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넘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년이 소송으로 얼룩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50세의 한 남성이 “YS의 아들이다”고 주장하며 서울가정법원에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한 것. 물론 김 전 대통령은 이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고 있는 비서진들 역시 이번 소송과 관련해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건이 확대되는 것에는 “솔직히 답답하다”고 토로한다. 사실 김 전 대통령의 친자확인소송은 이번이 두 번째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앞서 2005년 9월, 이경선(75)씨가 “YS의 딸을 낳았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친생자 확인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낸 바 있다. 당시 소송에선 사건의 핵심인물인 이씨의 딸 가네코 가오리(한국명 주현희ㆍ48)가 유전자 검사에 불응하면서 종결됐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혼외아들로 주장하는 당사자가 직접 나서 유전자 검사를 요구하고 있다.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04년 혼외 딸 주현희 이어 혼외 아들 깜짝 등장 “유전자 확인 하자”

YS, 대리인도 선임하지 않은 채 무대응 일관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자확인소송 피소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11월23일이었다. 이미 지난 1년여 동안 소송이 진해돼 오면서 총 7차례에 걸쳐 변론기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가정법원 가사 4단독 마은혁 판사는 변론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김 전 대통령에게 출석을 요구했으나 김 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해 왔다는 게 법원 안팎의 주장이다. 실제 김 전 대통령은 대리인조차 선임하지 않는 등 이번 소송에서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YS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김모씨는 적극적으로 소송에 나서고 있다. 로펌 대표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유전자 감정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법원은 김 전 대통령에게 유전자 감식 신청서를 보내고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국정원의 엄격한 감시 받아왔다”


사실상 이번 소송의 관건은 유전자 감식 결과다. 특히 친자확인소송에서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릴 경우 ‘진실’을 밝히기 위해선 유전자 검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항이다. 따라서 보통은 친자확인소송에서 유전자 검사를 불응하게 되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물론 유전자 검사는 혈연관계가 있다고 볼 정황 증거가 뚜렷하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을 친아버지로 주장하는 김씨의 주장이 얼마나 일리가 있는지 그 여부 또한 이번 소송의 중요한 관건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김씨는 이미 친자 입증을 위한 각종 증거 자료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유전자 검사에 응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앞서 2005년 9월에 제기된 친생자 확인 및 위자료 청구소송에서도 유전자 검사에 불응했다. 당시에도 김 전 대통령의 측근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앞으로도 유전자 검사는 없을 것”이라며 단호하게 말하기도 했었다. 괴상한 소문 때문에 입막음 차원에서 도움을 줬던 일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공방으로 이뤄질지 몰랐을 뿐더러 소송을 제기한 이경선씨의 딸 주현희씨 역시도 소송을 원치 않았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리고 이번 소송에서도 김 전 대통령의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고 있는 김기수 비서실장은 “지금까지 김씨를 만나 본 적도 없고, 그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면서 “김씨를 상대할수록 그의 주장이 마치 사실인냥 보여 질 수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김 전 대통령 역시 이와 관련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때문에 제3자인 비서실에선 이번 소송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다만, 김 비서실장은 “김씨의 말처럼 정말 김 전 대통령과 부자지간이라면 인간적으로 법정까지 갔겠나. 서로에 대한 이해와 화해가 먼저 이뤄졌을 것”이라면서 “닮은 것을 가지고 혼외자식을 운운하면 영화배우들과 닮은꼴인 일반인은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김 비서실장의 말처럼 소송을 제기한 김씨는 얼굴 생김새와 표정이 김 전 대통령과 쏙 빼닮았다는 후문이다. 항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씨는 1990년대 초 서울 강남의 유흥업소 불법 영업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고, 김영삼 정권이 출범한 이후부턴 당시 안기부였던 국가정보원의 고위 간부 등이 김씨를 특별 관리했다. 경기도 모처에 생계 터전을 마련해주는 등 경제적 도움까지 줬다는 게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김씨가 뒤늦게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한 것은 경제적인 문제가 크지 않겠느냐는 정가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측도 김씨의 이번 소송은 경제적 도움을 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딸을 내세워 위자료를 청구했던 이씨의 경우도 돈이 최종 목적이었다는 것. 물론 이씨는 1심 선고 2주일을 앞두고 “김 전 대통령을 위해 소송을 취하했다”고 밝혔으나 이전까지 이씨의 소송 내막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김 전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이씨의 딸 주씨가 김 전 대통령에게 딸로 인정을 받은 후 결혼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고 밝히면서 향후 주씨가 직접 소송에 참여할 것이라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 비서실장의 증언은 사뭇 다르다. 그는 “사실 이전 소송은 가오리(주씨의 일본 이름)도 모르게 진행됐다. 이씨와 가오리의 이복 오빠가 나서서 소송까지 이끌었지만 뒤늦게 가오리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화를 냈다고 들었다. 가오리가 소송 참여를 거부하면서 그때는 우리도 모르게 소송이 끝나버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에는 법정 공방까지 갔지만 이번에는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 측의 해명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정말 결백하다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실하게 판명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 게다가 앞서 진행된 이씨의 소송은 사건을 풀 열쇠인 주씨가 참여하지 않아 재판이 성립될 수 없었지만 이번 소송은 자신이 김 전 대통령의 친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당사자가 직접 재판장에 섰다. 더욱이 김씨는 본인이 국정원의 엄격한 감시를 받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 또한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김 전 대통령이 유전자 검사를 불응할 경우 다음 조치를 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경우 수검 명령에 이어 과태료나 감치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혹은 혈연관계에 있는 주변 인물을 감정해 간접적으로 관계를 규명할지도 모른다는 게 법원 안팎의 설명이다.


이경선, 딸의 오빠(?) 등장에 깜짝


김 전 대통령과 그의 아들로 주장하는 김씨의 유전자 감식 여부를 둘러싸고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뜻밖의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재미 블로거 안치용씨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혼외아들을 직접 만났다는 사람이 등장한 것. 유럽 한 국가에서 거주하는 A씨가 지난해 1월 귀국했을 당시 정보기관 전 간부 이모씨로부터 김 전 대통령의 혼외부인이라는 초로의 여인과 그의 아들 김모씨를 소개받았다는 게 요지다.

김씨는 자신이 형이라 부르는 이씨로부터 부탁을 받고 A씨의 차량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A씨는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모자”, “친척들이 없어 부인이 많이 외로워 했다”, “정보기관 전 간부들이 울타리 역할을 해줄 뿐 특별히 돌봐주는 사람들이 없다”는 등의 말을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5년 전 김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 정가의 주목을 받았던 이씨는 현재 대전과 서울 모처를 오가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 또한 이번 소송을 접한 뒤 “처음 듣는 얘기라 깜짝 놀랐다”면서 자신의 딸보다 나이가 많은 김씨의 등장에 남다른 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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