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에서 지방의 누명이란 방송이 나간 후 마트의 버터가 동이 났다 한다. 풍미가 뛰어나 우리를 유혹하지만, 열량이 높다 하여 대부분의 다이어트 방법은 지방을 배척해왔다. 다이어트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시각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다이어터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접근이 쉽게 느껴지는 여타의 다이어트 방법이 그렇듯, 뭔가 이면에 찜찜한 그늘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

우선 지방 다이어트의 정의를 살펴보자. 지방은 인슐린을 자극하지 않으므로 지방 세포를 만들지 않으며, 그러므로 체내에 지방이 쌓일 일이 없다는 거다. 이와 더불어 저장되지 않은 지방은 열량으로 소모되므로 지방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논리가 자연스레 이어진다. 체지방을 줄이기 위해 지방을 억제하던 기존의 논리와 달라 대부분 당혹스럽다. 더 나아가 고지방식이를 통해 우리 몸이 지방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체질로 전환될 수 있다는 설명까지 곁들여진다.

지방 식이를 통해 생체 에너지 시스템이 전환되는 결과까지 보너스로 얻는다니 살찔까 기름진 음식을 경계한 우리에게 이만한 낭보가 또 어디 있겠나? 심혈관계 질환의 원흉으로 여겨졌던 지방이 착한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오니 마트의 버터들은 덩달아 천사의 날개를 단 듯 팔려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간밤에 먹은 삼겹살의 지방은 체내에 어디로 가 있는지 그 이론을 낸 자에게 묻고 싶다.

물론 섭취한 지방의 일부가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로 쓰이는 것은 맞다. 하지만 체내에 저장된 잉여 열량인 지방은 통상 에너지 대사의 맨 마지막 단계에 등장한다. 지방은 생각처럼 쉽고 빠르게 에너지로 쓰이지 못한다는 거다. 운동의 에너지로 지방이 쓰이는 단계에 도달했는가 또는 그렇지 못했는가가 이 문제의 핵심인데 여기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과도한 무게를 들어 올리거나 아주 빠르거나, 격렬한 동작이 필요할 때 우리 몸은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에너지를 만들어야 한다. 갑자기 날아드는 야구공을 피한다든지, 멧돼지의 공격으로 도망칠 때 무산소성 에너지 대사가 없다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동작은 산소 개입의 비중이 떨어지는, 즉 탄수화물에서 그 에너지를 얻게 되는데 이 방법을 우리는 ATP-PC 시스템이라 부른다. 신속한 근수축이 가능하지만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적은 비효율적 에너지 생산방식으로 운동하기 위한 최초 동작이나 짧은 시간의 고강도 운동 시 근수축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일반인에게 다소 어려운 이론이지만 필자가 언급하는 이유는 지방을 태워 체중을 줄이려는 모든 사람에게 상당히 중요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결국, ATP-PC 시스템이나 당을 분해하는 해당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생성하는 방식으로는 지방을 산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쉽게 비유하면 우리가 멧돼지에게 쫓겨 도망칠 때는 지방을 태우기 어렵지만, 멧돼지를 잡기 위해 산과 들을 기약 없이 헤맬 때는 지방을 산화시킬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은 극히 미미하다. 예를 들어 35분간 2.8km 걷기, 30분간 8km 자전거 타기, 15분간 줄넘기하기, 15분간 2.4km 달리기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시행하더라도 소모되는 에너지는 고작 150Kcal에 불과하다. 지방 1g이 대략 7Kcal의 열량을 발산한다는 가정하에 위에 쓴 운동으로 소모되는 150Kcal의 열량은 지방 20g에 채 지나지 않는다. 하루를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한들 월 600g 감량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최근 지방은 축적되지 않고 에너지로 쓰인다는 이론 뒤에 슬며시 달린 구절이 있다. 고지방 식이는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그 이상의 지방을 섭취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치도, 건강도 혹세무민의 시절이다. 특히 새로운 건강법의 조기 수용은 심사숙고해야 한다. 되돌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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