성 때부터 신문에 줄을 쳐가면서 읽던 버릇 그대로다.

당시 손 대표는 조간신문을 비롯해 일과 중에도 중간 중간 민주당 및 자신에 대한 보도를 확인하고 오후가 되면 석간신문도 챙겨본 것으로 알려졌다. 당직자들이 편의점을 찾아 신문을 사오는 것이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는 후문이 들릴 정도로 신문을 탐독했던 것. 신문 기사에 대해 의원들과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가 있으면 대변인에게 반박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여론 동향에 민감해 있던 셈이다.

어느 때는 식사할 개인시간 마저 빠듯해 달리는 이동 차량에서 한 끼 식사를 대신했다. 지난 6일 나주시청을 방문하기 위해 KTX를 이용한 손 대표가 “KTX는 차 안에서 먹을 때보다 흔들리지도 않고 해서 먹기가 좋았다. 오늘은 그래도 우아하게 잘 먹었다”며 즐거워한 모습은 그간의 고충을 짐작케 한다. 민주당 이낙연 사무총장도 “달리는 차 안에서 식사하고 천막에서 자는 손 대표는 ‘현대판 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지난 17대 대선을 앞두고 손 대표가 보여준 민심대장정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땀에 젖은 수건, 덥수룩한 수염, 탄가루로 범벅이 된 얼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당시 국민들은 손 대표의 뜨거운 열정에 응원과 박수를 보냈다.

비록 대장정의 마지막 날 북한의 핵실험으로 지지율 역전의 기회를 놓쳤지만 손 대표에 대한 지지자들의 신뢰가 형성됐다. 따라서 정가 일각에선 손 대표가 희망대장정을 민심대장정의 후속탄으로 해석했다. 사실상 민생탐방을 명분으로 한 대권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물론 손 대표의 참모들은 고개를 저었다. 예비후보로서 내공을 기르는 부수적 효과도 있겠지만 민심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게 기본 마음가짐이라는 것. 손 대표 역시 “아직 대선을 준비할 때가 아니다”면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믿음을 갖고 국민 속에서 내일을 찾겠다”고 밝혔다.


적수 유시민 꺾고 박근혜 대항마 우뚝


앞서 진행된 시청 앞 천막농성도 지지율 상승을 위한 일이 아님을 강조했다. 손 대표는 “국민들이 길거리에 천막 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겠냐” 반문하면서도 “시청 앞에서 천막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땅바닥에 잔 게 그냥 정치적 행위로 본다면 하수다. 그런데 그 하수를 어쩔 수 없이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고육지책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에 제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천막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손 대표는 “날씨가 추워졌지만 정작 나는 추운 것을 못 느꼈다.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이었다”면서 “야당 대표가 된 특권에 이어 정치인으로서 국민과 함께 길거리에서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미 정가에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손 대표를 각각 유력한 여권과 야권의 후보로 하는 양자대결을 가상하고 있어 두 사람의 불꽃 튀는 경쟁을 예고했다. 당초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높은 지지율을 보였으나 손 대표가 당 대표에 취임한 전후로 범야권 후보 중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등극했다.

이를 증명하듯 실제 두 사람의 견제는 이미 시작됐다. 손 대표는 당 대표로 취임한 후 처음으로 박 전 대표를 거명하며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가 꺼낸 화두 ‘복지’가 사실상 진보ㆍ개혁 세력에 절대 유리한 영역일 뿐 아니라 안보에 관련해서도 국민들은 ‘평화’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손 대표는 박 전 대표를 ‘박근혜 의원’으로 부르면서 “박 의원이 가진 지지의 확장성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복지, 안보를 얘기하면서 외연을 넓힐 수 있겠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손 대표는 “야권 단일 후보가 (박 전 대표와) 1대1 대결을 벌인다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대선 행보를 가시화한 박 전 대표에 대한 견제구인 셈이다.

이에 한나라당 친박계도 손 대표를 겨냥하기 시작했다. 친박계 이경재 의원은 손 대표의 ‘시대정신’ 언급을 겨냥해 “상대 후보에 대해 자기가 판단하는 게 정말 시대정신이냐”고 꼬집었다. 박 전 대표의 경선 캠프 대변인을 지낸 김재원 전 한나라당 의원은 “흔히 보수는 부패 때문에 망하고 진보는 분열 때문에 망한다, 이런 얘기가 있는데 실제로 지금 야당에 대한 시대정신이라면 야당 통합 아니겠냐”며 통합을 못하고 있는 야권에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손 대표는 야권 연대의 통합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전했다. 손 대표는 “현재로선 통합의 범주나 연대의 수준 등은 모두 열어 놓고 생각하는 게 좋다고 본다”면서 “입으로만 하려면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고 생색을 내려면 또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다른 당의 입장을 보더라도 우리가 앞서 주장하는 것보다 분위기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친노ㆍ보수ㆍ중도층 외연확대 본격화


한편, 손 대표는 시민사회진영의 외부인사 영입을 통해 외연확대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9일 손 대표는 최고위원회를 열어 민주정책연구원장에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를, 당 윤리위원에 민변 박주현 변호사를 임명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진영을 포함한 범야권의 통합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 연구원장이 향후 야권 연대방안을 제시하는 핵심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박 위원의 경우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과 청와대 참여혁신수석비서관을 역임한 바 있어 친노인사 끌어안기 일환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더불어 중보와 보수층의 외연확대도 시작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손 대표는 지난 2일 비공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세배를 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2007년 대선에서 패해 야당이 된 뒤로 김 전 대통령에게 새해 인사를 간 것은 손 대표가 처음이다. 이에 손 대표 측은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만큼 신년인사를 겸해 찾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선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민주당이 장외투쟁 중인 시점에, 그것도 당 정책 노선에 극도로 부정적인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간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 손 대표의 자숙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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