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한나라당 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집권 4년차를 맞으면서 권력누수 방지차원의 ‘일하는 정부’를 새해 모토로 내세운 반면 한나라당은 이에 반하는 정부에 대한 견제를 강조했다. 당이 지난 3년간 청와대에 끌려 다녔다는 자조적인 입장을 반영한 것. 실제 당 안팎에선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이 할 만큼 했다는 불만어린 토로까지 나올 지경이다. 더욱이 지난 연말 흉흉한 바닥민심을 체험한 한나라당에선 내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상황이다. 당이 청와대와 거리두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로 인해 이 대통령 역시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초부터 당ㆍ청간 신경전이 시작됐다.


흉흉한 바닥민심 체험한 당 지도부 “총선·대선 힘들다” 위기론 확산

이미지 쇄신ㆍ체질개선 위한 ‘뉴한나라당 비전’ 준비 중 “독자성 회복”


한나라당의 신년 첫 다짐은 ‘집안 단속’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당내 화합을 강조한 것. 총선과 대선을 1년여 앞둔 만큼 어느 때보다 계파 간 화합이 중요하다는 게 당 지도부 측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안상수 대표는 당 중심의 정책논의와 정부에 대한 견제를 강조했다. 정부에 협조하되 더 이상 청와대의 일방독주에는 끌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신년 다짐이다.

이 같은 다짐의 배경에는 지난 연말 새해 예산안 강행처리에 대한 후폭풍에서 비롯됐다. 서민복지예산이 다수 누락되면서 여론의 따가운 질타를 받아야만 했던 것. 당시 여론조사기관에서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 실세 정치인의 지역구 예산은 챙기고, 필요한 예산이 빠졌다는 비판에 응답자 절반 이상이 동의했다. 아울러 그 배후에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 작용했고, 한나라당은 거수기 역할만 했다는 지적에도 응답자 절반 이상이 수긍했다. 대다수의 응답자가 “여야가 최대한 대화와 타협을 모색해야 했다”고 답했다.


정권재창출의 전제 ‘화합’ 실종


등 돌린 민심에 한나라당 안팎에선 ‘위기론’이 확산됐다. 이대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고조됐다. 여기에 친이-친박계의 묵은 감정도 다시 재점화될 가능성이 높다는데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사실 이미 불은 당겨졌다. 지난 5일 열린 한나라당의 새해 첫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최근 불거지고 있는 개헌론을 둘러싸고 계파 간 설전이 불거졌다.

친박계 이경재 의원은 안 대표가 지난 3일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와 만나 ‘개헌 논의 착수’에 의견을 같이한 것을 거론하며 “당내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순서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지적한데 이어 “국민적 지지 없이는 개헌 추진이 어렵다”고 의견을 제기했다.

그러나 친이 주류계의 생각은 달랐다. 상생정치로 바꾸기 위해서는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 적용시기와 관계없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봤을 때 권력구조에 대한 진정한 논의가 필요할 뿐 아니라 지금 당이 개헌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국민적 동의를 얻기 위한 시동에 불과하다고 친박계를 설득했다. 하지만 계파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돼 논의에 진전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도 친이계에선 차기 대권 레이스에서 한발 앞서 있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경계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발 빠른 대권 행보가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 상당수다. 정두원 최고위원은 “대권주자들의 각개 약진으로 당이 사분오열, 우왕좌왕 흔들릴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당이 대권주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래희망연대(옛 친박연대) 노철래 원내대표가 “논의에 진전이 없는 것은 합당할 경우 박 전 대표의 힘만 실어주는 게 아니냐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우려 때문이라고 해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미래희망연대는 오는 4월에 실시될 재보궐선거의 독자출마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나서 안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더 이상 한나라당과의 합당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는 당내 의견이 많아지면서 사실상 독자적 노선을 택한 것. 이에 안 대표는 증여세 문제 등 면밀히 검토한 뒤 “합당이 조속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구제역이 진정되는 시기가 되면 이달 중순에서 말 사이에 의총을 열어 (개헌을) 논의하겠다”며 개헌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안 대표가 정권재창출의 전제라고 밝힌 당의 ‘화합’부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당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현재 보이고 있는 이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 김무성 원내대표가 “집권후반기에 가면 부작용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부 견제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나아가 홍준표 최고위원은 “청와대와 정부가 잘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눈치 보지 말고 확실하게 각을 세워야 한다”며 “그래야 당이 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홍 최고위원은 “총선과 대선은 당이 치르는 것이지 청와대가 치르는 것이 아니다”면서 “한나라당의 지지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청와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한 바 있다.


MB와 어긋난 초점에 ‘대립각’


한나라당이 청와대와 거리두기에 나서면서 청와대 측은 곤혹스런 입장에 놓였다. 집권 4년차에서 레임덕 현상을 피할 수 없는 만큼 당 차원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해서다. 이 대통령은 앞서 신년 연설을 통해 권력누수 방지에 중점을 뒀다. 권력누수를 막기 위해 ‘일하는 정부’를 모토로 세웠다. “올해는 정말로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해”라며 “정부는 국민과 함께 열심히 뛰겠다”고 밝힌 것.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신년 연설에서 이 대통령이 가장 애착을 보이고 신경을 썼던 부분이 바로 ‘일’이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일기가성(一氣呵成)’이라는 사자성어를 올해 청와대의 신년휘호로 정한 것도 일에 강한 집착을 드러낸 결과다. 앞서 이 대통령은 일부 참모들과 가진 독회에서도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딴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권력누수’를 말한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권력누수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강력한 드라이브를 예고한 이 대통령의 뜻과 한나라당의 계획이 어긋나면서 올해 당ㆍ청간 갈등은 절정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청와대와의 신경전에도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다. 오히려 당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고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오는 3월에는 ‘뉴한나라당 비전’을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한나라당은 서민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 정책에 주안점을 두고 정권 재창출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변화와 쇄신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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