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7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재판에는 검찰이 제출한 원 전 원장의 삭제되지 않은 온전한 형태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사진=뉴시스>

원 전 국정원장 재임 3년간 30여개 댓글부대 운영
與“MB 수사 불가피” 野“정치보복 좌시 않겠다”

[민주신문=이학성 기자]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이명박 정부 당시 '댓글 사건'과 관련,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09년 2월 취임 이후 주요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한 여론 조작 활동에 당시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확인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 '칼날'이 이번엔 이명박 정부를 향할 것으로 보인다.
태스크포스(T/F)에 따르면, 국정원은 야권 인사들의 동향, 총·대선에서 여당 후보 당선에 필요한 선거운동 방법 등에 대한 문건을 작성,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핵심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여부와 인지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 모두 큰 틀에선 진실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만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응이 주목된다.

4일 국정원 적폐청산 TF 발표 등에 따르면 국정원은 원세훈 전 원장 취임 이후인 2009년 5월부터 사이버 외곽팀을 신설한 뒤 대선이 있던 2012년 12월까지 모두 30개의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TF에 따르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취임 이후 심리전단은 다음 포털 커뮤니티 '아고라' 대응 외곽팀 9개팀을 신설하고 2009년 11월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지속적으로 확대, 2011년 1월에는 α팀 등 24개의 외곽팀을 운영했다.
2011년 8월에는 24개 팀을 사이버 대응 업무 효율성 제고를 목적으로 ▲아고라 담당 14개 팀 ▲4대 포털 담당 10개 팀으로 재편했다. 2011년 3월에는 트위터 외곽팀 4개를 신설했고, 2012년 4월에는 6개 팀으로 확대해 운영했다. 사이버 외곽팀은 대부분 별도 직업을 가진 예비역 군인·회사원·주부·학생·자영업자 등 보수·친여 성향 인물들로 개인시간에 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개혁위는 "TF는 향후 각종자료를 정밀 분석해 관련자를 조사하고 2012년 12월 이후 운영 현황 등을 비롯한 사이버 외곽팀 세부 활동 내용을 파악할 것"이라며 "외곽팀 운영 이외 심리전단의 '온라인 여론 조작 사건'의 전모에 대해서도 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적폐청산 TF는 2015년 11월 6일 세계일보가 입수해 보도한 국정원 자료 문건 중 8건의 작성자와 결재선, 최종 배포자와 관련직원을 조사했다. 적폐청산 TF는 "해당 문건들이 당시 지휘부 지시에 따라 국정원 내외의 자료를 활용해 작성됐고,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세계일보는 국정원이 2011년 11월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내용을 입수해 보도했다.

전방위 정치·선거 개입 의혹 확산

‘댓글부대’ 규모가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규모 정치·선거 개입이 있었다는 의심이 커가고 있다.
국정원은 야권 인사들의 동향, 총·대선에서 여당 후보 당선에 필요한 선거운동 방법 등에 대한 문건을 작성,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특히 청와대에 보고한 '10·26 재보선 선거사범 엄정처벌로 선거질서 확립' 보고서에는 야당 후보자 및 지지자에 대해서만 검·경 지휘부에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독려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실상 정부·여당의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TF는 향후 각종 자료를 분석하고 관련자를 조사하는 등 추가 조사에 나설 것을 예고한 상태다.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직권남용 등 위법 여부를 따지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TF 발표를 지켜본 검찰은 현재로서는 신중한 분위기다. TF가 최종 결과를 내놓지 않은 상황인 데다, 구체적인 단서 없이 수사에 나섰다가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TF가 추가 조사 등 과정에서 관련법을 어긴 이들을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 의뢰하고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미 문무일 검찰총장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 등은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한 재조사 및 재검토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검찰이 확보하고 있던 국정원의 선거개입 정황이 담긴 문건이 청와대로 반납된 경위, 국정원 댓글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외압 의혹 등을 다시 훑어보겠다는 것이다.
수사가 진행될 경우 국정원이 정부·여당을 위해 작성한 문건을 청와대에 수시로 전달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검찰 칼끝은 원 전 원장 '윗선'까지 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 조작을 위해 사이버 외곽팀을 조직, 확대 개편하는 과정 역시 청와대의 지시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5월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1동 3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여야 MB 수사 ‘온도차’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MB정부 국정원의 댓글부대와 관련된 내용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질수록 추악한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3년간 민간인 3,500명에게 국민 혈세를 들여서 정치공작, 선거공작을 벌였다는 보도는 정말 경악과 공포 그 자체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사실상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 하다는 주장으로 그는 “원세훈이 종착역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한 철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특히 5개월 남은 공소시효까지를 감안하면 즉각 수사에 돌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9일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MB가 스스로가 지시하지 않았다고 입증해야 하는 단계가 왔다"고 강조했다.
반면 지난 정부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 문제에 대해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김광림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물론 국정원 내부에 문제가 있다면 과거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정리를 할 수 있다"며 "하지만 그것이 국정원 본연의 업무인양 가장 전면에 앞세우면 더 중요한 것들이 뒤로 쳐지면서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 정치적으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문제가 있으면 정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른정당은 국정원 대선개입 조사와 진실규명은 객관적으로 접근해야하며 정치보복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남겼다. 전지명 바른정당 대변인은 "대통령 선거에서 여론조작이라는 정치공작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불법적인 일이고 국정원은 진실이 꼭 밝혀져 탈(脫) 정치국가기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면서도 "국정원의 적폐청산 의지는 환영하지만 전임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적 보복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오해를 받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한때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으로까지 불렸다가 핵심라인에서 밀려난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원 전 국정원장이 '댓글 부대' 운영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 전 의원은 11일 tbs 교통방송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원 전 원장이 보고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전 대통령이 굉장히 신중하고 치밀하고 의심도 많은 사람이라서, 쉽게 걸려들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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